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축구를 좋아했다. 한 때 축구선수나 축구와 과학을 잘하는 체육선생님이 되는 게 꿈이기도 했다. 꿈을 이루진 못했지만 조기축구회나 풋살팀을 통해 꾸준히 축구를 했었고, 아이들이 크면 함께 축구를 하고 싶다는 버킷리스트가 있었다.
내 바람과는 다르게 첫째는 축구를 좋아하지 않았다. 한 번은 학교 형들과 축구를 하는데 공을 세게 맞아 하루 종일 머리가 아파서 축구가 싫어졌다고 했다. 운동에 소질이 있기 때문에 축구에 재미만 붙이면 함께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쉽지 않았다. 정말 아쉬웠다. 그래도 둘째가 있었기 때문에 내심 둘째에게 기대도 했지만, 둘째는 운동에 완전 젬뱅이다. 축구는 고사하고 줄넘기, 아니 스트레칭조차 버거워한다. 목 돌리기를 하는데 고개를 반만 돌리다가 이상한 각도로 목이 꺾기는 둘째를 보고 이 녀석도 아니다 싶었다. 셋째는 이제 겨우 4살이다. 축구가 무엇인지도 모를뿐더라 공을 차기보다는 공을 들고 도망가거나 지키기만 해서 축구는 아직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쉽게 포기하진 않았다. 몇 번이나 동네 공원에 축구공을 들고 나가기도 하고, 축구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재미있어 보이지 않냐는 둥 은근히 아이들을 떠보았다. 그럼에도 아이들은 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공은 뒷전이고 산으로 들로 쏘다니며 곤충을 관찰하거나 뛰어다니기 바빴다. 아들이 셋이나 있건만 내 버킷리스트를 함께 해줄 아이가 하나도 없다는 사실에 내심 서운하기도 했다. 서운함을 애꿎은 축구공에만 풀다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집에 있던 축구공 두 개 중 하나는 남에게 줘버리고 하나는 바람이 다 빠질 때까지 방치만 했다.
그러다 올해 여름 극적인 전환을 맞이했다. 아내님과 함께 파리 올림픽 하이라이트를 가끔 보곤 했는데 아이들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축구 하이라이트를 보면서 아이들에게 같이 축구를 해보지 않겠냐고 물었는데 흔쾌히 허락까지 했다. 축구가 싫다던 첫째도 아픈 기억을 모두 잊었는지 재미있을 거 같다고 했다. 창고 구석에 쳐박혀있던 축구공을 꺼내 바람을 넣고 집 앞 작은 공터에서 아이들과 함께 축구를 했다. 물론 셋째의 방해가 있었지만 괜찮았다. 첫째도 둘째도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를 때까지 달리고 또 달렸다. 축구라고 하기에는 뭔가 부족함이 없지 않지만 그 후로 종종 아이들과 축구를 할 수 있었다.
며칠 동안 강추위가 지속되다가 어제부터 날이 풀렸다. 집에만 있던 아이들은 좀이 쑤셨는지 밖으로 나가고 싶다고 했다. 나가는 김에 "축구 콜?" 이라고 물으니 아이들 모두 "오케이!" 하고 답했다. 도서관에 들러 책을 몇 권 빌린 후 아이들과 축구공을 들고 공원으로 나갔다. 둘째는 어디서 얻은 자신감인지 나와 셋째가 함께 편을 하고 자신이 혼자 상대하겠다고 했다. 아니, 정확히 셋째가 구멍인 걸 알고 나랑 편을 먹게 했는지도 모른다. 편이야 어쨌든 공을 뺏고 뺏기는 와중에 아이들은 쉴 새 없이 웃고 즐거워했다. 특별한 축구 기술이나 지식은 부족하지만 공을 향한 집념과 체력은 나름 합격점을 줘도 될 거 같았다. 드론을 날리던 첫째까지 가세해 30분 넘게 축구를 했다. 나무를 골대로 삼고 마냥 공만 보고 달리는데도 어쩜 이렇게 재미있던지, 나도 어릴 적 순수했던 그 시절로 돌아가는 기분이었다.
한참을 달리다 지친 아이들은 하나 둘 지쳤다며 운동장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더러워진 옷을 보고 아내님 잔소리가 걱정되긴 했지만 아이들을 방해하긴 싫었다. 오히려 자유분방한 아이들 모습이 너무 예뻐 사진으로 담았다.
내가 아이들과 함께 하고 싶었던 축구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그 것이다. 한 팀은 11명으로 구성되어 있고 골키퍼와 수비, 미드필더, 공격수로 자신의 포지션이 정해지고 상대편 골대로 공을 넣는 바로 그 경기. 하지만 이제는 그런 축구가 아니어도 상관 없다. 아이들과 함께 공 하나만 가지고도 오랫동안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이 버킷리스트에 있는 '아이들과 함께 축구하기' 보다 훨씬 더 가치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나는 버킷리스트 보다 더 의미 있는 일들을 아이들과 하나씩 해나가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오늘 일을 가슴에 담아, 매순간 아이들과 함께 하는 일에 온전히 집중하고 감사하는 아빠가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함께 할 수 있는 일들이 늘어난다. 아이가 셋이라 더 다양하고 즐거운 일이 많은 거 같다. 나에게 이런 축복 같은 삶을 선사하는 아이들을 더욱 더 사랑으로 대해야겠다.
아들 가진 아버지 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 이내요 ^^
아이들과 열심히 뛰고 뒹굴고 ...
항상 좋은 기억과 추억을 아이들에게
선물 하시는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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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치형 삼형제들은 정말
몸도 마음도 건강해서 참 좋다는 생각이 듦 'ㅡ')b ㅎㅎ
그나저나,
삼형제들이 파치형 닮았으면 체력 하나는 끝내주겠넹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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