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에대한고찰 #1] 나의 구멍을 채워줄 남자

in novel •  7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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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치챘다. 그가 나의 구멍을 채워줄 남자라는 걸 알게 된 건 갓 나이가 여문 스무살적이었다. 그 구멍이 내 몸에 난 것인지, 아니면 내 마음에 난 것인지 알 길은 없었으나 그가 분명 어느새 다부진 남자가 됐다는 데 변함이 없었다. 이제야 십대의 티를 다 벗은 여자가 된 내게 아직 20이라는 숫자가 어색한 그가 있었다. 벌어진 어깨, 유려한 손가락과 다 자란 키. 그는 자기도 모르는 새 남자가 돼있었다. 교복 안에 갇혀있는 그의 몸뚱이가 내 빈 공간을 부르짖는 듯했다. 기다려졌다. 그가 나의 구멍을 채워줄 남자라는 걸 그가 다 여물기 전에 이미 난 알고 있었다.

그렇게 그가 스무살이 됐고 이듬해 나는 처음으로 그를 엎어트렸다. 그의 부모님은 집에 안 계신 오후였다. 그는 두 번째 맞는 겨울방학을 집에서 보내는 중이었다. 그 날 따라 폭설이 내렸다. 오전 알바를 마치고 그의 이웃집에 당도한 나는 깜빡 열쇠를 두고 나왔다는 걸 깨달았다. 별 생각 없이 옆집 초인종을 눌렀다. 녀석이 나왔다. 이제 막 일어났는지 부스스한 모습이었다.

또 까먹었어?

그에게 나는 익숙한 흔적이었다. 하긴 당시에만 해도 13년쯤 알고 지낸 사이였으니 그에게 나는 친누나, 혹은 옆에 사는 당연한 존재였다. 그는 투덜거리며 내 머리 위에 앉은 눈을 털었다. 젖은 옷을 현관바닥에 털면서 나는 몰래 그의 동정을 살폈다. 그는 부엌에서 매번 그러하듯 코코아를 타고 있었다. 100년만의 추위를 몰고 온 겨울, 나는 바람에 난 상처처럼 갈라진 뺨을 부비며 소파에 앉았다. 터덜터덜 걸어오는 그의 손엔 코코아가 들려있었다.

뜨거웠다.

잔소리를 하는 그의 입술, 위아래로 움직이는 옆얼굴을 보며 나는 한 가지만 생각했다. 어떤 맛일까. 코코아를 홀짝이며 넘기는 그의 목울대는 드세고 강인했다. 그 아래로 딱 떨어지는 어깨선과 팔뚝. 옛저녁에 알고 있던 모습을 새삼 느낀다. 그는 모른 척하지만 이미 달근한 몸을 지녔다. 나도, 그도, 아무도 모르는 세상에 있었다. 밖은 추웠으나 코코아는 사뭇 뜨거웠다. 그리고 나는 그를

엎어트렸다.

당황할 틈 없이 그의 입술을 점했다. 겨울 가뭄처럼 내 맘에 구멍이 많았다. 다 매우고 싶었다. 놀라던 그는 희번뜩 돌아갈 듯한 눈동자로 내 혀를 응했다. 휘감고, 누르고, 적시는 모든 과정에서 그와 나는 낯선 문을 열고 있었다. 갑자기 그의 큰 손이 내 젖가슴을 움켜지웠다. 놀라는 마음과 달리 준비된 내 몸은 그새 손을 뻗어 그의 남성을 쓸었다. 묵직했다. 허물을 풀어 헤치고 아무 상념 없이 집중하는 그는 커다란 불구덩이 속으로 들어왔다. 그 해 겨울은 추웠고 눈이 많이 내렸다. 나는 자주 열쇠를 두고 나오곤 했다.

하지만 우린 연애라는 걸 하진 않았다. 애초에 그와 처음 입맞춘 그 계절에 녀석은 혼자가 아니었다. 결국 죄책감 때문에 그는 여자친구와 헤어졌다. 그렇다고 나에게 사귀자는 말하진 않았다. 그에게 불성사납게 튀어나온 몸이 있었고, 내겐 혼자 움츠러 숨어든 몸이 있었다. 합을 맞춘다, 그것 외에 우리 사이에 다른 정의가 필요치 않았다. 그렇게 수 년이 흐를 동안 그의 곁에는 몇 여자, 내 곁에는 뭇 남성이 지났다. 사랑하기도 했고, 이내 질리기도 하며 시간은 굴곡이 무색하게 흘러버렸다.

남자 혼자 사는 집에 그러고 오면 안되지.

이제 그는 내 이웃집에 혼자 산다. 마침 맥주가 마시고 싶어 그의 집에 들렀다. 얼마 전 바꾼 비밀번호는 그대로였다. 갑자기 등장한 나를 보고 그는 어이없다는 듯 고갤 저었다. 잘 준비를 거의 마친 모양이었다. 여름 밤은 무덥고 열대야가 극성이었으며, 오직 그의 헐벗은 몸만 단정히 서있었다. 퇴근하고 서러울 일도 잊은 채 우선 나는 들어가 그를 안았다.

오늘 또 뭔일 있어?

그냥, 맥주가 마시고 싶었어, 그런 멘트에 돌아오는 코웃음. 점점 나이가 찰수록 내가 진 올무가 늘었다. 여자, 27살, 말단사원. 그 나이에, 그 자리에서 여자가 해야 할 일은 차고 넘쳤다. 그 곳에 내 이름은 없었다. 그저 내가 되고 싶은 커다란 욕망은 빈 구멍을, 더 많이 헐거워진 마음을 닫고 싶다는 의식으로 흘렀다. 맥주처럼 시원한 그의 손이 간절했다. 나는 한아름 그를 품에 안았다.

아주 바지가 찢어질 기센데.

그는 아니라고 얼버무렸지만 이미 그의 남성은 곤두서있었다. 얇은 잠옷바지 안에 불끈대는 뭉텅이가 만져졌다. 나는 슬며시 오른손으로 남성을 쓰다듬었다. 움찔대는 몸을 타고 시린 전율이 흘렀다. 최대한 자제하려는 듯 그는 먼산을 보고 있었다. 이틈에 얼른 그의 목을 깨물었다. 살갗의 내음이 혀에 쏟아졌다. 나는 큰 숨을 쉬는 그를 안은 채로 천천히 소파를 향해 걸어갔다.

결국 입술을 훔치면 될 일이었다. 까치발을 들고 그의 혀를 훔치니 그는 큰 숨을 내쉬며 내 허리춤을 잡았다. 이미 낯익으면서도 떨리는 감촉. 부드럽게 등을 감싸던 손은 어느새 옷을 들춰 가슴을 찾으려 했다. 나는 단단히 그의 목을 감싸 안았다. 거리낌 없이 소파에 누워 웃옷을 걷어올렸다. 그는 한가득 내 젖가슴을 움켜쥐었다. 내 몸이 질량을 머금고 살아났다. 내가 감춰야만 했던 목소리를 빚어내듯 몸짓이 이어졌다.
이내 커다랗던 자극은 검지손가락 끝의 미세한 떨림으로 이어졌다 유두를 돌리는 그의 손가락은 빙그르르 굴러 스위치를 켰다. 아- 외마디 탄식으로 그는 옷에 싸여있던 나를 끄집어냈다. 농락했다. 아프지만 더 강하게, 더 거칠게 쓸려가길 원하는 내 리듬을 따라 그의 왼손은 부지런히 바지 속으로 기어왔다. 시동을 켜고 여행을 떠날 때 공회전을 해 예열을 하듯이 내 여성을 에두르며 안달나게 했다. 감질맛을 삼키며 나는 연달아 숨을 몰아쉬었다. 결국 참지 못하고 그의 바지를 해체했다. 탐스런 남성이 검은 몸을 드러내며 성큼성큼 걸어 들어왔다.

더운 동굴 안으로 드는 모험가의 마음. 그는 내 여성을 탐닉했다. 비좁고, 울퉁불퉁한 그 공간에 비집고 들어와 오래토록 가출을 일삼았다. 이질적인 것의 삽입으로 인해 자극을 감내하면서도 구태여 이 느낌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오가는 그의 숨소리마다 온통 더 많은 빗줄기에 대한 염원이 서렸다. 내 아랫도리로 소나기가 쏟아졌다. 이미 하나로 이어진 두 육체이건만 그는 무엇이 부족한지 내 몸을 더 꽉 안았다. 부서질 것 같아도 놓을 수 없었다. 흐트러질 듯한 의식의 혼미함을 흩어내듯 그는 온 맘을 다해 구멍을 찾아 헤맸다. 내게 난 온 구멍을 메울 수 있다는, 그런 열렬함만으로도 충분히 내 몸이 흐느껴 통곡하고 있었다.

엎드려.

처음엔 다분히 소심하던 그는 절정에 다다를수록 솔직해졌다. 나는 소파에 몸을 엎드렸다. 이제 그의 얼굴도, 누가 내 위에 타고 있는지도 알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는 내 둔부를 치켜올리더니 강한 타격을 날렸다. 악- 외마디 비명을 지르는데도 아랑곳 않고 그의 숨은 방아질을 이어갔다. 더 원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내가 기꺼이 그에게 권력을 양도했다. 질주를 시작했다. 어쩌면 우리는 애초에 즐기던 대로

마조히즘

을 경험하고 있었다. 눈으로 보이지 않지만 몸에 찢어질 듯 들이닥치는 자극을 더 강렬히 갈망하는 것. 그도 나도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래서 우린 연애를 하지 않으면서 결국엔 서로에게서 못 벗어났는 지도 모른다. 몇 번의 거센 공격을 이어가던 그의 역할을 접고 이내 내가 채찍을 들었다. 그를 눕히고 나는 내가 원하는 대로 했다. 아까까진 포악하던 그가 이번엔 순순히 누워 꼼짝없이 당하는 한편, 나는 헐떡이는 흔들림을 온 허리로 견디며 더 격렬하게 몸을 맞췄다. 죄여오는 희열이 아득했다. 기꺼운 절규로 이어지던 비명은 곧 두 사람 모두 기력을 소진한 후에야 잦아들었다. 주고받으며 서로를 놀리던 몸짓은 각자에게 매번 다른 천국을 보여줬다. 그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내 옆에 널브러졌다.

우린, 변태인지도 몰라.

그 말을 하고 깔깔 웃었다. 태초에 아담과 이브는 부끄러움을 몰랐다. 그저 순수하게 원하는 바를 따라 의도 없이 삶을 살았다. 그는 어김없이 나를 한번 꽉 안았다. 매듭을 짓는 의식과 같았다. 얕고 빠르게 고르던 숨은 깊이 잦아들었다. 말이 필요 없었다. 창문은 뿌옇게 입김이 가득했다. 바깥은 열대야로 뜨거웠고, 방 안은 그보다 더 더운 기운이 감돌았다. 잠시나마 이성도, 감성도 다 버린 채 가만히 멈춘 상태. 모든 걸 비운 그 순간에 구멍은 서서히 차올랐다. 몸의 절정이 지난 후에야 진정 모든 게 채워졌다. 나는 몸싸움 후 서로의 품에 안겨있는 찰나를 사랑했다.

그는 내 존재에 난 모든 구멍을 바스러뜨리는 남자였다.

2015.06.20 #쮼

우리도 사랑일까.png

전에 쓰던 토막글의 첫 편입니다. 빙글, 블로그, 페북에 자주 올렸었네요.
맨 위에 첨부한 이미지는 영화 'PS파트너'의 한 장면입니다.
아래 이미지는 영화 '우리도 사랑일까'의 한 장면입다.
토막글을 종종 이어쓰도록 하겠습니다. 기대...주세욥!! #점에대한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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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지게 도발적인 글들이 통통 튀어다니네요. 즐겼습니다.

예전 글이라 지금은 또 어떤 스타일로 쓸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일독 감사합니다=)

특히 제목이 매우 훅이 좋거든요? 이건 책으로 연구해볼만한 합니다. 다만 이건 사유해봐야겠죠.
그래서...결국...뭘 말하고자 하는거지?
제가 예전에 시나리오 쓰던 시절에 늘 고민하던 문제입니다.
그게 애매한채로 써나갈 수도 있는데...나중에 돌아보면 허무하거든요.

그쵸ㅠㅠ 전하는 바가 있느냐 없느냐, 어떻게 전하느냐는 계속 고민인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는 무언가를 말하려고 글을 쓰다보면 글이 안 써지기도 하더라고요ㅠㅠ 기이하고 오묘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