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수준에서는 우리도 진실을 알고 있다. 식육 생산이 깔끔하지도 유쾌하지도 않은 사업이라는 것을 안다. 다만, 그게 어느 정도인지는 알고 싶지 않다. 고기가 동물에게서 나오지만 동물이 고기가 되기까지의 단계들에 대해서는 결과라는 사실조차 생각하려 들지 않는 수가 많다. 이처럼 우리가 어느 수준에서는 불편한 진실을 의식하지만 동시에 다른 수준에서는 의식을 못하는 일이 가능할 뿐 아니라 불가피하도록 조직되어 있는 게 바로 폭력적 이데올로기다. '알지 못하면서 아는' 이 같은 현상은 모든 폭력적 이데올로기에서 공통적으로 볼 수 있다. 바로 이것이 육식주의의 요체다.
- <우리는 왜 개는 사랑하고 돼지는 먹고 소는 신을까> 멜라니 조이-
우리는 동물과 고기를 다르게 인식한다.
닭과 치킨.
이름이 다른 것 자체가 우리의 인식에서 동물과 음식을 연결하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다. 어렸을 때부터 먹어온 치킨이지만 본모습을 생각하지 않았다. 어디서 왔을까, 어떤 과정이었을까. 이런 의문없이 먹었고 치킨은 그냥 눈 앞에 고기였다. 의심하지 않으면 자연스럽다고 느끼고 '원래' 그런 것이 된다. 하지만 '원래'가 어디있는가. 노예가 원래인가? 가부장제가 원래인가? 바꿀 수 없는 게 아니다. 동물을 잔인하게 죽이고 그 시체를 먹어왔던 게 편했던 이유는 육식주의의 환상 때문이다. 그걸 해부해서 들여다본다면 달라진다. 내가 가담한 폭력이기에 부정하고 회피했지만 내가 먹지 않으면 된다.
폭력적 이데올로기를 보자. 그리고 진정한 자유의지로 선택하자.
follow me commet and like please
Downvoting a post can decrease pending rewards and make it less visible. Common reasons:
Subm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