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레터맨(David Letterman)이 넷플릭스의 새로운 토크쇼 [My Next Guest Needs No Introduction with David Letterman]으로 돌아왔다. 2015년 5월 20일, 마지막으로 방송했던 CBS [레이트 쇼 Late Show] 이후 2년 8개월 만이다. 그가 호스트로 지낸 33년 동안 무려 6,028회의 쇼가 진행되었고, 총 19,932명의 게스트를 맞이했다. 빌 클린턴, 버락 오바마 등 대통령들은 물론, 거쳐가지 않은 유명인사가 없을 정도. 한국의 걸그룹 소녀시대도 출연한 바 있다. 에미상(Emmy Awards)에서는 112번의 노미네이트와 16번의 수상을 이루어내기도 한 심야 토크쇼의 전설이다.
"Have you ever heard of anything called Netflix? I don't know what it is. I don't even care how it works."
NBC의 [레이트 나잇 Late Night]에서 11년, 그 후 CBS로 옮겨 [레이트 쇼]라는 이름으로 22년. 그렇게 33년을 꼬박 방송하던 사람이 갑자기 백수로 지내려니 얼마나 좀이 쑤셨겠는가. 그는 3년도 안되어 다시 대중 앞에 선다. 자신도 아직 잘 모르겠다는 '넷플릭스'라는 새로운 디지털 세상과 함께.
한글 제목은 [오늘의 게스트,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데이비드 레터맨]. 2018년 1월 12일부터 시작해 매달 한 회씩 넷플릭스에 배포되며, 총 6회의 시리즈로 구성된다. 토크쇼 이름처럼 누구나 알 만한 이들을 인터뷰하는데, 첫 게스트는 무려 미국의 44대 대통령 버락 오바마(Barack Obama)다. 지난해 1월 퇴임 이후 약 1년 만의 첫 방송 출연으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가장 최근엔 영화배우 조지 클루니(George Clooney) 편이 2월 9일에 릴리즈되었고, 앞으로 노벨평화상 수상자이자 파키스탄의 인권운동가 말랄라 유사프자이(Malala Yousafzai), 래퍼 제이지(Jay Z), 코미디언 겸 각본가 티나 페이(Tina Fey), 그리고 라디오 DJ 하워드 스턴(Howard Stern)이 출연 예정되어 있다.
은퇴한 줄로만 알았던 그의 컴백을 지난해 넷플릭스가 예고하자 많은 이들이 기대감을 나타냈지만, 일각에선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다. 이미 정상에 올랐던 그가 방송국 울타리 밖의 넷플릭스라는 새로운 모험에서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데이비드 레터맨이라는 브랜드가 여전히 경쟁력이 있는가에 대한 의문들이 제기됐다. 하지만 첫 화가 베일을 벗자 이는 기우로 증명됐다. 많은 이들이 궁금해하던 오바마 전 대통령의 퇴임 후 근황부터 시작해 그의 부모에 대한 이야기, 존 루이스(John Lewis) 하원의원의 흑인 인권을 위한 투쟁, 퇴임 후 설립한 재단에서의 활동, 그리고 자녀 이야기들로 한 시간이 눈 깜짝할 새 지나간다. 이미 오바마와 레터맨이 오래전부터 서로에 대한 신뢰를 쌓아왔기에 가능했던 것도 있지만, 레터맨 특유의 유머러스함과 깊은 통찰력이 '민간인으로서의 오바마'를 좀 더 끄집어낼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확실히 이제까지의 토크쇼와는 다른 포맷이다. 우선 그의 수염은 간달프 혹은 예수의 것처럼 풍성하게 자라 새로운 트레이드마크로 자리 잡았다. 호스트 책상도 사라졌고, 관객의 흥을 돋우던 라이브 밴드도 없다. 무대 위엔 그저 두 개의 의자만 존재할 뿐이다. 그리고 레터맨의 최대 강점인 '대화'가 오롯이 쇼를 끌고 가는데, 이전보다도 진심 어린 애정과 진정성을 더한다. 이런 레터맨 쇼는 보는 이로 하여금 꽤 신선하게 다가온다. 무대 위에서만 인터뷰하지 않는다. 일흔이 넘은 레터맨은 조지 클루니의 부모가 사는 켄터키주의 코딱지만 한 동네를 가는가 하면, 앨라배마주의 작은 도시 셀마까지 날아가 흑인 민권운동의 영웅인 존 루이스 하원의원을 만나기도 한다. 넷플릭스는 이를 교차편집으로 적절히 보여주며 쇼의 깊이를 더해간다.
1965년 3월 7일, 일명 '피의 일요일'. 흑인선거차별금지를 위해 525명이 모여 침묵행진을 했다. 당시 행진했던 에드먼드페터스다리를 존 루이스 하원의원과 함께 건너는 레터맨.
David Letterman: When the march was completed successfully, what is on the other side of the bridge? (행진이 성공적으로 끝났을 때 다리 건너편에는 무엇이 있던 걸까요?)
John Lewis: The vote. Barack Obama. If it hadn't been for the march from Selma to Montgomery, there probably no Barack Obama as president of the United States. (투표지, 그리고 버락 오바마요. 셀마에서 몽고메리로 이어진 그 행진이 아니었다면 버락 오바마가 미국의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일은 없었을 겁니다.)
이제까지 온라인 스트리밍을 통해 방송된 토크쇼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넷플릭스와 양대산맥을 이루고 있는 훌루(Hulu)는 코미디언이자 배우, 프로듀서, 작가로 활동하며 종횡무진하고 있는 사라 실버맨(Sarah Silverman)을 간판으로 한 [아이러브유 어메리카 I Love You, America with Sarah Silverman]를 방송했지만, 그녀의 트레이드마크인 유대인식 유머(위트 있으면서도 지적이다랄까-)는 통하지 않았다. 또 다른 팔방미인 첼시 핸들러(Chelsea Handler)도 자신의 이름을 딴 토크쇼 [첼시 Chelsea]를 넷플릭스에서 방송했지만, 두 개의 시즌 이후 전격 취소되었다. 두 토크쇼 모두 유명인의 가십에서 벗어나 좀 더 의식 있는 사회적 주제에 포커스를 맞췄는데, 너무 현학적으로 진행되다 보니 인기몰이에 실패한 것이다.
반면 오랜 기간 레터맨의 라이벌로 간주되었던 제이 레노(Jay Leno)는 2014년 자신의 간판 프로그램 [투나잇 쇼 The Tonight Show]를 하차한 후 2015년에 이미 NBC 온라인에서 [제이 레노의 차고 Jay Leno's Garage]를 진행하고 있다. 제목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 유명한 자동차광이자 수집가인 그의 자동차 사랑이 온라인 방송을 통해 마음껏 분출된다. 이렇게 틈새시장을 파고든 제이 레노도 있지만, 폭넓은 스타 파워와 시청자층을 확보한 성공적인 토크쇼도 있다. 소니(Sony)의 VOD서비스 크래클(Crackle)에서 제작・배포한 [사인펠드와 함께 커피 드라이브 Comedians in Cars Getting Coffee]가 바로 그것이다.
코미디언이자 작가, 배우, 프로듀서 등으로 왕성하게 활동 중인 제리 사인펠드(Jerry Seinfeld)는 게스트들과 커피 한 잔 하며 편안하게 인터뷰를 진행한다. 한 회 당 12-20분 정도의 짧은 시간 안에 소비할 수 있어 언제 어디서나 보기 부담 없다. 짐 캐리(Jim Carrey), 에이미 슈머(Amy Schumer), 케빈 하트(Kevin Hart) 등 다양한 게스트들이 출연했는데, 토크계의 강자인 데이비드 레터맨과, 제이 레노, 그리고 지미 팔론(Jimmy Fallon)까지 나왔으니 말 다했다. 이 쇼의 핵심은 세 가지. 사람과 자동차, 그리고 커피다. 사인펠드는 어디서도 보기 힘든 멋진 빈티지카로 게스트를 픽업해 커피를 마시러 카페나 다이너로 향한다. 이동하는 차 안에서도, 카페에 들어가서도 대화는 계속된다. 매번 다른 자동차들이 등장하는데, 차에 대해 잘 모르는 나조차도 눈이 휘둥그레져서 보게 된다. 양키 냄새 물씬 전해지는 미국의 전형적인 다이너들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가장 많이 회자된 에피소드는 단연 시즌 7의 첫 화인 오바마 대통령 편일 것이다. 당시 임기중이던 그를 백악관의 집무실에서 픽업하는 장면은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짤'을 생산했다. 2012년 7월 시작해 승승장구하며 시즌9까지 나온 사인펠드의 쇼는 지난해 크래클을 떠나 넷플릭스로 이사했다. 크래클로부터 판권을 산 넷플릭스는 이제까지의 에피소드들을 새롭게 리패키징해 4개의 컬렉션으로 선보였다. 넷플릭스로 옮기고 난 후 올해 처음 방영될 시즌10에서는 24개의 에피소드가 배포될 계획인데, 엘렌 드제너리스(Ellen DeGeneres), 트레이시 모건(Tracy Morgan), 하산 미나즈(Hasan Minhaj) 등의 게스트 출연이 예정되어 있다.
넷플릭스가 레터맨과 사인펠드를 비롯한 토크쇼 진행자들에게 가장 이상적인 플랫폼일지에 대해서는 아직은 좀 더 두고 봐야 할 일이다. 하지만 소비자인 나로서는 레터맨 특유의 위트와 신랄한 풍자, 그리고 사인펠드의 유쾌하고 편안한 인터뷰를 한 플랫폼에서 모두 볼 수 있으니 '매우 만족'이다. 이상 넷플릭스 덕후의 사심 가득한 리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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