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일본 바로알기 학습 노트 ㅡ (1) I

in partiko •  5 years ago 

/ 청일전쟁 승리, 러일전쟁 승리, 조선의 식민지화, 중국 본토 침략 . . . 동아시아를 ‘피바다’로 만든 일본은 순전히 자신의 힘만으로 이 모든 침략 전쟁을 수행했단 말인가? 일본 군국주의의 재정적 후원자인 국제 대부업자들과 전쟁 설계자들의 동아시아 지배전략을 연구해 보자! /


디아나 스핑골라(Deanna Spingola). 『지배 엘리트 Ruling Elite』.(Trafford Publishing. 2012)에서 일본 관련 부분만 발췌해서 번역했다. 화살표 친 부분은 필자의 코멘트다.


「일본, 국제 금융가들의 아시아 용병」
Japan, the Banker’s Mercenary in A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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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얘기를 해보자.

“1849년 11월 7일, 로스 차일드의 주요 자산 중 한 명인 오거스트 벨몽트(August Belmont)는 프리메이슨 소속 매튜 페리 제독(Commheore Matthew Perry)의 딸인 캐롤라인 슬리델 페리(Caroline Slidell Perry)와 결혼했다.”

ㅡ> 페리 제독이라는 자는 우리도 익히 아는 인물이다. 그는 클린턴 행정부 시절 국방장관을 지내며 북핵협상 조정관으로 활약했던 윌리엄 페리(William James Perry)의 조상이다. 페리 제독은 1858년 65세에 간암으로 사망했다고 위키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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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 차일드의 또 다른 에이전트인 아론 H. 팔머(Aaron H. Palmer)는 미국 정부에서 컨설턴트로 일했다. 팔머의 계획에 따라, 페리 제독은‘무력 외교(혹은 함포 외교)’의 깃발을 날리며 ‘흑선’(쿠로후네. 黒船. くろふね)을 타고 1853년 봄에 뉴욕을 떠나 일본으로 향했다. 그는 1853년 7월 8일 일본에 도착해 미합중국 대통령 밀라드 필모어(Millard Fillmore)의 공식 외교 서한을 제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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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편지의 초안을 작성한 이는 전(前) 하버드 대학 총장이었던 에드워드 에버렛(Edward Everett) 미 국무장관이었다. 페리의 소함대는 ㅡ 명백하게 사악한 꿍꿍이를 품은 채 ㅡ 2개의 전함과 2개의 증기 동력 외륜선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미해군은 페리의 선박이 일본인이 보유한 것보다 우월하고 위협적임을 확신했다. 페리는 일본인이 필모어 대통령의 서한에 있는 조항을 거부하면 그 즉시 군사력을 사용할 만반의 준비를 갖춘 상태였다. 그러나 페리는 일단 일본 정부가 편지 내용을 파악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주기로 했다.”

ㅡ> 그래서 일단 페리는 미국으로 ‘빽’해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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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4년 3월 31일에 페리가 일본에 재차 방문했을 때 양국 사이에는 가나가와 협약이 이루어졌다. 시모다와 하코다테 두 항구를 미국 무역업자들과 상인들에 개방했다. 이로써 페리는 자신이 부여 받은 초기 임무를 달성하는데 성공했다. 이로 인해 일본은 자국으로 몰려 들었던 서양 무역업자들과 상인들에게 문호를 개방했다. 이 조약으로 일본은 200년 간의 ‘쇄국 정책’을 종식시켰다. 그는 도쿠가와 가문의 막부가 통치했던 에도막부 시대(1603-1868) 일본의 실질적 지배자였던 쇼군과 협상을 벌였던 것이다.”

ㅡ> 일본은 사실상 우리처럼 ‘쇄국’을 한 적이 없다. 나가사끼를 통해 300년 동안이나 네덜란드 상인들이 들락날락거렸으며 서구 사정과 문물에 대해 조예가 깊은 자도 비록 소수이긴 했으나 분명 존재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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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 천황인 무츠히토는 ㅡ 히로히토의 할아버지다 ㅡ 메이지 시대(1867-1912) 동안 통치했다. 메이지 초기에 군대는 일본 사회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사가 반란 및 사츠마 반란과 같은 내부반란과 수많은 농민 봉기로 인해 ‘일본의 군사화’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일본은 자국 군국화의 일환으로 영국과 프랑스에서 선박을 대량 구매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종종 ‘국제 금융 브로커들’이 개입했다. 예를 들면, 1868년 일본이 서구 국가들에게 주문했던 선박들 중 대다수는 국제 은행가들로부터 대출을 받아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리고 일본의 군대와 정치와 비즈니스 분야를 장악했던 일본의 엘리트 세력은 이전의 사무라이 출신들이거나 그 후손으로 이루어져 있었기 때문에 인적 구성 자체가 매우 호전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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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 여기서부터가 중요하다. 일본은 서구 제국주의 세력이 지금 상태에서 자신들이 도저히 감당할수 없는 엄청난 힘을 가졌음을 직감하고 자구책을 마련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를 지체없이 실행한다.

“메이지 정부는 곧 서구 제국주의에 위협을 느끼기 시작했다.”

ㅡ> 일본은 이미 청제국이 두 차례의 아편전쟁을 통해 영국 군대에게 속절없이 무너지고 말았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에 ‘서구의 위협’을 대단히 심각하게 느끼고 있었다. ‘여차하면 중국 꼴 난다’는 공포가 도사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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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일본은 경제 및 산업 기반을 강화하고 외세로부터 일본을 지키기 위해 부국강병(후코쿠 교헤이) 정책을 고안해 냈다. 이 정책은 서구를 따라잡기 위해 일본 사회를 변형시키는 장기간의 정책을 수반했다. 프러시아 장교인 야콥 메켈(Jakob Meckel) 소장은 독일 군대 모델이 프랑스 모델보다 우월하다고 주장하면서 [프랑스 VS. 프러시아 전쟁](1870년 7월 19일-1871년 5월 10일)에서 프러시아가 승리한 것은 바로 그것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했다.

육군참모대학과 일본군 참모들은 프러시아에게 일본 군대를 프러시아 시스템으로 변형시키는데 도움을 달라고 요청했다.

프러시아의 참모총장 헬무트 폰 몰트케(Helmuth von Moltke)가 야콥 메켈을 일본으로 보냈는데, 여기서 메켈은 미래의 총리인 가쓰라 다로와 야마가타 아리토모 장군과 긴밀히 협력했다. 그는 클라우제비쯔(Clausewitz)의 군사이론과 프러시아식 전쟁게임 개념을 소개하고 수많은 사람을 천거했다. 그 후 일본은 군대의 지휘체계를 재편성하고 수송 인프라를 강화했다. 1873년에 새롭게 전쟁 장관으로 지명된 야마가타 아리톰은 국민개병제를 도입했다. 그리고 1882년에 선포된 제국의 칙령에 따라 일본 군대는 황제에 대한 절대적인 충성과 군사적, 애국적 가치를 다양한 출신 배경을 가진 수 천 명의 군인들에게 주입시켰다.”

ㅡ> ‘황제에 대한 절대적 충성’ . . . 이로써 일본은 군국주의로 가는 길을 아무런 저항없이 닦을 수 있게 되었다. 이 대목을 헌법에 집어넣은 자가 바로 이토 히로부미다. 그의 전임자 오쿠보 도시미치는 메이지 유신 광란 질주로 1878년 5월 14일 이에 불만을 품은 이시카와현의 사족 시마다 이치로 등 6명에게 도쿄에서 암살당했다. 같은 일본인들에게 칼맞아 뒈진 것이다. 그러나 이토는 주지하듯이 안중근 의사가 쏜 총을 맞고 1909년 10월 26일 중국 하얼빈에서 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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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러시아 방식의 부국강병 모델은 ㅡ 일본을 농업국가에서 근대적 산업과 강력한 군사력을 보유한 주도적 국가로 전환시켰는데 ㅡ 야마가타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는 원래부터 해외로의 군사적 팽창을 지지했으며 국내에서는 강력한 권위주의 정부의 수립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제국주의적인 팽창 계획은 실로 엄청난 비용이 드는 사업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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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 후기의 정당 출현과 더불어, 겐요사(Genyōsha, 玄洋社-현양사, 1881)와 고쿠류카이(Kokuryukai, 黑龍會-흑룡회, 1901)와 같은 비밀 혹은 반비밀 친제국주의 외곽 테러 조직이 생겨났다. 이들은 정치 활동과 더불어 준군사 무장 테러 활동을 수행하고 군사 첩보 수집에도 관여했다. 이들은 일본 국내 문제에 대한 탈출구로 제국주의 침략을 지지하는 국가 후원 테러 도당들이다.(민비 시해, 일진회 배후 조종, 독도 침략 허위사실 유포 등) 그러나 공격적인 외교 정책과 결합해서 강력한 군대를 구축하는 일은 엄청나게 돈이 드는 작업이다. 일본 같은 농업국가의 국내 잉여자본으로는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거대 프로젝트다. 그래서 그 천문학적 액수의 돈은 반드시 국제 은행업자들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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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은행가들은 일본에게 거대한 규모의 대출을 해주면서 동시에 정치적 압력도 부과했다. 그것은 바로 취약한 이웃 나라인 조선을 침략하라는 주문이었다.”(가쓰라-테프트 밀약으로 구체화됨)

ㅡ> 계산기 한번 ‘뚜드려’ 보자.

일본에게 ‘강한 군대’를 안겨주면, 일본은 그 군대를 가지고 뭘 하겠는가? 국내에서 외적의 침입해 대비해 으쌰 으쌰 훈련하면서 즐거워하는 것으로 만족하겠는가? . . . 아니, 대출금을 상환해야 할 것이 아닌가 말이다! 그러려면 당연히 ‘약탈’을 해야 하는 것이다. 국제 은행가들이 명시적으로 침략을 명령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것이 단지 순수한 경제적 차원에서 돈을 꾸어준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워낙 교묘해서 몇 번이고 곰곰 되짚어 봐야 할 대목이 바로 이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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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대부업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내가 니들 일본에게 통 크게 대출로 쏜다 이거야! 그럼 니들은 뭘 해야 되겠니? . . . 강력한 군사력을 가지고 주변에 약해 뵈는 놈들을 붙잡아 인정사정 보지 말고 조지란 말이야! 전쟁해서 약탈하란 말이야, 알아듣겠냐? . . . 니들이 전쟁에 소질이 있는 거 같으면 우리가 앞으로도 계속 쭉 쭉 대출해 줄 테니 그런 건 걱정 안해도 된다! OK! . . . . ”


사실 전쟁은 ‘경제활동의 연장(extension)’이다. 일본이 청일전쟁 승리의 결과로 중국에게서 받은 배상금( = 약탈금)이 당시 일본의 한 해 국가예산의 20%가 넘는 금액이었다. 전쟁이야말로 아주 ‘노나는’ 경제활동 비즈니스인 것이다. 이처럼 제국주의적 팽창은 레닌이 홉슨의 책을 그대로 가져다 베낀듯한 책에서 말하듯 “자본주의의 합법칙적 전개나 필연적 귀결”. . . 뭐 그런 게 절대 아니다! 돈 꾸어주는 국제 대부업자들이 유럽 국가들(일본 포함)을 너나 할 것 없이 ‘호전적 싸움꾼’으로 무장시켜 전쟁으로 내몰아 대출금을 가장 빠르게 회수할 있는 상환 방식일 뿐이다.(‘자본의 회전율’이 원심분리기 만큼이나 빠른 유일한 방법이다. 물론 이러한 언급으로 인해 제국주의에 대한 “조야한 인식”이라며 항의와 비난과 조소가 빗발치겠지만 어쩔 수 없다! 사실이 그런 걸 어찌 하겠는가!) 국제 대부업자들은 독일의 라인형 자본주의에 특징적인 ‘인내자본(patient capital)'처럼 자국(여기선 타국)의 경제가 충분히 발전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주고 한 없이 마냥 기다리는 무슨 망부석(望夫石)같은 ‘애국적’ 자본 보유자들이 아니다. 그들의 대가리 속에는 무슨 짓을 해서라도 ㅡ 그들의 대행자에게 전쟁과 살육을 통해서라도 그리고 마약/무기 거래와 노예 무역 같은 것을 독촉해서라도 ㅡ 한탕 크게 하는 것 이외에 아무 생각이 없는 탐욕의 뱀파이어들이다. 같은 인류가 아니다! “별에서 온 그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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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물정 모르는(혹은 외면하는) 이런저런 엉터리 이론적 객담(客談)들 ㅡ 그 중에 가장 압권은 임마누엘 월러스틴류의 “세계체제론”과 가라타니 고진의 “세계공화국론”이다 ㅡ 을 집어치우고 전세계 인민의 주적이 바로 서구 장기 역사 과정에서 유럽 카톨릭 제국을 무너뜨리고 흉칙한 메두사의 모습으로 역사 과정에 “보이지 않는 손”이 되어 전면적으로 개입해왔던 ‘글로벌 금융카르텔 뱀파이어’임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국제)정치학의 알파요 오메가다! 산업 자본가들 나부랭이들은 오금이 저려 어쩌지 못하는 거대한 힘을 가진 유비쿼터스한 리바이어던(Leviathan)같은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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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면 정치’를 아무리 샅샅이 뒤지고 분석해본들 누가 ‘절대반지’를 가진 존재인지 답이 안 나오게끔 되어 있다. 아무리 열공해도 ‘총체성’을 확보할 수 없다. 공식 아카데미판에서 떠도는 지식으로 총체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 있다면 그(녀)는 “비오는 날 먼지나게 맞을 수도 있다”고 믿는 자가 될 것이다.

‘대항해 시대’ 이후의 국제정치경제의 ‘역사적 구조’를 레이저빔처럼 꿰뚫어 볼 수 있는 하나의 시각이 있으니 . . . . . . 그것은 바로 초국적 기업조폭 “신(新)동인도회사론”이다. 부족하지만 필자가 주조한 개념이다. 동인도회사가 뭐 했던 회사인지는 다 알 것이다. ‘영국 테러 제국주의’의 핵심에 자리잡으며 화사 설립 후 소수 과두들이 영국 국내의 부는 물론 더 나아가 전유럽의 부를 싹쓸이한 후, 자체 무장력을 지니고 “제3세계”로 눈을 돌려 약탈원정을 다녔던 ‘국제 무장테러조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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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우리가 “식민지”라고 통칭하는 “역외 테러통치 소굴(offshore den governed by terror)”의 확산은 이처럼 ‘무력’에서 현저한 우위를 확보한 ‘회사 소속’ 서구 무장 테러 약탈자들의 ‘이권 구역 확장’으로 볼 수 있다. 국가가 주체가 아닌 동인도’회사’가 주체가 되어 경영되는 ‘라티푼티움 대농장’이란 말이다. 이는 그 이전 스페인의 식민지 경영과도 사뭇 다르다. 적어도 그들은 식민지 주민을 식민 정복자들과 마찬가지로 ‘군주의 신민’으로 여겨 평등한 존재임을 선언하는 칙령을 만들기라도 했다. 물론 실행 여부는 공식 칙령과는 별개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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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동인도회사에서 “제국주의 국가”(영국)로 이전되는 이익금 혹은 수수료가 정확히 얼마나 되었는지에 관한 실증적 자료를 아직까지 본 적이 없다.(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극미하다는 짐작은 해볼 수 있지만 그런 자료 자체가 아예 없는 것 같다. . . . 물론 세계 여기저기서 약탈한 문화재는 런던에 지천으로 널려 있긴 하다. 그러니까 내 말은 “영국 제국주의”가 ‘국적있는 약탈’을 통해 제국 본국에 제대로 송금을 해주었더라면 아주 조금이나마 ‘낙수효과(trickle-down effect)’를 가졌을 터인데, 그래서 제국 본국의 신민들이 “야, 이거 제국주의 하니까 우리한테도 떡고물이 떨어지네! 제국주의가 뭐 꼭 나쁜 것만은 아니네! 우리 살림살이가 눈에 띄게 좋아지잖아! 제국주의 만세!” . . . 우리는 이런 말을 했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만약 그랬더라면 화려하기 짝이 없던 “대영제국”시대에 런던 빈민가 노동자들이 그렇게 비참하게 살았을 리가 없지 않은가 말이다. 결국 식민지 경영에서 나오는 산더미 같은 돈은 제국주의 국가로 환수된 것이 아니라 거의 대부분은 동인도회사의 몇몇 주주들이 꿀꺽했다는 게 결론이다. 그럼 ‘식민지 초과 이윤’이라는 개념이 설 자리를 잃게 되는 것이 아닌가?? . . . 아~~` 복잡해 ㅠㅠ 이건 향후 연구과제로 미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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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인도 회사는 당시 어리버리 분열되어 있던 인도(India)를 이이제이(以夷制夷)로 ‘정복’하고 얼마 후에는 두 차례에 걸친 “아편전쟁”을 통해 청제국을 피로 물들였다. 영불연합 테러단이 중국 문화의 정수 중의 정수인 ‘원명원(圓明園)’을 약탈하고 불태우는 대목에선 모골이 송연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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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 유신 이후 "동아시아의 악의 축"으로 자리잡은 일본의 제국주의적 팽창 뒤에는 언제나 그렇듯이 당시 ‘글로벌 금융 카르텔’의 양대 소굴인 영국과 미국 정부의 지원이 있었다는 점도 기억하면 좋겠다. 중국을 피바다로 물들이고 짜르 러시아를 도륙내라며 무한정 자금지원을 해주었던 바로 그들 . . . 일본을 일본으로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본은 또한 국제 금융카르텔이 동아시아에서 애지중지 양육한 괴물이었다는 점도 동시에 각인하면 좋을 것이다. 온갖 전쟁과 살육의 광란장에서 천문학적 이익을 챙기는 자들 . . . 도저히 같은 인류라고 볼 수 없는 반율법 탐욕 악귀들, 그리고 그 악귀들의 바램대로 움직였던 일본 군국주의 수괴들과 국내 친일 부역자들 . . . 모두 같은 라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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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튼 일본을 바로 아는 것도 참으로 만만치 않은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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