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에 읽은 것 중 재미난 소설이 드물었다.
번역 작품은 정서가 안 와 닿았고, 국내 작품은 없는 상상력을 동원해야 하거나 너무나 섬세해서 신경줄이 아렸다.
문학이 주는 제일 큰 위로는 ‘사람 사는 모습’과 ‘흥미진진한 이야기’다. 사람들이 드라마나 영화에 몰두하는 것은 스토리 때문이다. 태어나고 살다가 죽는 정해진 인생 길에 원수나 연인을 만나고, 대부분은 바람처럼 스친다. 정해진 삶의 내용에서 어떤 이야기를 건져 의미를 부여 하는지, 왜 중요한지, 어떤 어휘로 표현되는 지가 관건이다. 속된 표현으로 '대사를 어떻게 치는 지'가 작품의 흥행에 결정적이라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
(중간 蛇足..... 조성진이 10년 전 연주한 쇼팽 피협 1번을 듣고 있는데 왤케 좋으냐...... )
잠깐 옆으로 샜는데, 예전에 '나의 삼촌 부르스 리'도 엄청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나는 걸 보니 천명관 작가는 내가 좋아하는 요소를 다 갖춘 거 같다.
....... 곧 미사일론에 대한 반박이 뒤따랐다. 전쟁을 겪어보지도 않은 노파가 어떻게 미사일을 아느냐는 거였다. 귀신이기 때문에 모르는 게 없다는 해명에 대해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 하지 말라는 반박이 나왔으며, 뒤이어 어따 대고 선배 앞에서 그따위 개소리를 하느냐는 성명이 발표되자, 너 대학 어디 나왔냐는 질문이 나왔고, 이 씹쌔야, 어딜 나온 게 무슨 상관이냐는 반론이 제기되자, 저새끼 싸가지 없는 건 학교 다닐 때부터 알아봤다는 인물평과 저새끼는 학계에서 완전히 매장시켜버려야 된다는 매장론이 뒤따랐으며, 선배 무시하다 뒈지게 맞고 피똥 싼 놈 많다는 협박과, 누군 씹할, 고스톱 쳐서 학위 딴지 아냐는 고스톱 학위론, 그럼 씹쌕꺄, 미사일이 아니면 도대체 뭐냐, 뭐긴 뭐야, 섁꺄, 니 애비 좆이라니까, 라는 식으로 반박이 줄줄이 이어지며 논쟁은 점점 진흙탕 싸움으로 변질되어갔다. (p309)
밤중에 내가 뒤집어 진 일부분이다.
남들 놀랄까봐 크게 웃지도 못하고 소리죽여 끽끽 대느라 웃음이 웃음을 낳아, 눈물을 훔쳐야 했다.
너무나 익숙한 우리 사회의 싸움 모습이다.
이런 식의 문장들이 자주 있다. 그것뿐만 아니라 성인용 묘사도 자주 나와 지루할 틈이 없다.
위 인용 문장의 싸움이 벌어진 이유는 죽은 노파의 저주가 무당을 통해 내려졌는다, '큰 물고기가 산속에 떨어지면 불기둥이 칫솟아 하늘에 닿고' 에 대한 해석이 분분했던 까닭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큰 물고기는 고래를 말하고 불기둥은 화재를 말한다.
간략한 줄거리는 이렇다.
산골소녀 금복이는 가출하여 생선장수를 따라 큰 항구 도시에 들어왔다. 금복은 페로몬 같은 묘한 냄새로 사내들의 관심을 끄는데 처음 살림을 차린 남자는 힘이 센 '걱정'이라는 젊은이였다. 걱정이 하역 작업중에 중상을 입고 정신이 나가자 닥치는 대로 일을 하던 그녀에게 '칼자국'이라는 조폭 두목이 극장에 데려가 영화를 보여준다.
평생 처음 접한 영화의 세계에 빠진 금복은 칼자국의 여인이 되어 걱정을 먹여 살린다. 그러다 걱정이 폭풍 치는 바다에 몸을 던진 것을 칼자국이 죽였다고 오해하여 그를 살해하고 만다.
빈 몸이 된 금복은 생선장수에게 돌아가 어물 장사로 돈을 벌어 주고 무작정 떠난다. 그러다 육이오 전쟁이 발발했고 생사의 기로에서 떠돌다 쌍둥이 자매가 운영하는 술집 마굿간에서 해산을 한다.
태어난 여자아이는 너무나 크고 특이하게 생겼는데, 희한하게 죽은 지 4년이 넘은 걱정을 닮아 있었다. 금복은 아이를 돌보지 않았는데도 춘희라는 이름의 아이는 쑥쑥 자랐다. 아이가 세상에서 가장 먼저 본 것은 서커스 단에서 버려진 코끼리였고 이후 춘희와 코끼리는 정서적 교감을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금복은 쌍둥이 자매네 일을 돕다가 어느 날 천정에서 뭔가를 발견한다. 그것은 땅 문서와 거액이었다. 이 재산의 주인으로 말하자면 못생긴 외모로 첫날 밤에 소박을 받은 여자가 주인집 반편이 도령과 놀아나다 쫓겨나서 맨 바닥을 기다시피 죽도록 모은 돈이었다. 여자는 자기 딸에게조차 한 푼을 주지 않았을 뿐더러 부지깽이를 휘둘러 애꾸로 만들었다.
금복은 그 문서 대로 땅을 찾아내어 산속 분지에 벽돌공장을 지었고 거기에 文이라는 남자를 책임자로 앉혔다. 벽돌은 잘 팔렸고 금복은 더 부자가 되었다. 금복은 항구에서 봤던 고래 모양을 본 따 극장을 지었다. 그녀는 지역 유지가 되어 대통령과 사진도 찍었다.
그러나 그녀를 돕는 文을 외면하고 여러 남자와 바람을 피더니 이제는 어린 창녀를 애인으로 들였다. 이쯤에서 금복은 여자가 아닌 남자가 되어갔고 사람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런 와중에도 벽돌은 생산되었고, 춘희는 文을 아버지처럼 여기며 벽돌 만들기에 몰두 했다. 고래극장에서 새 영화가 상영되던 날, 노파의 유령이 극장의 문을 밖으로 모두 잠그고 불을 질렀다. 극장에 있던 사람들은 금복을 포함하여 팔백여 명이 모두 사망했다. 유일한 생존자인 춘희가 방화범으로 붙잡혀 감옥으로 보내진다.
감옥에서는 또 다른 시련이 기다렸는데, 열등감과 결핍의 결정체인 교도관이 춘희에게 가할 수 있는 모든 폭력과 인권 유린을 자행했다. 벙어리에 못 생기고 덩치가 크다는 이유로. 타고난 몸 덕에 겨우 목숨을 부지한 춘희는 긴 감옥 생활 끝에 형기를 마치고 나와 무조건 철 길을 따라 남으로 향했다.
걷고 걸어서 도착한 벽돌 공장. 사람들은 떠나고 도시는 완전히 폐허가 되었다.
춘희는 예전에 하던 대로 벽돌을 만든다. 만들어 놓으면 文도 쌍둥이자매도 엄마도 돌아올 거라 생각하며.
그들 대신 한 남자가 나타나 그녀에게 쌀과 옷을 가져다 주긴 하나 춘희가 자신의 아이를 가진 걸 알자 발길을 끊는다. 결국 혼자 아기를 낳았으나 그 아기마저 열병으로 사망했다. 춘희는 혼자 벽돌을 굽다가 혼자 죽었다.
커트 보니것은 '제5도살장'에서 폭격으로 사람이 죽을 때마다 '뭐, 그런 거지'라고 표현했다. 이 작품에서 '그것은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이었다.' 또는 '그것은 사랑의 법칙이었다.' 등의 맺음말이 나오는 것도 재밌다.
고래는 생명의 원형이며 금복이 도달하고픈 영원함의 상징이다. 가질 수 없지만 동경해 마지 않는 꿈 같은 거. 독자 입장에서 보자면 향유 고래 뱃속에 들어 앉은 인간 세상이 연상이 된다. 이야기의 흐름이 거침이 없어 마치 예전 만담가 같기도 하고 책 읽어 주는 전기수 같기도 하다. 우리 사회에 대한 풍자도 통렬하다. 이런 필력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천명관 / 문학동네 / 2014/ 18000/ 장편소설
Upvoted! Thank you for supporting witness @jsw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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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에 P309 는 도잠님이 그럴만도 한 문장이네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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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셨슈? ㅋㅋㅋㅋㅋ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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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잠님의 필력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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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잉 무신 말씀을….. 읽고난 후 끄적거리는 건데….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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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해주신 309 페이지는 정말 우리네가
싸우며 늘 하는 말들을 저렇게 까지 ㅎㅎ^^
처음에 제목을 보고 김준현의 고래 ?? 가 딱 !! 생각이 나는대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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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현의 고래? 그게 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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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현의 특유의 말투에요 ...
그래 ?? 를 고~~~래 이렇게 발음을 하더라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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