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5

in mexico •  last month  (edited)

2024.10.19(토), BCS

그리운 어머니,

지난 주부터 날씨가 많이 쌀쌀해지기 시작했어요. 밤새도록 불어대는 바람소리 때문에 귀에 귀마개를 끼고 자지 않으면 잠을 설칠 정도에요. 게다가 바람이 불때마다 들기는 환풍기 쉿긁는 소리도 만만치 않은 소음이에요. 우리나라에서는 해보지 않았던 고민을 여기서는 하게 되요. 그래도 쌀쌀한 가을로 접어들면서 좋은 점도 많아요. 요즘은 해가 늦게 떠서 아침 출근할 때 바다위로 떠오르는 아름다운 일출을 보는 건 매일 아침의 큰 행복이에요. 떠오르는 붉은 태양이 구름사이 빈틈을 시뻘겋게 달구면서 찬란한 빛이 구름을 비집고 쏟아져 들어오는 광경은 어디에서도 볼 수없는 가슴벅찬 풍경이에요. 서늘한 가을바람을 맞으며 장엄한 일출을 보고 있으면 긍정적인 기운이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솟아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아요. 그러나 멕시코는 태양이 너무 강해서 해가 완전히 뜬 이후에는 선글라스를 껴야해요. 선글라스를 껴도 눈이 시릴 정도거든요.

여기는 개발이 많이 되지 않은 지역이라 야생동물이 많이 있어요. 콘돌, 다람쥐, 도마뱀, 캥거루쥐, 벌새는 수시로 볼 수 있고, 뱀, 전갈, 타란툴라, 여우는 정말 가끔 한번씩 눈에 띄어요. 몇일 전부터 저녁에 일마치고 돌아오면 숙소앞 언덕 선인장 주변에 그날 저녁 식당에서 받은 빵을 조금씩 뜯어서 놓아두었어요. 날씨가 추워지니까 점점 음식을 구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서 작은 도움이라도 줄까 싶어 시작했어요. 그런데 정말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그 방조각들이 사라져 있었어요. 누가 이 빵조각을 가져가는 것일까 너무 궁금했어요. 일요일 아침에도 나가보 그 주변을 살펴봤는데, 붉은개미들이 땅 위를 돌아다니는 걸보고 '설마 개미들이 그 많은 빵조각을 가져갔나?' 하며 의심했어요. 그러다가 포유동물의 배설물을 발견했어요. 이 배설물을 보고 동물이 그 빵조각들을 먹고 있다는 확실이 들었어요. 그러다가 어느날 저녁, 그날도 어김없이 빵조각을 뜯어서 선인장 주변에 뿌려두고 었는데, 덤불속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듣고 깜짝 놀랐어요. 어두워서 잘은 보지 못했는데, 토끼같은 작은 동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반가웠어요. 그 때 동물의 눈으로 보이는 빛나는 안광이 내 눈과 딱 마추쳤어요. 이 지역에서 지금까지 나를 공격할만큼 큰 동물을 본적은 없지만, 퓨마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서 혹시 무서운 동물일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생각이 들었어요. 어두운 곳에서 나를 빤히 응시하는 그 눈을 주시하며 조심스럽게 핸드폰을 꺼내 후레쉬를 켜고 안광이 있던 곳을 비추었어요. 검은 물체가 후다닥 덤불속으로 숨는 모습이 보였어요. 꼬리가 길고 몸 길이는 30cm 정도 되어 보이는 포유류 보였어요. 크기가 아담해서 조금 안심을 하며, 휘파람 소리로 불렀더니 저에 대한 경계심을 풀지 않은 채로 조심조심 덤불에서 나왔어요. 그것은 새끼 사막여우였어요. 긴 귀에 뾰족한 얼굴, 몸은 회색털로 뒤덮혀 있고, 꼬리는 검은 털이 아주 매력적인 모습이였어요. 새끼 사막여우는 후다닥 달려와서 땅에 떨어진 빵조각을 물고 나무 뒤로 가서 허겁지겁 먹었어요.그 뒤로도 저를 경계하며 빵조각을 물고 갔어요. 나 때문에 먹기가 불편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자리를 비켜주었는데, 사막여우를 이렇게 가까이서 봤다는 생각에 가슴이 뛰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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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조각을 먹고 있는 사막여우

몇일 전 밤에 높은 전봇대 위에서 부엉이 소리가 들렸어요. 어릴 적 '전설의 고향'에서 들었던 산속 부엉이 울음소리가 생각이 나면서 이 곳 멕시코 부엉이도 똑같은 소리를 내며 운다는 것이 신기했어요. 어두운 밤이여서 부엉이 모습은 볼 수는 없었는데, 핸드폰 후레쉬를 켜서 전봇대 위로 이리저리 비추었더니 부엉이는 그 불빛이 불편했는지, 잠시 뒤 커다란 날개를 펴고 저 멀리 숲쪽으로 날아갔어요. 숙소로 들어간 다음 잠자리에 들려고 하는데 아주 희미하게 또 다시 부엉이 소리가 들렸어요. 아마 이 근처에 작은 캥거루쥐들이 많아서 먹이를 잡아먹기 위해 다시 이 곳으로 돌아온 것 같아요. 이 지역은 다른 곳보다는 사람이 좀 살고 있으니까 쥐와 같은 먹이도 많고, 개발은 덜 되어 있어서 부엉이가 쉽고 편하게 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오늘 하루도 할머니와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mexico #krsucc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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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다양한 야생동물들이 주변에 많은가 봅니다~^^
나중에 새끼 사막 여우와 서로 친구되겠어요~ 😆

야생의 사막여우와 친구가 될 수 있을까요?
저도 궁금하네요^^
방문 감사합니다.

야생의 사막 여우를 눈 앞에서 보시다니요 ^^
이런 환경이면 밤이 되면 저는 무척 무서울 거 같습니다 !!

야생동물을 관찰하는 거라 항상 조심하고 있어요.
그래도 참 흥미롭습니다.
방문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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