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의 실제 (12~13장)

in peterdrucker •  6 years ago 

내가 경영자인가?라고 묻는다면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도 즐거운 부분이 있지만 내가 걸어가야할 길인가는 잘 모르겠다. 성취와 보람이 있겠지만 경영자가 좋은 직업이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난 자유롭게 살고싶다. 그 삶의 목표를 위해서 영업, 경영이란 분야에 일부 관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이유때문인지 그의 책을 경영이란 관점보다는 사람이 살아가는 길의 한 분야를 본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내 삶에 대한 경영자다.

경영자는 경영을 해야한다로 시작하는 12장은 제목이 신선한다. 우린 너무 당연한 것을 잊고 산다. 직급이 주어지는 것은 그럴만한 경험, 지식, 성과를 기대하는 것이고, 직책은 직책에 부과된 의무를 책임감있게 하라는 것이다. 당연한 정의를 통해서 돌아보는 그의 접근 방식이 좋다. 경영자는 직속상관의 명령보다 성과목표를 중심으로 경영하고 통제하라고 한다. 이런 당연하고 교과서적인 수행이 실제 현장에서는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상위 경영자는 하고자 하는 바와 나름의 이유가 있고, 하위 경영자의 환경에서는 항상 자원과 시간이 부족뿐만 아니라 그 일을 할 인적 자원이 부족하다. 경영자의 직무가 실질적인 직무여야한다는 것은 현장을 다 반영하지 못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경영은 현장을 기반으로 한다.

경영자는 최종 결과를 제시하고 내가 한 성과를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앞으로 나가갈 방향을 제시하거나 그 방향에 대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 이런 '리더로써의 권한은 지식으로부터 나온다'는 설명은 타당하다. 모르면 할 수 없다.

경영책임은 내가 목표달성을 위해 도울 수 있는 사람들의 숫자를 의미한다. 드러커의 생각을 돌아보면 경영책임이란 리더로써 그들과 함께 구성된 조직의 목표를 위해서 각각의 구성원에 헌신하는 행위를 전제한다. 그런 점에서 보람된 일이지만 기력이 쇠잔해지는 일이다. 나처럼 자유롭고 싶은 사람에게는 빨리 그들을 도와주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좋은 일이나 사람이란 참 그렇게 살아가기 힘들다. 어째던 힘든 일이다.

권한에 대한 포괄적인 생각은 내가 예측하는 바와 유사하다. 물론 생각이 유사하다고 꼭 그렇게 행동하지는 못하지만 말이다. 직무수행을 위한 최대의 영역과 권한을 갖지만 현장에 적합한 의사결정이 되도록 위임이 잘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말은 쉽지만 위임을 한 순간부터 위임자는 자신의 머리와 심장사이에서 벌어지는 끊임없는 투쟁에서 승리해야한다. 타인 이전에 내가 위임의 과정에 있는 것을 의심하고 불신하는 갈등이 있기 때문이다.

최전선 즉 현장의 권한과 결정을 그들이 감당하지 못할 때 보다 높은 의사결정자가 참여한다. 우린 그러길 기대한다. 가끔 그렇지 않은 상위 경영자가 실망스럽고, 나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과제를 들고오는 하위경영자들의 일에서 물러서지 않기 위해서 고군분투중이다.

이 전제의 어려움이란 하위체계의 사람들이 모두 이런 구조를 학습하고 이해하고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실의 세계는 그렇게 이상적이지도 아름답지도 않다. 따라서 확인하고 대화를 통해서 소통하고 신뢰를 쌓아야 한다. 전투에 임한 장수는 왕의 명령을 듣지 않을 수도 있다. 목표를 이해하고 수행하는 방향을 잘 이해한 장수를 육성하고 투입하는 그 결정은 상위직급자의 책임인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내가 결정하지 않은 것들까지 나에게 책임이 돌아오는 일상다반사는 흔하다. 드러커라면 그런것도 감당한 역량을 키우라고 할까 무섭다.

모든 직무가 주어질 때 권한은 책무를 수행하기 위해서 사용해야 한다. 책무는 100%의 의무이고, 권한은 선택적인 것이다. 그 분별을 하지 않는 현장은 많다. 그 달콤함의 유혹에 빠져서 스스로를 망치는 사람도 많다. 성과중심으로 평가하고 우수자를 포상하라고 말한다. 나는 우리나라의 포상은 자본주의적이지 않다고 생각한다. 망한 사람은 없지만 모두가 가난한 공산주의 방식일때도 많다. 조금씩 조정이 되어가지만 성과자에겐 주변의 상황을 이야기하며 품앗이하듯 나누고, 어려운 상황이 초래하면 그 원인에 책임이 많은 사람에게 마이너스 포상을 한다. 제대로 칭찬하고 제대로 혼내지 못하는 구조가 많다. 동시에 환경적으로 탄력적이지 못한 경영환경, 근로환경도 한 몫한다. 인간적이라고 말한다. 나도 비판보다는 참 어려운 문제로 다가올 때가 많고 억울할 때도 많고 기분 나쁜 때도 있다.

어찌 되었든 책에서 말하는 경영자, 리더들은 그와 함께 하는 사람들이 성장하고 한 분야를 맡아 수행하도록 교육, 지원, 협조, 자원확보, 정보조달을 해야한다. 물심양면으로 살펴 그들이 보호받고 있고, 그런 신뢰를 통해서 상호 기여하며 발전하는 조직을 이끌라는 말과 같다. 그 과정에서 alignment가 자연스럽게 생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직원의 숫자, 팀원의 숫자, 조직의 숫자만큼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요구사항을 통합하거나 해결하는 것은 쉽지가 않다. 나라님이 정책을 세우면 백성들이 대책을 세우는 것은 당연한 것처럼 말이다. 경영자, 리더란 재능이 아니라 그것을 품을만한 품격과 성품의 수양을 바탕으로 선택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것을 늦게 알지 못하면 결국 공자님 말씀처럼 대인이 아니라 소인의 격에 머물게 된다. 그들의 의무를 이해하고 당위성을 깨닫게 하라고 말하는 것은 리더, 경영자는 수단을 제약을 갖은 것 처럼 보이지만 어떤 면에서는 제약이 없는 무한한 가능성도 존재한다. 감독관계가 편리하고 현실의 많은 사람이 그것을 사용한다. 하지만 그 편리함이 얼마나 옹색한 것인지를 알게된다면 무궁한 방법이 존재한다는 것도 알게된다. 그 대상이 모두 사람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되짚어보면 이 말은 스스로 그런 사람이 되도록 함양함으로써 풀수 있다. 그런 점에서 그의 말은 참 못됐다. 편하게 살려는 사람들에게 질책을 가하는 말과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대충 살려고 하는 사람에게 성인군자의 길을 가기 위한 평생 자율학습 커리큘럼을 던지는 것과 같다.

13장은 조직 정신(조직문화)에 대한 이야기다. 학교 다닐때 경영전략 수업의 끝자락에 아주 작은 챕터로 기업문화에 대한 부분이 있었다. 그때 나는 그것이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똑같은 수업을 들어도 다들 앎의 수준이 다르고 성적도 다르다. 하루의 수업을 듣는 과정에서도 내가 오늘 기분좋게 등교한 날과 복잡한 사연과 스트레스를 받은 날의 결과가 다르다. 사람은 기분이 나쁘면 성과가 나오지 않는다. 호기심이 없다면 기폭제가 없는 것과 같다. 그런데 아주 조금 계량적으로 설명하기 모호하나 중요하다라는 내용이 참 실망스러웠다. 그런데 드러커의 비전은 세련된 비전부터 시작된다.

평범한 사람이 비범한 일을 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이 조직의 목적이다.

우리가 함께 하는 의미를 이렇게 멋지게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은 통찰력, 사람을 폭넓게 이해하는 인문학적인 지식과 품격을 대변하는 것 같다. 나는 하루하루 비범한 일이 아니라 당연한 일이 당연히 안되는 상황에서 허우적대는 일이 일상다반사다. 이런 부정적인 생각을 하다가도 그의 글을 보면 매일 매일 기본이 지켜지는 것이 위대한 일이다라는 긍정적인 생각도 하게 된다. 정신승리법일 수도 있다.

대단히 건조하지만 올바른 조직정신을 개인들의 친화가 아니라 목표달성, 달성 성과로 판단한다는 것이다. 좋은 조화가 성과 달성에 도움이 되지만 좋은 조화만 되고 성과 달성이 안된다면 조직이 설립하는 목표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조직이 목표가 없다면 하나의 무리, 떼에 불과하다.

옳은 말이지만 조금은 인간미가 떨어지는 말이다. 하지만 조직의 성과를 통해서 분배가 되고 삶을 유지한다는 관점에서 진실은 불편한 것이고 받아들여야 한다. 책의 말처럼 뛰어난 성과 도출자가 위협적인 존재로 인식된다면 조직이 나쁘다고 말한다. 하지만 사람인지라 내가 부리는 제갈량은 참 좋으나 제갈량이 상사면 미쳐버릴 것이 분명한 사람은 차고 넘친다. 그것이 문제다.

그의 강경한 어조중 빈약하고 평범한 성과를 포상하거나 용인해서는 안되며, 낮게 성과목표를 설정하는 사람이 그 직무를 수행하도록 허용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강등, 해고도 불사해야 한다고 한다. 동시에 실수를 통한 배움의 기회도 허용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나라의 기업문화에서 이것이 얼마나 수용될까는 조금 의문스럽다. 대기업 중심으로 실행의 수준이 좀더 높다고 볼 수 있다. 기업의 규모가 작을 수록 인정과 배려로 냉철해지지 못하는 점이 있다. 또한 환경적으로 경쟁적인 환경, 재도전의 기회가 야박한 환경은 그 실행을 더디게 한다. 드러커는 성과 기준을 엄격하게 유지하는 것이 조직 정신과 성과를 보장하는 길이다라고 말한다. 동시에 개인적인 사정을 고려한 결정은 해당 개인에게 큰 배려를 하는 방향으로 추진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 균형점을 유지하는 것, 실행에 대한 기술적 방법이 우리사회는 미숙하다. 사실 어쩌라는 것인지 애매하다. 그 두 가지가 상충적으로 다가온다. 그 뜨거운 감자 두개를 들고 계속 고민하면 더 나은 대책을 만들라는 말로 이해하기로 했다.

평가와 보상에 대해서는 위에서 언급한 위임부분과도 연관이 있다고 생각한다. 평가, 즉 확인작업은 피평가자를 자로재어 옥죄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확인하고 지원, 교육등 리더의 책무와 피평가자가 의무를 이해하는 과정의 연속이다. 그의 말처럼 그 직무를 수행할 능력이 없다면 성과란 없다. 그런데 이 평가가 먹고사니즘, 인간의 다양한 욕구와 결부되면 희한한 일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나라님 대행 알바사고도 별반 다르지 않다.

평가와 관련하여서 단기 수익에 기초한 지급이 조직을 잘못된 방향으로 이끈다고 한다. 기업을 다니는 많은 사람들은 수익이 나면 배분을 즉시하길 원한다. 이 균형이 깨지기 시작하면 기업은 야바위나 마찬가지다. 모든 기업의 분업화된 속성상 지랄총량은 변하지 않고 이를 어떻게 분업의 과정에 균등하게 배분하는가가 중요하다. 결국 단기 수익중심의 평가는 기업이 분업구조를 왜곡할 소지가 높다. 표안나지만 당연히 필요한 기업내의 일은 아무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줄껀 주고 안줄껀 안준다. 그 기준은 그때그때 다르다. 납득이가 필요할 때다. 그래서 우리는 대화를 하는 것이다.

평범한 조직과 위대한 조직을 직무를 넘어서 더 잘해보려고 노력하는 자발적 의도에 따라서 나눈다면 더욱 그러하다. 이런 그의 의견을 포함하면 경영자는 논리적 판단, 분석, 목표지향의 이성적 능력과 사람을 아울러 포용하는 성품, 태도가 포함된 완벽한 사람에 가깝다. 공자님이 말씀하는 성인과 다름이 없다.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못됐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성인이 되려고 회사를 다니는 것은 아닌데..그렇지 않은가? 하지만 삶이라는 관점에서는 그럴 수 있다면 좋다는 생각도 한다. 부족한 능력과 시간이 문제일 뿐이다.

말미에 경영자가 되지 말아야 한 사람, 리더십에 대한 언급이 있다. 그런 사람들을 일일이 언급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또 '리더십은 가르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배울 수 있는 것도 아니다'라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이 말을 따르면 生而知(태어날 때 부터 안다)라는 말이다. 그러면 이 책을 왜 머리 싸메고 읽고 있는가? 그런 사람을 찾는 방법에 대한 책, 그런 사람을 부리는 기술에 대한 책을 보거나 쓰거나 하는 것이 좋은 방법 아닌가?

대신 나는 깨닫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 스스로 각성하면 생각이 바뀌고, 생각이 바뀌면 태도와 행동이 바뀌며 결국 결과가 바뀐다. 머리로 이해했다고 다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깨달은 것은 그 방향을 지향하며 행동하게 된다. 소중한 것은 깊이 품으면 그것을 달성하거나 그것에 최대한 다가서게 된다. 성취의 수준과 속도가 다르더라도 방향이 중요하다. 모두 위대한 리더십을 갖을 수는 없지만 일정한 조직을 이끄는 리더십은 언제나 스스로의 의지로 만들어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일은 좀 많이 읽어야 겠다...

사본 -Sketch00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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