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일즈맨 칸타로의 달콤한 비밀] 속 디저트 가게 다섯 군데 탐방기
넷플릭스 오리지널 [세일즈맨 칸타로의 달콤한 비밀]을 보고 난 후 드라마 속 디저트 가게들을 언젠가 꼭 가보리라 다짐하며 올해 초 브런치에 리뷰한 적 있다. 두 번에 나누어 올린 글은 많은 이들에게 읽혔고, 디저트 가게들을 모두 정리해 글 말미에 첨부했던 구글맵 또한 2,500뷰가 넘었다. 당시 나와 뜻을 함께했던 친구들과 함께 먹방특공대를 결성, 곧바로 휴가 일정을 맞춘 후 도쿄행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그로부터 5개월 뒤. 드디어 도쿄행 비행기에 몸을 싣게 된다. 순전히 먹기 위해. 이제껏 도쿄는 열 번도 넘게 방문했지만, 이처럼 목적이 분명한 여행은 처음이었다. 그렇게 난 사흘 동안 칸타로가 알려준 도쿄의 디저트 가게 중 다섯 군데를 방문해 여러 형태의 달콤함을 맛보았다. 내가 맛 본 [세일즈맨 칸타로의 달콤한 비밀] 속 디저트들을 짧고 굵게 리뷰한다.
- 와구리야 (Waguriya, 和栗や)
밤 디저트 전문점, 와구리야. 내가 제일 가고 싶던 디저트 가게로,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향한 곳이다. 와구리야가 자리 잡고 있는 동네 야나카긴자(Yanaka Ginza, 谷中銀座)는 고양이가 많이 서식해 고양이 마을로 유명하다. 작년 개봉한 국내 다큐멘터리영화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에서는 야나카긴자를 '사람과 고양이의 행복한 공존이 이루어지는 곳'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영화 제목은 일본의 근대작가 나츠메 소세키의 소설에서 따온 것이리라. 실제로 야나카긴자의 초입엔 소세키의 단골집이자 그의 소설에도 등장했던 당고 가게가 있다. 소세키의 1905년 데뷔작에 나온 가게가 여전히 영업을 하고 있다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지만, 더 놀라운 것은 그 당고집이 1819년부터 지금까지 200년 가까이 야나카긴자를 지키고 있단 거다. 이처럼 야나카긴자는 옛 일본의 풍경을 고스란히 간직한 동네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하라주쿠라 불리는 스가모(Sugamo, 巣鴨)와는 또 다른 분위기의 예스러움이다.
200m가 채 되지 않는 야나카긴자 거리를 중심으로 아기자기한 70여 개의 가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데, 거리가 끝나간다 싶을 때 즈음 왼편에 와구리야가 짠- 하고 나타난다. 노렌(暖簾, 가게 입구에 내걸어 놓은 천)에 밤 그림이 그려져 있는 걸 보니 이곳이 와구리야가 틀림없다. 칸타로가 지나가다가 군밤 향기에 취해 저도 모르게 끌려가던 가게. 군밤을 맛볼 수 있는 가을이 아니라 아쉽지만, 무더운 여름엔 군밤 대신 아이스크림을 팔고 있었다. 500엔짜리 밤 아이스크림이 꽤나 유명한지, 가게 왼편의 스탠드에서 아이스크림만 받아 들고 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우리는 디저트를 먹을 것이라 하니 종업원이 가게 안으로 안내한다.
칸타로가 맛보았던 밤 가시를 머랭으로 형상화한 히토마루 몽블랑은 9월 말부터 12월 초 사이에만 먹을 수 있는 가을 한정 메뉴로, 우린 아쉽게도 맛볼 수 없었다. 대신 와구리야의 시그니쳐메뉴인 몽블랑드셀(モンブランデセル)과 부드러운 크림 위에 몽블랑을 쌓은 몽블랑파르페(モンブランパフェ), 그리고 4월부터 10월 중순까지만 판매하는 와노몽블랑(和のモンブラン)을 주문했다. 특히 여름 한정 메뉴인 와노몽블랑은 경단과 한천, 그리고 흑설탕 시럽을 더해 먹는 안미츠 스타일의 몽블랑으로, 신선했지만 잘 어울리는 조합이었다.
몽블랑을 한 입 떠먹었을 때의 그 충격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부드러운 몽블랑의 텍스쳐와 입 안 가득 퍼지는 밤의 향기. 우리 모두 동공이 확장된 채 서로를 바라보았고, 입에서 사르르 녹아버린 몽블랑의 맛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하지만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그건 그냥 '밤'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보통 밤 디저트라 하면 밤 향기를 돋우기 위해 술이나 향료를 첨가하지만, 와구리야에선 밤 이외에 아무것도 첨가하지 않는다. 풍부한 맛의 비결은 오로지 밤의 신선도라 자부하는 곳이다. 그답게 일본 밤의 본고장이라 불리는 이바라키현 카사마시 이와마 지역의 밤을 사용한다. 내가 예상했던 '바밤바', '맛밤' 같은 인공향료가 첨가된 맛이 결코 아니란 말이다.
밤이 무르익는 가을이 되면 한 번 더 와야겠다. 그땐 가게 앞에 서서 군밤도 먹고, 칸타로가 맛보았던 가을 한정 메뉴인 히토마루 몽블랑도 꼭 맛보리.
- 코히 텐고쿠(Coffee Tengoku, 珈琲 天国)
여행을 떠나기 전, 각자 어딜 제일 가고 싶은지 두 개씩만 이야기해보자- 했을 때 모두가 언급한 곳. 그래서 방문 일순위로 꼽았던 곳, 바로 코히 텐고쿠다. 코히 텐고쿠는 핫케이크와 커피가 나오는 킷사텐으로, 활기 넘치는 아사쿠사에서 2005년부터 자리를 지키고 있다. 칸타로 드라마뿐만 아니라, 일본 만화 [그녀는 거짓말을 너무 사랑해] 속에서 주인공이 좋아하는 핫케이크 집으로 등장해 인기가 많은 곳이다.
오후 5시 즈음 갔는데도 주말이라 그런지 사람이 많았다. 밖에서 기다리는데, 가게 앞에 놓여 있는 배지 뽑기 기계가 눈길을 끌었다. 칸타로 드라마에서 나왔던 이미지의 배지가 있는 걸 보니 방송이 나간 이후에 생긴 기계인 것 같았다. 나처럼 성지순례 온 이들에겐 훌륭한 기념품이다. 먹음직스러운 핫케이크 그림이 박힌 배지를 무척이나 갖고 싶었으나, 커피잔에 천국이라 쓰인 무난한 배지가 나왔다. 내 다음으로 뽑기를 시도한 아주머니도 원하는 게 나오지 않는지 무려 네 번이나 돌리셨다. (참고로 한 번 돌리는데 200엔)
최대 16명이 앉을 수 있는 10평 남짓 되어 보이는 공간은 밀가루와 달걀의 향기가 가득하다. 1,000엔짜리 핫케이크와 커피세트를 주문하고 두근두근하는 마음으로 기다린다. 칸타로가 이야기했던 대로 코히 텐고쿠는 반죽을 미리 만들어놓지 않는다. 주문을 받은 후 곧바로 반죽에 들어가며, 아름다운 색으로 굽기 위해 동판을 사용한다. 커피도 기계가 아닌 핸드드립으로 정성스레 내린다.
드디어 알현한 핫케이크. 지름 12cm, 두께 1.3cm의 일정한 크기와 황금빛 색깔로 노릇노릇 먹음직스럽게 구워진 핫케이크. 그 위에 뜨거운 인두로 '天国'을 새겼다. 한 입 베어 물면, 입 안 가득 달걀과 밀가루의 황금배합이 느껴진다. 폭신한 식감 또한 일품. 가염버터와 메이플시럽을 묻혀 먹으니, 한층 더 맛있다. 함께 곁들이는 드립커피도 핫케이크와 환상의 짝꿍이다.
나의 친구 Glen이 핫케이크의 '天国' 글자를 거침없이 자르길래 내가 몹시 화를 내었다. 칸타로가 코히 텐고쿠에서 핫케이크를 맛있게 먹는 다섯 가지 방법을 친절히 알려줬거늘. 하나, 그냥 먹는다. 둘, 버터만 발라 먹는다. 셋, 시럽만 뿌려 먹는다. 넷, 버터와 시럽 둘 다 발라 먹는다. 다섯, '天国'이란 글자만 마지막에 남겨 먹는다. 나는 남겨 먹었다.
덧, 놀라운 점은 핫케이크 집이긴 하지만 킷사텐이어서 그런지 담배를 태울 수 있다는 점. 2020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식당 내 금연정책을 실시한다고는 하지만, 애연가들의 천국답게 일본엔 여전히 내부에서 흡연할 수 있는 곳들이 많다. 달콤한 핫케이크를 즐기는 중에 담배 냄새를 맡는 것은 확실히 유쾌하지 않다.
- 키노젠 (Kinozen, 紀の善)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동네, 카구라자카. 옛 에도시대의 정서가 짙게 남아 있는 조용한 골목길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고, 요즘의 트렌드를 주도하는 편집샵 라 카구(La Kagu)와 정겨운 책방 카모메서점 등 시간을 알차게 보낼 수 있는 가게들이 꽤 많다. 이다바시역을 나오자마자 발견할 수 있는 키노젠 또한 1948년 문을 연 이후 지금까지 70년 동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전통 디저트 가게다.
주문한 디저트가 나오기 전 따뜻한 물수건과 함께 일본 전통과자 센베이(煎餠)와 말차가 나왔다. 이 돼지 모양의 전병은 야마가타산 쌀 '하에누키'에 브르타뉴산 소금을 넣어 만든 것이라 한다.
키노젠에서 꼭 먹어야 할 메뉴는 바로, 말차 바바루아(Matcha Bavarois). 마치 푸딩인지, 무스케이크인지 모를 저 탱글탱글함! 우유에 젤라틴을 녹여 노른자와 설탕을 섞고 체에 걸러 약한 불에 가열한다. 점성이 생기면 말차를 더한 후 마지막에 거품 낸 생크림을 넣고 틀에 부은 후 천천히 냉장고에서 식히면 저런 매끈한 모습이 나온다고 한다. 거기에 식물성이 들어가지 않은 지방률 47%의 생크림을 얹고, 최고봉 팥 중 하나인 단바의 무농약 재배 다이나고를 곁들이면 비로소 키노젠의 말차 바바루아의 삼위일체가 이루어진다. 실제로 따로 먹을 때는 몰랐지만, 다 함께 먹었을 때 비로소 조화롭단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단팥 위에 탐스런 경단을 얹은 시라타마젠자이(白玉ぜんざい)는 경단의 쫄깃쫄깃한 식감이 일품이다. 거기에 부드럽고 달디달며, 알알이 느껴지는 팥과 함께하니 더할 나위 없다. 그다음 메뉴는 안미츠(あんみつ). 안미츠는 한천과 팥 위에 떡, 아이스크림, 과일 등의 토핑을 올리는 일본의 전통 디저트다. 우리가 흔히 먹는 팥빙수에서 얼음을 뺀 것이라 생각하면 쉽다. 본래 칸타로 드라마 1편에서 유서 깊은 안미츠 집으로 소개되었던 칸미도코로 하츠네(甘味処 初音, Kanmidokoro Hatsune)를 갔어야 했지만, 일정이 짧은 관계로 키노젠에서 주문해 먹어 보았다. 우뭇가사리로 만든 젤리 모양의 한천을 입 안에서 씹지 않고 혀로 굴리니 그 탱글탱글함이 그대로 살아 있었다.
- 미니멀 (Minimal, ミニマル)
도미가야(Tomigaya)는 내가 도쿄에서 제일 좋아하는 동네 중 하나다. 요요기공원 왼편에 자리 잡은 조그마한 동네로, 후글렌도쿄와 모노클샵, 아키반도 등 트렌디한 라이프스타일샵과 카페가 가득하다. 미니멀은 이 동네에 2014년 문을 연 초콜릿 가게로, 이름처럼 카카오라는 최소한의 재료만을 고집하는 곳이다.
사실 일정이 타이트하다 보니 미니멀은 그냥 잠시 들러 초콜릿바 하나만 사서 나오려고 했던 곳이다. 하지만 이 카카오 왕국에 발을 들인 이상 차마 그냥 나올 수 없었다. 미니멀은 전 세계의 카카오 농장을 직접 방문해 좋은 카카오를 공수해온다. 특히 아이티, 가나, 베트남, 이 세 대륙의 카카오를 선별하는데, 산지에 따라 맛이 다른 것은 물론이고 잘게 부순 카카오의 크기가 0.001mm만 틀어져도 식감이나 향, 녹아 나오는 카카오버터의 양도 달라진다 한다. 그런 점에서 카카오는 스페셜티커피 원두와 많이 닮아 있다.
우리가 이곳에서 맛본 달콤함은 역시나 초콜릿이다. 특히 시식으로 맛본 프루티베리라이크 초콜릿은 카카오를 굵게 부숴 만들어 씹는 식감이 좋고, 카카오 본연의 베리 향이 은은하게 느껴진다. 우린 핫초코와 아이스크림을 먹었는데, 아이스크림은 처음엔 생각보다 달지 않아 갸우뚱했으나 먹으면 먹을수록 카카오 자체의 풍미를 만끽할 수 있게 되었다. 핫초코는 한 입 마실 때부터 그 풍미가 대단했다. 종업원이 우리가 한 입 마시고 나니 핫초코 위에 카카오닙스를 뿌려주었는데, 약간 텁텁함이 남기는 했으나 금세 포만감을 느낄 수 있었다. 화이트 초콜릿으로 만든 상당한 크기의 카카오닙스도 하나씩 맛보라고 주셨는데, 요거트에 넣어 먹으면 참 맛있을 것 같다.
- 에쎄 두에 (Esse Due)
에쎄 두에는 우리의 먹방투어 일정이 아닌, 그 전주에 일이 있어 도쿄에 잠시 갔다가 지인과 함께 저녁을 먹으러 갔던 곳이다. 지인의 숙소가 마침 아카사카에 있었고, 나 또한 아카사카가 매우 친숙한 동네인지라 잘 되었다 싶어 냉큼 에쎄 두에로 약속 장소를 잡았다. 칸타로는 이곳에서 푸딩 하나만 주문해 먹었지만, 이곳은 원래 나폴리 화덕피자로 유명한 이탈리안 레스토랑이다. 그 외에도 파스타나 리조또 같은 정통 이탈리안 음식이 있고, 티라미수와 젤라또, 아포가토 등 이탈리아 대표 디저트도 맛볼 수 있다.
우리가 주문한 저녁식사 메뉴는 마르게리따 피자와 포르치니버섯 크림파스타. 얼마 전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어글리 딜리셔스(Ugly Delicious)에서 요리사 데이빗 장이 세계 최고의 피자라고 극찬했던 도쿄 나카메구로의 피짜리아 세린칸(Seirinkan)을 다녀왔던지라 별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웬걸. 정말 맛있었다. 우선 도우의 식감이 매우 좋았고, 토마토와 바질, 모짜렐라치즈의 조합이 잘 어우러졌다. 페투치니 면의 포르치니버섯 크림파스타 또한 버섯의 진한 향이 일품이었고, 녹진한 크림의 맛 또한 깊었다.
식사에 이어 나온 디저트 메뉴는 역시 칸타로가 맛보았던 '농후 크림 푸딩'. 이탈리아어로 '크레마 캐러멜라타(Crema Caramellata)'라고 불리는 이탈리아의 전통 디저트다. 에쎄 두에의 캐러멜 푸딩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컵 모양의 푸딩이 아니다. 오히려 조각케익의 모습에 가깝다. 흔들어도 무너지지 않을 정도로 단단하면서 입 안에서 사르르 녹는 부드러운 식감이 일품이다. 함께 주문한 아포가토는 컵에 작게 나올 줄 알았는데, 아이스크림이 큰 접시에 세 스쿱이나 나온다. 바로 추출한 에스프레소를 부어 먹으니 진한 커피향과 달콤한 아이스크림의 조화가 사람을 무방비상태로 만들어버린다.
번외. 문 앞까지 갔는데 맛보지 못한 디저트 가게 두 곳. 언젠가 다시 찾아가 꼭 맛보리..
칸타로 뿐만 아니라 [고독한 미식가]에서도 고로 상이 먹었던 곳이라 기대가 컸던 우메무라(Umemura, 梅村). 영업시간 맞춰 갔는데, 재료 소진으로 일찍 문을 닫았다. 절규중.
1895년 개업한 아카사카의 사가미야(Sagamiya, 相模屋). 칸타로가 마메칸을 테이크아웃했던 곳. 해초 향이 사라지지 않도록 한천을 자르지 않은 채로 포장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