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봉숭아 소녀_01

in novel •  5 years ago  (edited)

우리 반에는 늘 손톱이 붉게 물들어 있는 아이가 있습니다.

새 학년이 되었다. 언제나 그렇듯, 분주한 교실. 어색하지만 따뜻한 공기가 흐르고 있다. 작년에 같은 반이었던 몇몇이 눈에 띄지만, 나와는 그리 친한 친구들이 아니었다. 고개를 돌려 교실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올해의 반 배정은..., 흠... 아무래도 새로운 친구를 사귀어야겠구만!

그 순간, 누군가 뒷 문을 열고 반 안으로 들어왔다. 스마트폰을 보며, 내 앞자리로 걸어오는 처음 보는 아이. 내 눈은 그 아이의 손가락에 머물렀다. 봉숭아 물을 들인지 얼마 되지 않았나보다. 손가락까지 붉은 물이 들어 있었다.

처음 보는 애네?

나는 호기심이 생겨 내 앞에 앉은 아이의 등을 톡톡 두드렸다.

"안녕?"
"어, 안녕? 나는 이담이야."
"이담? 외자야? 우와... 이름 예뻐! 나는 은실. 조은실이야."
"네 이름이 더 예쁜데? 은실... 반짝거리잖아."
"뭐?ㅋㅋㅋ"


이담. 새 학년이 되어 처음 만난 담이는 처음이라는 사실이 무색할 정도로 대화가 잘 통하는 아이였다. 영화에서 주인공보다 악당을 더 기억한다는 점, 인디 밴드 음악을 좋아하며, 떡볶이가 소울 푸드라는 점까지. 우리는 시덥지 않은 이야기에도 늘 즐거웠다. 하지만 담이를 볼 때마다 내 시선은 늘 담이의 손가락에 머물렀다. 분명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붉었던 손가락이었는데..., 벌써 몇 주가 지났음에도 변함없이 붉게 물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근데 담아, 너 봉숭아 물 너무 오래 가는 거 아니야?"
"이거?ㅋㅋㅋ 내가 말 안 했나? 나 2주일에 한 번씩 봉숭아 물 들이거든. 그래서 늘 이렇게 붉게 물들어 있는거야."
"아..., 에? 2주일에 한 번씩? 너무 자주 들이는거 아냐? 그러다 손가락 다 상하겠다."
"ㅋㅋㅋ 괜찮아. 나도 처음엔 걱정했었는데, 별 문제 없더라."

2주일에 한 번씩? 내가 마지막으로 봉숭아 물을 들였던 게 언제였더라? 나는 그 한 번 손가락 묶는 것도 힘들었는데....

담이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가 가장 마지막으로 봉숭아 물을 들였던 때를 떠올렸다. 할머니께서 직접 따다 주신 봉숭아. 자기 전에 손가락을 묶으며 답답해하던 내가 떠올랐다. 꼭 묶은 저릿한 손가락. 간지럽기도 아프기도 한 손가락들이 떠올랐다.

"아무튼 너 진짜 대단하다. 난 한 번도 힘든 것 같던데."
"ㅋㅋㅋㅋ 근데 오늘 점심 뭐야?"
"오늘 수요일이지? 스파게티다!"
"아싸아!"


copyright @ria-pp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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