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트북스 전자책 폴리애나 1] 21장. 질문과 대답

in pollyanna •  7 years ago 

21장. 질문과 대답 


하늘이 금세 어두워지고 소나기라도 올 것 같은 날씨였다. 폴리애나는 서둘러 펜들턴의 저택에서 나와 언덕을 내려가고 있었다. 집에 반쯤 왔을 때, 우산을 들고 마중 나온 낸시를 만났다. 하지만 그즈음 구름이 걷히고 하늘이 말끔해졌다. 


“북쪽으로 간 모양이에요.” 낸시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이럴 줄 알았는데, 마님이 굳이 우산을 들고 나가 보라고 하셨어요. 아가씨를 걱정하셔서 그런 거죠!” 


“이모가 그랬어요?” 폴리애나가 딴 생각을 하며 건성으로 중얼거렸다. 


낸시가 약간 코를 훌쩍였다. 


“제 말을 안 듣고 계신 것 같은데요. 이모가 아가씨를 걱정한다니까요!” 


“아!” 폴리애나는 곧 이모에게 해야 할 질문이 기억난 듯 한숨을 쉬었다. “미안해요. 이모에게 걱정을 끼쳐 드리고 싶진 않았는데.” 


“전 기뻐요.” 낸시가 불쑥 말했다. “정말이에요. 전 기뻐요.”


“폴리 이모가 걱정하는 게 기쁘다고요? 낸시, 그 놀이는 그렇게 하는 게 아니에요. 그런 일을 기뻐하다니요!” 폴리애나가 반대하고 나섰다. 


“놀이를 하는 게 아니에요. 그건 생각도 안 했어요. 마님이 아가씨를 걱정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모르겠어요?” 


“걱정은 안 좋은 기분이죠. 다른 뜻이 있나요?” 


낸시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럼 제가 말할게요. 그건 마님이 드디어 조금은 사람답게, 보통 사람처럼 되어 가고 있다는 뜻이에요. 아가씨에게도 그저 의무로만 대하는 게 아니라고요.” 


“어머, 낸시.” 폴리애나가 아연실색하여 말했다. “폴리 이모는 항상 의무를 다하시죠. 의무감이 강한 분이니까요!” 폴리애나는 자신도 모르게 조금 전 존 펜들턴이 했던 말을 따라하고 있었다. 


낸시가 킥킥거렸다. 


“아가씨 말이 맞아요. 늘 그러셨죠. 하지만 뭔가 달라졌어요. 아가씨가 온 후로요.” 


폴리애나의 안색이 변했다. 


“저기, 물어볼 것이 있는데요, 낸시. 폴리 이모는 내가 여기 있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아요? 내가 만약… 만약 여길 떠나면 이모가 속상해할까요?” 


낸시가 폴리애나의 근심 어린 표정을 빠르게 살폈다. 오래 전부터 이런 질문을 받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를 몰랐다. 솔직하게 대답하면 폴리애나의 마음에 상처를 줄 터였다. 하지만 오늘 오후 우산 일로 새로운 확신이 생겼다. 이제는 이 질문에 솔직하게 답할 수 있다. 오늘 일로 보건대, 낸시는 양심에 한 점 부끄럼 없이 이 사랑에 굶주린 아이의 마음을 안심시킬 수 있을 것 같았다. 


“아가씨를 좋아하냐고요? 아가씨가 떠나면 마님이 속상하겠냐고요?” 낸시가 흥분해서 외쳤다. “제가 방금 말해잖아요! 날이 조금 흐렸다고 빨리 우산을 가져가라고 했을 정도인데요. 아가씨가 좋아하는 예쁜 방을 가질 수 있게 아가씨 짐을 모두 아래층으로 옮기라고 하신 분이잖아요. 처음에는 아가씨가 오는 걸 아주 싫어하셨지만….” 


낸시가 당황하여 헛기침을 했다. 


“그것뿐만이 아니에요. 조그만 일들만 봐도 아가씨가 마님을 얼마나 부드럽게 변화시켰는지 알 수 있죠. 고양이니 개니. 그리고 마님의 말투도요. 정말 많은 것들이 변했죠. 아가씨가 여길 떠난다면 마님은 무척 서운해할 거예요.” 낸시가 방금 한 말을 만회하려고 더욱 열정적으로 말했다. 그때 폴리애나의 얼굴이 기쁨으로 환해졌다. 


“아, 낸시, 너무 기뻐요! 폴리 이모가 절 필요로 해서 얼마나 기쁜지 몰라요!” 


‘이모를 떠날 수 없어!’ 잠시 후 폴리애나는 자신의 방으로 올라가면서 생각했다. ‘난 항상 이모와 함께 살고 싶었어. 이모도 나와 함께 살고 싶어 했으면 좋겠어. 그걸 얼마나 바랐는지 나도 모르고 있었어.’


존 펜들턴에게 자신의 결심을 이야기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알기에, 폴리애나는 덜컥 겁이 났다. 그녀는 펜들턴을 무척 좋아했고, 그를 안쓰러워했다. 그가 오랫동안 그렇게 외롭고 불행하게 살아왔다는 것도 가여웠다. 또한 그것이 자신의 엄마 때문이라는 사실이 슬펐다. 그녀는 그가 다시 건강이 좋아졌을 때 그 큰 저택의 모습을 생각해 보았다. 조용한 방들과 더러운 바닥, 정돈되지 않은 책상. 그리고 그의 외로운 생활을 생각하니 그녀의 마음이 아려 왔다. 그녀는 누군가가 어디서 나타나 주길 바랐다. 그 순간 그녀는 갑자기 떠오른 생각에 기쁨의 탄성을 지르며 벌떡 일어났다. 


그 후 어느 날 폴리애나는 기회를 보아 존 펜들턴의 저택으로 갔다. 이윽고 그녀는 크고 어두침침한 서재에 존 펜들턴과 마주하게 되었다. 그는 길고 가느다란 손을 의자 팔걸이에 얹고 있었고, 발치에는 그의 충직하고 작은 개가 앉아 있었다. 


“폴리애나, 앞으로 평생 나와 ‘기쁨 놀이’를 해 주겠니?” 펜들턴이 부드럽게 물었다. 


“아, 그것 말인데요, 아저씨가 가장 기뻐할 일을 생각해냈어요. 그리고….” 


“너와 함께 사는 것 말이지?” 펜들턴의 입가가 약간 굳어졌다. 


“아, 아니요. 하지만….”


“폴리애나, 안 된다고 말하지 마라!” 펜들턴의 감정이 격양되었다.


“어쩔 수 없었어요. 폴리 이모가….” 


“가지 말라고 하던?” 


“물어보지 못했어요.” 폴리애나가 슬픈 얼굴로 더듬거렸다. 


“폴리애나!” 


폴리애나가 시선을 돌렸다. 상처 받은 그의 슬픈 눈을 차마 볼 수가 없었다. 


“물어보지도 않았다는 거냐?” 


“네. 물어보지 않아도 알아요. 폴리 이모는 나와 함께 살고 싶어 하는걸요. 저도 그렇고요.” 폴리애나가 용감하게 시인했다. “이모가 얼마나 잘해 주시는지 모르실 거예요. 그리고 정말로 가끔은 이모가 많은 일들에서 기쁨을 찾기 시작한 것 같아요. 아시다시피 절대 그런 분이 아니잖아요. 아저씨, 전 폴리 이모를 떠날 수 없어요!” 


긴 침묵이 있었다. 난로의 장작 타는 소리만이 들려올 뿐이었다. 마침내 펜들턴이 입을 열었다. 


“알았다, 폴리애나. 이모와 헤어질 수 없다는 얘기지? 이제 다신 너에게 부탁하지 않으마.” 마지막 말은 알아듣기 어려울 정도로 낮은 목소리였지만, 폴리애나는 듣고 말았다. 


“하지만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잖아요. 아저씨가 할 수 있는 아주 기쁜 일이 있어요. 정말이에요!” 


“내게 그런 일은 없어, 폴리애나.” 


“아니에요. 아저씨가 그랬잖아요. 여자의 손길과 아이의 존재만이 가정을 만들 수 있다고요. 제가 아이를 찾아 드릴 수 있어요. 저는 아니지만 다른 아이를요.”


“너 외에는 필요 없다!” 노여움에 찬 목소리였다. 


“하지만 알고 나면 생각이 달라지실걸요. 아저씨는 아주 친절하고 좋은 분이시잖아요! 프리즘이랑 금화를 생각해 보세요. 그리고 전도를 위해 모아둔 돈도요. 그리고….” 


“폴리애나!” 펜들턴이 사나운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또 그 말도 안 되는 소리구나! 전에 몇 번이나 얘기하려고 했는데, 난 전도를 위해 돈을 모은 적이 없다. 살면서 그런 것에는 한 푼도 쓴 적이 없어!” 


그는 폴리애나의 실망한 듯한 슬픈 눈을 기대했지만, 놀랍게도 그녀의 눈에는 슬픔도, 실망감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기쁜 듯 놀랄 뿐이었다. 


“와!” 폴리애나가 손뼉을 치며 소리쳤다. “정말 기뻐요! 그러니까, 이교도 아이들은 안됐지만요. 아저씨가 인도 아이들만 돕겠다고 하지 않아서 기쁘다는 말이에요. 다른 사람들은 인도 아이들만 도우려 하거든요. 그럼 아저씨가 지미 빈을 맡을 수 있을 거예요!” 


“누구를… 맡으라고?” 


“지미 빈이요. 아저씨가 말하는 ‘아이’ 말이에요. 그 아이도 아주 기뻐할 거예요. 서부에 있는 부인회도 그 앨 맡지 않을 거라는 얘기를 지난주에 해야 했거든요. 아주 실망했지요. 하지만 이제 이 소식을 들으면 정말 기뻐할 거예요!” 


“그래? 난 별로 기쁘지 않은데.” 펜들턴이 단호하게 말했다. “폴리애나, 이건 완전히 말도 안 되는 얘기야!” 


“지미 빈을 맡지 않겠다는 말씀이세요?”


“그래, 바로 그런 말이다.” 


“하지만 정말 좋은 아이인데.” 폴리애나가 더듬거렸다. 이젠 거의 울 것 같았다. “그리고 지미와 함께 있으면 외롭지 않을 거예요.”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난 차라리 외로운 걸 택하겠다.” 


폴리애나는 오랜만에 언젠가 낸시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그녀는 고개를 꼿꼿이 쳐들고 말했다. 


“아저씨는 살아 있는 귀여운 아이보다 어딘가 감춰 놓은 오래된 해골이 더 좋은가 봐요. 하지만 전 아이가 훨씬 더 좋다고 생각해요!” 


“해골이라고?”


“네. 낸시가 아저씨 옷장에 해골이 있다고 말했어요.” 


“뭐라고!” 갑자기 펜들턴이 고개를 뒤로 젖히고 웃었다. 그가 너무 심하게 웃자, 폴리애나는 불안한 마음에 울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고 펜들턴이 급히 똑바로 앉았다. 그의 얼굴이 다시 굳어졌다.


“폴리애나, 네 말이 맞아. 살아 있는 아이 쪽이 옷장에 있는 해골보다 훨씬 낫겠지. 하지만 그걸 바꿔치기하는 건 늘 힘든 일이야. 우린 여전히 낡은 것에 매달리려고 하니까 말이야. 아무튼 그 아이에 대해 더 자세히 이야기해 보렴.” 폴리애나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펜들턴의 큰 웃음이 답답한 공기를 청소해 준 것인지, 아니면 폴리애나가 작은 입술로 열심히 한 지미 빈 이야기가 감동적이었는지, 어쨌든 펜들턴의 마음이 한결 누그러졌다. 그날 밤 폴리애나는 집에 돌아가기 전, 다음 주 토요일 오후에 지미 빈과 함께 이 큰 저택을 다시 방문하기로 약속을 잡았다. 


“정말 기뻐요. 아저씨도 지미 빈이 마음에 들 거예요. 지미 빈에게 집과 가족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폴리애나가 작별 인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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