2024.11.7(목)
출근시간에 맞춰 눈은 떳지만 아무 것도 할 게 없다. 조금 더 잠을 자보려고 해도 몇일동안 아무것도 못하고 숙소에서만 생활을 하다보니 피곤하지도 않고 잠도 안온다. 한시간쯤 더 침대에서 뒤척거리다가 자리에서 일어나서 방안 한켠에 놓인 책상에 앉아서 컴퓨터를 켰다. 회사메일을 확인한다. 하룻밤사이에 메일이 수십통이 업데이트 되어있다. 생산실적과 관련된 각종 데이터들이다. 팀직원들과 잠시 통화를 했다. 거기는 일하는 시간이니까. 업무관련해서 이야기를 간단히 나눴다. 네명의 덩치들에 이끌려 사무실에서 질질 끌려나간 나를 걱정해주었다. 직원 중 한명이 그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었다고 해서 그 영상을 받아보았다. 필사적으로 버텼는데, 그 영상에서 나는 너무 나약하게 끌려나갔다. 노조의 불법행위에 대한 증거로 쓰일 수 있을 것 같아서 영상을 회사에 보냈다. 수치스러운 마음이 잠깐 스쳤지만, 그 마음이 길게 가진 않았다.
아침 8시쯤 샤워를 하고, 그 전날밤 한국인 동료가 가져다 준 김밥과 떡볶기를 꺼내 먹었다. 날씨가 덥지 않아서 상온에다 두었는데, 상하지도 않았고 음식이 차갑지도 않아서 먹기 적당했다. 이틀동안 밖에도 안나가고 유튜브만 봤더니 그동안 보고싶었던 웬만한 영상은 다 섭렵했다. 이제 더이상 궁금한 것도 없다.
본격적인 가을에 접어드니 바람이 참 많이 분다. 동네전체가 흙먼지로 뿌얘서 눈을 뜨고 다니기가 힘들 정도고, 심지어 나무가 부러지는 경우도 다반사다. 곳곳에 먼지회호리가 수시로 나타났다 사라진다. 오늘도 창밖에는 바람이 세차가 부는지 꽃나무가 자기몸을 가누지 못하고 계속해서 휘청거렸다. 이 부겐빌레아(Bougainvillea) 나무의 꽃은 실제 꽃이 아니다. 하얗고 핑크빛 꽃처럼 보이는 것은 꽃이 아니라 잎이 저렇게 화려한 색을 띄고 있어서 꽃처럼 보이는 것이란다. 실제 꽃은 따로 있다. 아무튼, 부겐빌레아는 참 색도 곱고 아름다운 나무다.
한참동안 바람에 속절없이 흔들리는 부겐빌레아를 보고 있으니 저 나무가 의식을 가지고 있다면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느낄지 궁금했다. 자기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시멘트벽을 꽉 붙잡고 바람에 뜯겨나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 말고는 없다.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그저 바람이 부는대로 이리 움직이고 저리 움직이며 평생을 살아간다. 저러다가 날씨가 더 추워지면 저 아름다운 잎들도 다 말라 떨어지고, 생존모드로 들어가 온몸을 웅크리며 추운 겨울을 견디고 따뜻한 봄이 오길 기다리겠지. 그리고 내년에 따뜻한 봄이오면 또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힘차게 화려한 포엽을 피울 것이다. 그것을 보는 이들은 큰 감동과 즐거움을 선물받을 것이다.
인생은 잘 살기위해 버티는게 아니라 남에게 주기 위해 버티는 것 같다. 그리고 그렇게 나도 잘 살아지는 것이다. 그것을 부겐빌레아는 이미 알고 있는 것 같다.
하늘은 참 맑고 이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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