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업 급여 1 소설가와 웹 디자인 교육

in novelistdesign •  2 years ago 

일곱 군데의 직장을 그만두고 재취업을 하기 전까지, 사이사이 실업 급여를 신청하거나 재교육 프로그램을 이수하곤 했다. 그러느라 고용 안정 센터라는 이름의 지자체 기관에 자주 드나들었다.

한번은 고용 안정 센터 담당자가 나에게 직업 적성 검사를 받아보라고 권유했는데, 호기심에 얼른 응하며 이런저런 직업에 다 관심 있다고 표시했더니, 나에게 알맞은 직업 1번으로 ‘소설가’가 나왔다. 그것도 압도적 성향으로. 결과를 본 상담자는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신경 쓰지 말라고, 결과가 잘못 나온 것 같다고 손을 내저었다.

하지만 나는 그 자리에서 깔깔 웃으며 “아뇨, 완전 제대로 나온 것 같은데요.”라고 흡족해했더랬다. 오래 남몰래 품어온 소망에 자격증이 주어진 기분이었다. 물론 소설가가 ‘성향’이나 ‘취향’만으로 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걸 이제는 알지만, 그때는 내게 ‘재능’이 없어서 안 될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리고 나는 소설가의 적성에 기르기 위해, 더욱 다양한 경험 쌓기에 박차를 가했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직업 적성 상담을 받고 나서 내가 택한 재취업 교육 프로그램은 ‘웹디자인 과정’이었다. 늘 글과 디자인이 함께 필요한 직종에서 일하며 글만 다루다보면 왠지 글은 푸대접을 당하고 디자이너들이 훨씬 대우 받는 기분이 들었다. 간혹 글도 다루고 디자인도 하는 인력은 그야말로 귀한 대우를 받고 출세를 하는 듯했고 말이다.

나도 소싯적엔 미술도 곧잘 했는데 하는 오기도 들었지만 디자인 일을 할 능력은 없었다. 모든 작업이 전문화되고 컴퓨터로 이루어지는 디자인 업무에서 난 까막눈이나 다름없었다. 글을 다루는 일을 하는 틈틈이 매킨토시(애플) 컴퓨터나마 좀 익혀보려고 애썼지만 그게 여의치 않았다.

그래서 6개월짜리 웹디자인 과정에 등록했다. 노동부에서 지원하는 국비 무료 교육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내 돈을 들여서라도 비싼 곳에서 배웠어야 했다. 어쨌든 그때는 공짜에 눈이 멀어 두 번 생각할 필요도 없이 어느 허름하고 형식적인 학원에 등록했다.

홍제동에 있는 곳이었는데, 당시 집이던 망원동에서 홍제동까지 천변길을 따라 자전거를 타고 다닐 수 있던 것도 몹시 만족스러웠다. 홍제천인지 불광천인지, 거의 말라붙어 냄새나는 개천 옆으로 자전거 길이 조성돼 있었다. 콘크리트 고가 도로 아래로 점차 험해지며 으슥해지다가 끊겨 버리기도 하는 천변길이었지만, 옛날 윤선도가 몽유도원도를 그릴 때 참고했다던가 하는 멋진 바위산 비슷한 것들이 만들어내는 비좁은 절경도 잠깐이나마 감상할 수 있던, 꽤 멋진 길이었다.

직업 학교, 즉 컴퓨터 학원에서 배정 받은 교실에 들어가보니, 나와 비슷한 또래와 처지의 남녀들이 금세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오전에는 웹 엔지니어링을 배우고 오후에는 디자인 소프트웨어를 배웠는데, 서버 구축, 웹 페이지 코딩 등을 배우는 오전에는 다들 눈동자가 멍해져 있다가 오후 수업은 모든 학생이 흥미로워하며 들었다. 일정 일수 이상 빠지면 수업료를 토해내야 했으므로 웬만하면 결석은 안 하고 차라리 수업 시간에 엎드려 잠을 잤다. 나는 그 시간을 이용해 맨 뒤에 앉아, 처음 번역 일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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