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서적 - 기형도

in poe •  3 years ago  (edited)

오래된 서적 (書籍)/기형도

          내가 살아온 것은 거의  
          기적적이었다.  
          오랫동안 나는 곰팡이 피어  
          나는 어둡고 축축한 세계에서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는 질서  

          속에서, 텅 빈 희망속에서  
          어찌 스스로의 일생을 예언할 수 있겠는가  
          다른 사람들은 분주히  
          몇몇 안되는 내용을 가지고 서로의 기능을  
          넘겨보며 서표(書標)를 꽂기도 한다.  
          또 어떤 이는 너무 쉽게 살았다고  
          말한다. 좀 더 두꺼운 추억이 필요하다는  

          사실, 완전을 위해서라면 두께가  
          문제겠는가? 나는 여러 번 장소를 옮기며 살았지만  
          죽음은 생각도 못했다, 나의 경력은  
          출생뿐이었으므로, 왜냐하면 
          두려움이 나의 속성이며  
          미래가 나의 과거이므로  
          나는 존재하는 것, 그러므로  
          용기란 얼마나 무책임한 것인가, 보라  

          나를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은 모두  
          나를 떠나갔다, 나의 영혼은  
          검은 페이지가 대부분이다, 그러니 누가 나를  
          펼쳐볼 것인가, 하지만 그 경우  
          그들은 거짓을 논할 자격이 없다.  
          거짓과 참됨은 모두 하나의 목적을 
          꿈꾸어야 한다, 단  
          한 줄일 수도 있다.  

          나는 기적을 믿지 않는다. 



          -소설문학' 1985년 11월호-

—-

로맨스 웹툰 댓글 보다 우연히 발견한 시구가 마음을 끈다. 이렇게 강렬하게 끌리는 시는 오랜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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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형도~~~ 완전 좋아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