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만이 골리앗을 이긴다
미래는 천천히 다가온다. 그러나 과거는 순식간에 지나간다.
2000년 온라인 DVD 대여업체 넷플릭스(Netflix)의 창업자 리드 헤이스팅스(Reed Hastings)가 당시 세계 최대의 비디오 대여점 업체 블록버스터(Blockbuster)에게 자신의 회사를 인수해달라고 제안했을 때, 블록버스터 경영진들은 실소를 금치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창업한 지 3년 된, 전년도 매출액이 500만 달러도 안 되는, 그해 5740만 달러의 적자가 예상되는, 그런 회사를 누가 5000만 달러나 주고 사겠는가? 이듬해 회원수 30만 명의 넷플릭스가 미국 시장에서만 5000만 명, 해외 시장을 포함하면 1억 명의 회원을 가진 블록버스터에게 선전포고를 했을 때 언론이 이를 다윗 대 골리앗의 싸움으로 묘사한 것은 헤이스팅스가 봐도 후한 평가였다.
우리는 미래에서 온 사람이다. 아시다시피 다윗은 골리앗을 이겼다. 블록버스터는 넷플릭스에 얻어맞고 2010년 파산했다. 무비갤러리(Movie Gallery)나 할리우드 비디오(Hollywood Video)와 같은 다른 비디오 대여점은 그전에 사라졌다. 넷플릭스가 물리친 것은 이런 낡아빠진 회사만은 아니었다. 2002년 월마트(Walmart)가 넷플릭스와 똑같은 서비스를 더 싸게 내놓았을 때 넷플릭스 주가는 폭락했다. 그러나 월마트는 2005년 넷플릭스에게 사업을 넘겨야만 했다. 한때 넷플릭스를 1500만 달러에 사려 했던 아마존(Amazon)은 2004년 미국서 같은 서비스를 내놓으려고 했지만, 결국 넷플릭스 때문에 포기하고 유럽에서 노하우를 쌓아야만 했다. 2006년 디즈니는 무비빔 (MovieBeam)이라는 다운로드 서비스와 자회사인 ABC를 통해 미디어 플레이어(media player)라는 웹 기반 스트리밍 서비스를 내놓았다. 물론 재미를 보지는 못했다. MGM, 파라마운트, 유니버설, 소니, 워너브라더스 등 5대 영화사가 합작해 만든 무비링크(Movie Link), 마이크로소프트와 소니가 손을 잡고 만든 봉고(Vongo) 역시 넷플릭스를 이기지 못했다. 2011년 넷플릭스는 미국 최대 케이블 TV 업체인 컴캐스트의 가입자 수를 돌파했으며 2017년 7월에는 1억 명을 넘어섰다. 이 모든 난관을 극복해온 것은 시가 총액 840억 달러짜리 다윗 왕이 아니라 목동, 서비스 첫날 100건 남짓한 주문을 감당하지 못해 서버를 다운시켰던 작은 미디어 스타트업이었다 [1].
왜 뉴스 미디어 스타트업인가
비상장 신생 스타트업이 100배가 넘는 규모의 1등 기업을 물리치고 시장을 혁파하는 일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많은 자원을 가진 거대 기업이 스스로 혁신하는 것이 더 쉽지 않을까? 스타트업을 통한 혁신은 수많은 혁신 방법 중 하나에 불과한 것 아닐까? 스타트업을 통한 혁신은 특정 국가나 분야, 예컨대 전기차와 같은 미국의 첨단 기술 분야에서만 가능한 것 아닐까? 한국의 뉴스 미디어 분야에 적용하는 것은 어불성설 아닌가? 이런 분야는 기술보다는 콘텐트 가치에 더 치중해야 하는 것 아닐까? 한국에 뉴스 미디어 스타트업이 있기는 하는가? 있더라도 혁신은 고사하고 생존이나 할 수 있을까? 뉴스 미디어 스타트업은 경제적으로 지속 가능할까? 뉴스 미디어가 직면한 시장과 사회 문제를 한 방에 해결해줄 비즈니스 모델이 해외에 존재하지 않을까? 더 많은 비즈니스 모델 사례를 살펴보고, 자신에게 맞는 것을 쇼핑하고, 그 모델을 심층 분석해서 제대로 이식한다면 모든 걱정은 사라지지 않을까? 뉴스 미디어 스타트업은 스낵 콘텐트나 만들어 돈이나 벌려고 하는 곳 아닌가? 즉 저널리즘 가치나 사회 혁신에는 관심 없는 곳 아닐까?
이 수많은 질문은 크게 세 가지 오해와도 연계돼 있다. 첫째, 뉴스 미디어 스타트업은 특수한 스타트업이라는 생각이다. 심하게 말하면 뉴스 미디어 스타트업은 스타트업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중요한 것은 한국의 특수성과 미디어 업계의 가치라고 믿는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둘째, 뉴스 미디어 스타트업은 유의미한 형태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이다. 역시 그렇지 않다. 셋째, 모든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해주는 비즈니스 모델이 존재한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컴퓨터 공학 분야의 오랜 격언을 빌리자면 “은 탄환은 없다(No silver bullet)”[2]. 특히 스타트업의 혁신에서는 더욱 그렇다.
나의 핵심 주장은 뉴스 미디어 분야의 파괴적 혁신은 오직 스타트업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 교수 클레이튼 크리스텐슨의 파괴적 혁신 이론을 기존 언론사와 미디어에 적용하면, 이들은 디지털 전환을 통해 비즈니스 문제를 해결하고 이를 바탕으로 저널리즘 가치를 극대화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3]. 이들은 기존의 확고한 가치와 그에 따른 자원배분 프로세스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기존 미디어의 디지털 전환을 위해 가장 중요한 액션플랜 중 하나는 뉴스 미디어 스타트업을 광화문에서 차로 한 시간쯤 떨어진 판교 테크노밸리 정도에 설립하는 일이다. 본사의 의사결정과 자원 지원으로부터 독립된 채로 고유의 자원배분 프로세스를 만들어가며 비즈니스 모델을 검증해가는 뉴스 미디어 스타트업 모델만이 이 업계를 혁신할 수 있다.
원글: https://brunch.co.kr/@daeminpark/1
[1] Keating, G.(2012). Netflixed: the epic battle for America's eyeballs. 박종근(역)(2015). <넷플릭스 스타트업의 전설>. 서울: 한빛비즈.
[2] https://en.wikipedia.org/wiki/No_Silver_Bullet
[3] Christensen, C. M.(1997). The Innovator's Dilemma: When NewTechnologies Cause Great Firms to Fall. 이진원(역)(2009). <혁신 기업의 딜레마>. 서울: 세종서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