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트북스 전자책 폴리애나 1] 29장. 열린 창문으로

in pollyanna •  7 years ago 

29장. 열린 창문으로 


겨울 해가 하루하루 짧아지고 있었지만 폴리애나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길고 때로는 고통으로 가득 찬 날들이었다. 하지만 요즘 폴리애나는 단단히 결심을 하고 어떤 일에든 밝은 표정을 지으려 했다. 폴리 이모도 놀이를 하고 있는 지금, 자신은 특히 더 놀이에 매진해야 하지 않을까? 게다가 폴리 이모는 많은 것들에서 기쁨을 찾고 있었다! 어느 날 눈보라 속의 가엾은 거지 둘이 날아온 문짝 밑으로 기어들어가 눈보라를 피하면서, 이런 문이 없는 사람들은 얼마나 불쌍한지 걱정하더라는 이야기를 해준 것도 폴리 이모였다. 또 어느 날은 이가 두 개밖에 남지 않은 할머니가 그 두 개의 이가 모두 튼튼해서 기뻐하더라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제 폴리애나도 스노우 부인처럼 밝은 색깔의 털실을 길게 늘어뜨리고 이것저것 뜨기 시작했고, 손과 팔이 있다는 것을 기뻐했다.


폴리애나는 가끔씩 방문객을 만났고, 만나지 못하는 사람으로부터 늘 애정이 담긴 메시지를 받았다. 또한 사람들은 항상 폴리애나가 생각할 새로운 것들을 가져다주었다. 폴리애나는 새롭게 생각할 것이 필요했으니까. 


존 펜들턴은 한 번 만났고 지미 빈은 두 번 만났다. 존 펜들턴은 지미가 얼마나 착하게 바르게 행동하고 있는지를 이야기해 주었고, 지미는 자기가 최고로 좋은 집을 갖게 된 것과 펜들턴이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를 말해 주었다. 두 사람 모두 이게 다 폴리애나 덕분이라고 말했다. 


“내 다리가 온전했다는 사실이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어요.” 폴리애나는 나중에 이모에게 털어놓았다. 


겨울이 가고 봄이 왔다. 폴리애나의 상태를 지켜보던 사람들은 계속되는 치료에도 차도가 거의 없자 걱정스러워했다. 폴리애나가 다시는 걸을 수 없을 거라는 미드 선생의 불행한 예상이 현실이 될 것만 같았다. 


물론 벨딩스빌 사람들은 폴리애나에 관한 정보를 계속 주고받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한 신사는 어떻게든 병상에서 매일 날아드는 경과 소식에 대해 걱정스러움과 초조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나아지기는커녕 더 악화되자, 거의 얼굴에는 걱정 이상의 감정이 나타났다. 절망과 완강한 투지, 이 두 가지가 서로 싸우고 있었다. 결국 완강한 투지가 이겼다. 그리고 어느 토요일 아침, 존 펜들턴은 토머스 칠턴 선생이 찾아오자 깜짝 놀랐다. 


“펜들턴.” 칠턴이 불쑥 말을 시작했다. “자네가 이 마을의 어느 누구보다도 나와 폴리 해링턴의 관계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찾아왔네.” 


존 펜들턴은 폴리 해링턴과 칠턴 사이의 일에 대해 알고는 있었지만, 15년 동안 그 문제에 대해 이야기해 본 적은 없었다. 


“그렇지.” 그가 충분히 공감한다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지만 지나친 호기심은 들키지 않으려 애썼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칠턴은 자기 용건에 너무 신경을 쓴 나머지 상대방의 반응은 잘 알아차리지 못했다. 


“펜들턴, 난 그 애를 만나고 싶어. 진찰을 해보고 싶단 말일세. 꼭 진찰을 해봐야 해.” 


“글쎄… 진찰하지 못했나?” 


“못했느냐고? 펜들턴, 내가 15년 넘게 그 집 문에 들어서지 않았다는 걸 자네도 잘 알잖나. 왜인 줄 아나? 그 집 여주인이 그랬지. 다음에 내게 와 달라고 부탁한다면 그건 그녀가 내게 용서를 빌고 모든 것을 이전처럼 돌리고 싶다는, 즉 나와 결혼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 달라고 말일세. 아마 자네는 그녀가 나를 부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겠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하지만 그냥 가면 안 되겠나? 부르지 않더라도?” 


칠턴이 눈살을 찌푸렸다. 


“글쎄… 그건 안 돼. 나도 자존심이 있거든.” 


“하지만 자네가 그렇게 걱정스럽다면 자존심 따위는 접어 두고 싸움도 잊어버려야 하지 않나?” 


“싸움을 잊으라고!” 칠턴이 사납게 끼어들었다. “난 그런 자존심을 말하는 게 아닐세. 그런 문제였다면 여기서 그 집까지 무릎으로 기어갈 수도 있네. 아니면 물구나무를 서거나. 그게 소용이 있다면 말이야. 내가 말하는 건 직업적 자존심이야. 환자에 대한 문제고, 난 의사야. 괜히 끼어들어서 ‘내가 봐 드리겠습니다’라고 할 순 없네.” 


“칠턴, 대체 무슨 싸움이었나?” 펜들턴이 물었다. 


칠턴은 못 참겠다는 듯 벌떡 일어섰다. 


“뭐였냐고? 끝난 연인들의 그런 싸움이었다고 할까?” 칠턴이 으르렁거리듯 말하며 화가 난 듯이 방을 왔다 갔다 했다. “달의 크기가 강의 깊이 같은 어이없는 언쟁이었는지도 모르지. 그 이후의 끔찍한 날들을 생각하면 그건 정말 중요하지 않아! 싸움 같은 건 아무래도 좋아! 내가 걱정하는 싸움 따윈 없었다고 해도 좋아! 펜들턴, 난 그 애를 진찰해야 하네. 생사의 문제야. 난 진심으로 믿고 있네. 폴리애나 휘티어는 다시 걸을 수 있어!”


그의 말은 분명하고 확신에 차 있었다. 칠턴은 말을 하면서 존 펜들턴의 의자 가까이에 열려 있는 창가로 걸어갔다. 그리하여 창문 아래에서 무릎을 꿇고 있던 지미의 귀에 그의 말이 들어오게 되었다. 


토요일 아침마다 화단의 잡초를 뽑는 일을 하고 있던 지미 빈의 귀가 번쩍 뜨였다. 


“걷는다고! 폴리애나가!” 존 펜들턴이 말했다. “무슨 말이지?” 


“그녀의 병상에서 1.5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들었는데, 그 애의 증상은 내 대학 동기가 얼마 전 치료한 환자의 증상과 아주 비슷하다네. 그 친구는 수년간 그런 병을 전문적으로 연구해 왔네. 나도 그 친구와 연락하며 함께 연구했었네. 들은 바에 따르면… 아니야, 내가 직접 그 애를 진찰하고 싶네!” 


존 펜들턴이 의자에서 몸을 똑바로 세웠다. 


“자네가 반드시 진찰해야 해! 워런 선생님을 통해 말하면 안 될까?” 


칠턴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렇게는 안 되네. 워런이 적당하긴 했지. 그가 내게 직접 말했는데, 그는 처음부터 나와 함께 진찰을 하겠다고 했다는군. 하지만 해링턴이 너무 단호하게 안 된다고 하여 다시는 말을 꺼내지 못했다고 하네. 내가 얼마나 그 애를 진찰하고 싶어 하는지 알면서도 말이야. 최근에는 그의 환자 몇 명이 내게로 옮겨 왔어. 그래서 더 손을 쓸 수 없게 되었지. 하지만 펜들턴, 난 그 애를 만나야만 하네. 그렇게만 되면 그게 그 애에게 무엇을 뜻하는지 생각해 보게!” 


“그래. 그리고 자네가 진찰하지 못한다면 그것이 어떤 의미일지도 알고 있네.” 


“하지만 어떻게 한단 말인가? 이모가 부르지도 않았는데… 폴리는 절대 날 부르지 않을 거야!” 


“폴리가 어떻게든 자네를 부르도록 해야 해!”


“어떻게?” 


“모르겠네.” 


“그래, 모르겠지. 아무도 모를 거야. 폴리는 자존심이 너무 강하고 화도 나 있으니 날 부르지 않을 거야. 내게 부탁할 때 그게 어떤 의미인지 내게 말한 후로는 말이야. 하지만 평생 불행하게 살아갈 그 아이를 생각하면, 그리고 내 손으로 그 애를 구해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그깟 자존심이나 직업상의 예의가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나는….” 그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손을 주머니에 깊숙이 찔러 넣고는 화가 난 듯이 다시 방 안을 서성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폴리에게 그 사실을 이해시킨다면….” 존 펜들턴이 말했다. 


“그래. 하지만 누가 그 일을 하겠나?” 칠턴이 사납게 되받아쳤다. 


“모르겠네. 나도 모르겠어.” 펜들턴이 괴로운 듯 신음했다. 


창문 밖에 있던 지미 빈이 갑자기 몸을 움직였다. 그는 지금까지 숨조차 쉬지 않고 모든 말을 주의 깊게 듣고 있었다. 


“전 알아요!” 지미가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하며 중얼거렸다. “내가 그 일을 하겠어!” 그러고는 당장 일어나 집 모퉁이를 살금살금 지나 펜들턴 언덕을 전속력으로 뛰어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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