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트북스 전자책 폴리애나 1] 27장. 두 사람의 방문

in pollyanna •  7 years ago 

27장. 두 사람의 방문 


존 펜들턴에게 미드 선생의 진단 결과를 알려 주러 간 사람은 낸시였다. 폴리는 그에게 직접 경과를 알려 주겠다고 한 약속을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갈 수도, 편지를 쓸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낸시를 보내기로 한 것이다. 


예전 같으면 미스터리한 저택과 그 주인에 대해 알아볼 기회가 생겼다며 크게 기뻐했을 낸시였지만, 오늘은 마음이 너무 무거워 어떤 것에도 기뻐할 수가 없었다. 실제로 그녀는 존 펜들턴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몇 분 동안 주위를 둘러볼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저는 낸시라고 해요.” 펜들턴이 의아한 시선으로 방에 들어오자 낸시가 정중하게 인사했다. “폴리애나 아가씨에 대한 소식을 가지고 왔습니다.” 


“뭐지?” 


낸시는 그의 퉁명스럽고 짧은 말 속에 숨은 근심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좋지가 않아요.” 낸시의 목이 메었다. 


“그 말은….” 펜들턴이 말을 멈추었고, 낸시가 슬픈 듯 고개를 숙였다. 


“네. 의사 선생님 말로는… 다시는 걸을 수 없대요.” 


잠시 방에 침묵이 흘렀다. 이윽고 펜들턴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불쌍하기도 하지! 가엾어라!” 


낸시가 펜들턴을 흘끗 쳐다보았지만 바로 눈을 떨구었다. 그 뚱하고 까다롭고 냉정한 존 펜들턴이 그런 표정을 지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다시 입을 연 그의 목소리는 낮고 불안정했다. 


“잔인한 일이군. 다시는 햇살 아래서 뛰어다닐 수 없다니! 내 작은 무지개 아가씨가!” 


또다시 침묵이 흐른 후, 펜들턴이 불쑥 물었다.


“물론 그 아인 이 사실을 모르고 있겠지?” 


“알고 말았어요.” 낸시가 흐느꼈다. “그러니까 더욱 괴로운 거죠. 그 망할 고양이 때문에! 죄송합니다. 고양이가 문을 열어 놓는 바람에 폴리애나 아가씨에게 말소리가 들린 거예요. 그래서… 결국은 알게 되었어요.” 


“가엾어라!” 펜들턴이 다시 한숨을 쉬었다. 


“맞아요. 아가씨를 보셨다면 그런 말씀이 절로 나오셨을 거예요.” 낸시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아가씨가 이 사실을 알게 된 후 두 번밖에 만나지 못했지만 두 번 다 가관이었어요. 아가씨에겐 너무 뜻밖의 일이라 이젠 본인이 할 수 없는 새로운 일들만 계속 생각하고 있어요. 그리고 기뻐할 수 없게 되는 것도 걱정인 것 같아요. 아마 선생님은 아가씨의 놀이에 대해 잘 모르시겠지만요.” 낸시가 사과하듯 말을 끊었다. 


“기쁨 놀이라면 나도 알고 있어. 얘기를 들었지.”


“아, 그랬군요! 아가씨는 거의 모든 사람에게 얘기한 것 같아요. 하지만 이젠 아가씨 본인이 그 놀이를 할 수 없게 돼서 그게 걱정인 거죠. 다시 걸을 수 없는 것에서는 어떤 기쁨도 찾을 수가 없다고 했어요.” 


“당연하잖아!” 펜들턴이 화를 내듯 말했다. 


낸시는 불편한 듯 발을 꼼지락댔다. 


“저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러다 문득, 아가씨가 무언가 발견할 수만 있다면 훨씬 편해질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아가씨에게 그 점을 상기시켜 주려고 했지요.” 


“상기시켜 주다니! 대체 뭘 말이냐?” 존 펜들턴의 목소리는 여전히 화가 난 듯 초조하게 들렸다. 


“스노우 부인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그 놀이를 권했던 것 말이에요. 그들에게 아가씨가 했던 말들이요. 하지만 불쌍한 아가씨는 그저 울기만 하면서 그때와 상황이 같지 않다고 말했어요. 평생 불구로 지내야 하는 사람에게 기쁨을 찾는 방법을 얘기해 주는 건 쉽지만, 자신이 그 처지에서 기쁨을 찾으려니 잘 안 된다고요. 다른 사람들이 아가씨처럼 다치지 않은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지 계속해서 자신에게 말해 보지만, 그럴 때마다 다시는 걸을 수 없다는 생각만 떠오른대요.” 


낸시가 말을 멈추었지만 펜들턴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손으로 눈을 가린 채 앉아만 있었다. 


“그래서 전 아가씨가 늘 그 놀이는 어려울수록 더 재미있다고 한 말을 상기시켜 주려고 했어요.” 낸시는 힘없이 말을 이었다. “하지만 아가씨는 정말 어려울 때는 그렇지도 않다고 말했어요. 전 이만 가 봐야겠네요.” 낸시가 불쑥 말을 끊었다.


문가에서 잠시 망설이던 낸시는 뒤를 돌아보며 소심하게 물었다. 


“선생님이 지미 빈을 다시 만났다고 아가씨에게 전하면 안 될까요?”


“안 돼. 난 만나 보지도 않았어.” 펜들턴이 짤막하게 답했다. “왜 그러지?” 


“아니에요, 선생님. 그저… 지미 빈을 직접 데려오지 못하는 것도 아가씨가 걱정하고 있는 일들 중 하나거든요. 한 번 데려왔었지만 그때는 그 애에 대해 잘 보여 드리지 못한 것 같다고, 선생님이 아이가 있는 게 좋겠다고 생각하지 않을 거라며 걱정했거든요. 선생님은 무슨 말인지 아실지 모르겠지만 전 도무지 모르겠어요.”


“그래, 무슨 말인지 알겠어.” 


“됐네요. 아가씨는 그저 한 번 더 그 애를 데리고 가서 얼마나 좋은 아이인지 보여 드리고 싶다고 했어요. 그런데 이제 그렇게 할 수 없으니까요. 그 망할 자동차! 아, 죄송합니다. 안녕히 계세요.” 낸시가 도망치듯 돌아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훌륭한 뉴욕 의사가 폴리애나 휘티어가 다시는 걸을 수 없다고 말한 사실을 벨딩스빌 사람들이 모두 알게 되었고, 마을 전체가 전에 없이 뒤숭숭해졌다. 언제나 생글생글 웃으며 인사하던 주근깨투성이 얼굴을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리고 폴리애나가 하고 있는 ‘놀이’ 역시 거의 모두가 알고 있었다. 다시는 그 웃는 얼굴을 거리에서 볼 수 없고, 일상에 기쁨을 가져다주던 그 명랑한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니! 사람들은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것 같았다. 있을 수 없는 잔인한 일이었다. 


부엌이나 거실, 뒷마당에서 부인들은 그 이야기를 하며 눈물을 훔쳤다. 거리 모퉁이나 상점에서 남자들도 그 이야기를 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무엇보다 폴리애나가 자신의 상황 때문에 놀이를 할 수 없으며 그 어떤 것에서도 기쁨을 찾을 수 없어 힘들어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낸시를 통해 빠르게 퍼지면서 사람들의 근심은 더욱 커져 갔다. 


폴리애나를 알고 있는 사람에게 어떤 식으로든 똑같은 생각이 떠오른 것은 바로 그 무렵이었다. 그와 동시에 해링턴 저택의 여주인은 놀랍게도 손님들의 방문을 허용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아는 사람도, 모르는 사람도 있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해링턴가를 찾아왔다. 그들 대부분은 자기 조카가 알고 있으리라 생각지도 못했던 사람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집 안에 들어와 뻣뻣이 몇 분간 앉아 있다가 돌아갔다. 어떤 이들은 현관에 어색하게 서서 모자나 핸드백을 만지작거릴 뿐이었다. 책이나 꽃다발, 입맛을 돋울 진귀한 음식을 가지고 오는 사람도 있었다. 어떤 사람은 울음을 터트렸고, 어떤 사람은 뒤로 돌아 코를 풀기도 했다. 하지만 모두 다친 작은 소녀의 상태를 걱정스럽게 물으며 안부를 전했다. 폴리의 마음을 뒤흔든 것이 바로 이 안부 메시지였다. 


첫 번째로 존 펜들턴이 찾아왔다. 오늘은 지팡이도 없었다. 


“제가 얼마나 놀랐는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지경입니다.” 그가 냉정하게 말을 시작했다.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습니까?” 


폴리가 절망스럽다는 행동을 취했다. 


“물론 치료는 계속하고 있습니다. 미드 선생님이 도움이 될 만한 치료법과 약을 처방해 주셨고 워런 선생님이 그대로 실행하고 있지요. 하지만 미드 선생님은 거의 희망이 없다고 하시더군요.” 


방금 도착한 존 펜들턴이 갑자기 일어났다. 얼굴은 새하얗고 입가에는 깊은 주름이 잡혀 있었다. 그를 바라보던 폴리는 그의 기분을 잘 알 것 같았다. 그는 자신의 앞에서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그가 문가로 걸아가며 말했다. 


“폴리애나에게 전해줄 말이 있습니다. 내가 지미 빈을 만났고 앞으로 그 애를 양자로 삼기로 했다고 전해 주세요. 이 소식을 들으면 폴리애나가 무척 기뻐할 것 같다는 말도 함께요. 아마 내가 그 아이를 입양할 것 같습니다.”


여느 때의 평정심이 잠시 흔들렸다. 


“지미 빈을 입양하실 거라고요!” 폴리의 숨이 가빠졌다. 


펜들턴이 약간 고개를 들며 말했다.


“네. 폴리애나는 무슨 말인지 알 거예요. 폴리애나가 기뻐할 거라 생각한다고 전해 주세요!” 


“물론이지요.” 폴리가 더듬거렸다. 


“감사합니다.” 존 펜들턴이 머리를 숙이고 돌아서 나갔다. 


폴리는 거실 중앙에 멍하니 서서 놀란 눈으로 막 떠나고 있는 남자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귀로 듣고도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내용이었다. 존 펜들턴이 지미 빈을 입양한다고? 재산가에다가 교제를 싫어하고 뚱한 데다 극도로 이기적이라고 소문난 존 펜들턴이 그렇게 어린 아이를 양자로 맞이한단 말인가? 


폴리는 멍해진 얼굴로 폴리애나의 방으로 올라갔다. 


“폴리애나, 방금 펜들턴 씨가 다녀가셨다. 지미 빈을 양자로 삼기로 했다고 전해 달라는구나. 네가 이 소식을 들으면 아주 기뻐할 것 같다고 하셨단다.” 


폴리애나의 힘없는 작은 얼굴에 갑자기 생기가 돌았다. 


“그럼요. 기쁘고말고요! 이모, 지미에게 집을 구해 주고 싶었어요. 그런데 그렇게 좋은 집을 얻게 되다니! 게다가 펜들턴 아저씨에게도 아주 잘된 일이고요. 이제 아이가 있는 진짜 가정이 되었으니까요.” 


“뭐라고?” 


갑자기 폴리애나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펜들턴이 자신을 입양하려 했다는 말을 이모에게 하지 않은 걸 깜박했던 것이다. 자신이 사랑하는 이모를 떠날 생각을 잠시나마 했었다는 것은 도저히 말하고 싶지 않았다! 


“아이가 생겨서 다행이라고요.” 폴리애나가 더듬거렸다. “지난번에 아저씨가 여자의 손길과 마음, 아이가 있어야 가정을 이룰 수 있다고 하셨거든요. 이제 아이는 얻게 되신 거예요.”


“그렇구나.” 폴리가 아주 부드럽게 말했다. 그녀는 폴리애나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펜들턴이 폴리애나에게 자신의 아이가 되어 달라고 부탁했을 때, 그녀가 느꼈을 부담감을 조금 엿볼 수 있었다. 그녀야말로 펜들턴의 잿빛 집을 가정으로 바꿔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녀의 눈에 갑자기 눈물이 맺혔다. 


이모가 곤란한 질문을 던질까 봐 두려워진 폴리애나는 급히 화제를 바꾸었다. 


“칠턴 선생님도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여자의 손길과 마음, 아이가 있어야 가정을 이룰 수 있다고요.” 


폴리가 깜짝 놀라 돌아보았다. 


“칠턴 선생이! 네가 그걸 어떻게 아니?” 


“선생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으니까요. 가정이 아니라 그냥 방에서 살고 있다고 하시면서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폴리는 대답하지 않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제가 왜 여자의 손길과 마음을 얻어 가정을 꾸리지 않으시느냐고 여쭤봤죠.” 


“폴리애나!” 폴리가 날카롭게 소리를 지르며 돌아섰다. 뺨이 갑자기 발갛게 물들어 있었다. 


“선생님은 너무… 슬퍼 보였어요.” 


“그분이… 뭐라고 하시던?” 폴리는 묻지 말아야 한다는 마음속의 어떤 외침에도 불구하고 질문을 하고 말았다. 


“한동안 아무 말씀도 안 하시더니, 아주 낮은 목소리로 그걸 바란다고 해서 항상 얻을 수 있는 건 아니라고 말씀하셨어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폴리의 시선이 다시 창가로 향했다. 그녀의 볼은 여전히 발그레했다. 


폴리애나가 한숨을 쉬었다. 


“선생님은 어떤 분을 원하세요. 그분의 소원이 이루어졌으면 좋겠어요.”


“폴리애나, 네가 어떻게 아니?” 


“그 후 언젠가 또 다른 말씀도 하셨거든요. 아주 낮은 목소리였지만 전 들을 수 있었죠. 어느 한 여자의 손길과 마음을 얻을 수만 있다면 세상 전부를 주어도 아깝지 않다고요. 이모, 왜 그러세요?” 폴리가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향하자 폴리애나가 물었다. 


“아무것도 아니다, 얘야. 이 프리즘의 위치를 바꿔야겠구나.” 폴리의 얼굴은 더욱더 달아올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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