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년 7월 12일 시에스터 시간이 끝나자, 한국 외교관 3명은 짐을 싸서 이감할 준비를 하라고 했다. 이감된 곳은 BC동 3층 제5호 감방이었다. 20평이 넘는 넓은 방이었다. 거적대기 돗자리를 깔고 짐정리를 막 끝냈을 때, 예의 그 광대뼈가 보좌관 1명과 치화형무소장, BC동 구대장을 대동하고 나타났다.
그는 15분동안 머물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다. 첫째, 모두 건강한지 물었고, 둘째는 방이 호텔처럼 넓어서 편하겠으며, 셋째, 차입은 충분히 받고 있는지를 물었다. 광대뼈가 돌아가고 나서 다음과 같은 혜택을 배풀어준다고 알려왔다.
매일 아침 물을 긷고 나서, 노천 물탱크에 내려가 특별 목욕을 할 수 있다
감방에서 사용하는 변소용수, 세면 및 설겆이 용수를 길어오는 일을 제외하고는 일체의 육체적인 노동은 면제함
매일 아침 점호이후 오후 5시까지 시에스터 시간을 제외하고 감방문을 계속 개방하니 북도에 나가 체조, 구보, 산보, 일광욕 등을 마음대로 할 것
식수는 특별하게 뜨겁게 긇여셔 펄펄 끓는 물을 오전 오후 각각 반바께스씩 공급함
이런 조치와 함께 수감자들 사이에서 한국 외교관들이 석방된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안닝노이찡의 광대뼈가 7월 15일 한국인 외교관 3명을 심문하고, 심문이 끝나면 롱칸 형무소에 있는 2명의 한국인 민간인이 이곳으로 와서 합류한다. 그 이후 한국인들은 석방되어 모두 귀국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이말을 들은 이대용은 잠시 석방 희망을 가지기도 했으나, 그것이 그리 쉽지는 않으리라 짐작하고 있었다.
소문처럼 7월 15일 아침 8시경, 광대뼈는 한국인 외교관을 찾아왔다. 이대용은 광대뼈의 심문을 받았다. 광대뼈는 이대용에게 과거 경력을 자세하게 쓰라고 했으나 이대용은 자신의 경력을 써서 제출할 수 없다고 밝혔다. 외교관 신분으로 그것을 밝힐 의무가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광대뼈는 이대용의 경력을 1년단위로 자세하게 쓰라고 했으나 이대용은 안쓰겠다고 끝까지 버텼다. 안영사와 서영사는 이대용과 별도로 심문을 받았다.
심문이 끝나자 광대뼈는 이전과 달리 일어서서 약수를 청하며 월남담배 한갑을 주었다. 이대용이 받지 않겠다고 버티자 책상위에 담배를 던저 놓다시피하고 떠났다. 이대용과 안영사 서영사는 다시 6호감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롱칸 형무소에 있는 한국인 민간인이 오면 함께 귀국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희망에 부풀어 하루하루를 보냈다.
9월 10일 조금 이상한 소식이 들려왔다. 3년전 북한 공작원들에게 협조했던 유노인이 이대용이 10년전 주월국방무관시절 찍은 사진을 찾는다고 여기저기 수소문하고 다닌다는 것이었다. 이대용은 유노인이 북한편에 붙어 있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9월 12일 악명높기로 유명했던 간수 짝 중위가 이대용을 찾아왔다. 그리고는 농담이라며 이대용에게 ‘북조선’에 가지 않겠느냐고 권해왔다. 이대용은 완강하게 거부했다. 이이야기를 들은 이대용은 뭔가 꿍꿍이가 있다고 생각했다.
회유와 은근한 협박, 희망고문이 겹쳐 마음이 심란하셨겠네요~
유노인은 그 사진을 왜 찾으려 했을지 걱정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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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일이 있을 둣도 하다가, 무슨 꿍꿍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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