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수인계

in planning •  6 years ago 

어제와 다른 태양이 뜨는 날도 아닌데, 새해라고 정의하고 모두 마음 가다듬는다. 그런데 마음이 가다듬어지지가 않는다. 어제랑 별반 차이도 안 난다. 되려 감기 기운만 충만해서 이불에 붙어서 "쓰마이(사마의)"만 줄창 봤다. 그래도 새해라 해야 할 일이 연초부터 많다. 음력으로 18년은 아직 요단강을 안 건넜나 보네.

항상 팀장 파트장에게 회의 때마다 본인, 팀 목표와 실적을 물어본다. 처음에는 그룹웨어에 대시보드를 보면 되지 매번 물어본다고 불만들이 많다. 전화기로 찾아보는 휘발성 정보의 편리함이 좋지만 그것이 나의 정보가 될 확률은 낮다. 이제는 반자동 정도 알아서 자기 목표와 실적은 머리에 꿰고 있다. 자료를 안 보고 대충 찍어도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본인들은 조금 짜증이 나겠지만, 경영이 숫자로 표현되는 재무 또는 회계적 기준에 익숙해져야 하는 것과 이를 통해서 내 역할과 책임의 범위를 파악하는 목적이다. 그 역할과 책임의 범위를 파악해야 활동반경 내에서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여 전략적 접근(how to do)과 의사결정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새해 첫 회의는 팀장들과 모여서 회의를 했다. 이번에 조금 방식을 바꿨다. 조금 세분화해서 팀별 핵심 고객의 숫자를 적어보고, 1사 분기 중점적으로 추진해야 할 부분을 칠판에 써 보라고 했다. 목표와 실적이 똑같을 수 없다. 그렇게 만드는 것은 신의 영역이다. 그 차이만큼의 변화는 전략, 실행, 조정, 재실행이라고 이름 붙여진 노력이 필요하다. 사람에게는 그 차이가 발생하는 원인을 파악하는 통찰력이 중요하다. 시장이 다르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하지만 동일한 업을 수행하는 기업의 시장은 지역이 달라도 공통된 부분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것이 업의 본질이 보여주는 단면이다.

미주, 유럽, 일본 시장의 특색에 따라서 고객 요구사항이 다르지만 본질적으로 공통된 부분이 존재한다. 이 공통된 부분은 기업의 사업전략이 되거나 신규시장 창출 전략이 된다. 스탠딩 미팅 한 시간 안에 서로의 타인의 시장을 빠르고 핵심적으로 보게 할 목적이었다. 이를 통해서 내부적으로 collaboration, fast-follower, first mover의 역할을 서로 협력적으로 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미팅을 자주 할 필요는 없지만, 이 목적이 잘 운영된다면 협동만으로도 자발적인 실력 향상과 성과 증진은 가능하다. 한 달에 많아야 한 번이면 족하다. 이렇게 정리를 해주는 것으로 새로운 팀장을 환영한 셈이다. 매번 학생주임처럼 쫒아다니거나 보모처럼 모든 일에 관여할 수 없다. 제갈량이 그러다 과로사를 했는데,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 그러면 과로사 전에 사건사고에 치여 죽는다.

한 가지 팀장들에게 더 이야기한 부분은 전략 수립이다. 고상하게 전략이라고 말하면 어렵다. 어떻게 저것을 할 수 있지?라는 관심, 호기심이 출발이다. 상황을 판단하고 해야 하지만 너무 긍정적인 기준부터 대응 전략을 짜지 말라고 했다. 내가 생각하는 전략의 기본은 추진사항이 亡했을 때가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야 출구전략을 확보할 수 있다. 이 부분이 정리된 후 긍정의 전략을 build-up 해서 가장 현실적인 안을 Plan A로 결정하면 된다. 최악과 현실적인 대안 사이에 Plan B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내 생각에 Plan B는 존재하지 않는다. Plan A가 깨지면 Plan B가 바로 Plan A의 대체제가 된다. 현실에는 Plan A만 존재하면, 머릿속에는 형세의 변화에 따른 잠재적 Plan A가 존재할 뿐이다. 만약 그들이 제갈량과 같은 신출귀몰한 실력이 있다면 자신의 역량을 바탕으로 보다 적극적인 안을 세우고 만들어 가면 된다. 하지만 전쟁은 이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 패하지 않기 위해서 한다는 손자의 말을 따르면 어떤 방식이 생존에 효과적인지 생각해 볼만 하다.

새로 팀장이 된 동료에게는 의사결정과 사고력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의사결정을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정보 부족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무지에 근거한다. 모든 정보와 지식을 혼자 다 알 수 없다. 인간에게 협력이 가장 중요한 이유다. 그래서 본인이 팀을 이끌어 가는 방향이 중요하다. 자신의 비전을 바라보는 시선은 직선이지만, 자신의 비전을 만들어 가는 발걸음은 직선이 아닐 확률이 100%다. 방향을 잃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벗어난 폭이 너무 잦고 넓어지면 일관성이 사라져 자신의 비전이 퇴색된다. 신뢰를 잃기 때문이다. 폭이 너무 좁으면 융통성이 없고 사람이 모이지 않는다. 그 사이 어딘가에서 본인에게 적합한 균형점을 스스로 찾아야 한다. 그 폭은 팀원이자 동료들이 얼마나 참여하는지에 따라 달라지고 이 결과는 팀장이란 리더의 몫이다. 자신이 생각하는 장점과 타인이 바라보는 장점, 자신이 바라는 장점이 다 다르다. 그렇게 가다 보면 자신이 갖고 있는 좋은 장점을 잘 발현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고력에 대한 부분은 리더들이 갖는 어려움에 관한 것이다. 팀장이 되고 지위가 올라갈수록 물어볼 곳이 많지 않다. 다들 지위가 올라갈수록 책을 읽는 시늉이라도 하는 이유다. 그것이 필수라고 느낄 때는 스스로 부지런히 재촉해야 할 때다. 내가 갖고 있던 자리를 주는 입장이기에 말이 많아졌다. 영업적 진행사항이 어려움에 봉착할 때에는 그 세세한 문제를 깊이 바라보게 된다. 깊이 봐야 한다는 것이 잘 풀리지 않는 상황일 때가 많다. 그럴수록 더욱 깊숙이 찾아들어 미로와 같이 헤매는 경우가 많다. 망원경, 현미경의 배율을 넓히면 깊이 볼 수 있지만 좁게 볼 수밖에 있다. 배율을 낮추면 조금 낮게 바라보지만 넓게 볼 수 있다. 가끔 어려울 때 뒤로 물러서는 이유가 넓게 숲을 보기 위한 과정이라는 것, 그래야 스스로를 재촉하며 마음 졸이지 않게 된다는 것을 따로 이야기해줬다. 이로써 실무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니자만 실무를 직접 만지는 일은 깨끗하게 손 털은 기분이라 조금 시원섭섭하다.

난 또 어떤 일을 해야 할까 하는 작은 고민도 있고, 재미도 좀 떨어진다. 그 말속에서 익숙함이 주는 나태함을 놓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다. 이젠 조금씩 실무적인 사업전개는 동료들의 몫이고, 새로운 사업기회를 만들고, 사람들이 성장하는 것에 기여하는 역할로 초보운전을 시작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땅으로 돌아가고, 그 땅에서 새로움이 피어난다. 부모는 자식의 밑거름이 되는 것을 마다할 수 없듯, 젊은것들이 고인물이라고 놀리는 그들을 발판 삼아 조금이라도 더 나아가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해외사업본부를 맡아서 직무적인 목표는 달라지지 않겠지만, 내가 그 목표에서 해야 할 역할과 책임은 또 조정해야 할 때가 된 시점이다. 참나 물어볼 곳도 없이 더 머리 아픈 일이다. 어르신들이 하던 뜬구름 잡는 소리가 대략 감이 온다. 에휴...

재작년 제품 기획을 해서 특허도 받고, 조금씩 세상에서 그 성과를 만들고 있는 solution이 있다. 읍내에서 이 제품이 사용된다는 것을 볼 때마다 기분이 좋다. 아이디어는 내가 상상하고, 내가 생각한 꿈을 현실에 갖다 준 고마운 개발자들도 있다. 뭔가 이야기를 하려니 자기 자리에 가자고 한다. 벌써 바라던 것이 또 대략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몇 가지 필요한 사항을 관한 범위를 다시 이야기했다. 한 시간쯤 다시 칠판에 스케치를 하고 의견을 가감했다. 서로 생각과 의견을 맞춰보고 사진을 몇 장 찍었다. 다시 자리에 돌아와 스케치를 기획서로 다듬다 보니, 이것을 다시 사업기획으로 만들어 볼만 하다고 생각했다. 의견을 들을 수 있는 고객들에게 문의 메일을 보냈다. 그들의 생각을 들어보고 가다듬는 시간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사업은 현장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지 사무실의 자기 의지를 실현하는 만족의 놀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노먼이었는지 기억이 조금 불확실하지만 디자인을 잘하면 그 분야의 사업까지 디자인할 수 있다는 말이 다시 생각난다. 그렇게 바라보면 세상에 디자인 아닌 것이 없다. 인간이 발명한 최고의 것이 조직이란 말, 이 조직, 조직의 목표인 사업의 기획, 그 기획을 위한 인재육성 모든 것이 디자인 또는 기획의 범주라고도 볼 수 있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마주하는 시대는 세상과 산업이 고도화됨에 따라 기획 없이 섣불리 시작하는 것이 가장 큰 자원낭비의 요인이다. 뭔가 또 해야 할 것과 지난번의 경험을 통해서 조급하지 말고 융통성 있게 시간의 프레임을 기획해봐야겠다. 인간의 무늬를 인문이라 하듯, 그 무늬도 협력과 같이 서로 어울려야 좀 더 낫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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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runch.co.kr/@khorikim/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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