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시케는 언론협동조합 프레시안의 일반 조합원들이 만든 인터넷 방송입니다.
(방송 홈페이지 : https://pod.pressian.coo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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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시케 시즌1이 끝났다.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 청취자들을 대상으로 방송은 더 나가겠지만, 녹음은 마지막 방송까지 끝냈고, 패널분들도 모두 잠시 쉬는 시간들을 갖게 될 것이다.
지난 방송 제작 과정을 돌아보며 나의 소회를 적어본다.
학창시절 시민운동가가 꿈이었을 정도로 사회활동에 관심이 많았던 탓에 이런저런 판에 얼굴을 들이 내밀었는데. 참여한 건 많았지만 제대로 한 건 없었다. 그러고 남은 게 지금은 프레시안과 녹색당이다. 하지만 녹색당은 날날이 당원 수준이니. ^^ 현재 돈 버는 일 제외하고 활동하는 건 프레시안 뿐이다.
예전에 한 조합원이 그런 얘기를 술 자리에서 한 적이 있다.
"만약 존재의의가 없다면 사라져야 한다."
이는 모든 조직의 가장 기본이 되는 마인드라고 생각한다. 어떠한 조직이 망가지는 이유도 대부분 그 존재의의를 망각하면서부터이다. 조직의 생명 유지가 조직의 목적이 되는 순간, 그 조직은 타락한다. (우리는 이미 그러한 수많은 조직을 알고 봐왔다.)
프레시안은 여기에서 자유로운가? 그 조합원은 이 부분을 찌르고 있었다.
나는 조직이나 공동체에도 명예가 있다고 생각한다. 개개인만 명예가 소중한 것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존재의의를 다했다면, 또는 더 이상 그 대의를 이룰 수 없는 상황이라면 해산하는 것이 명예를 지킬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보통은 프레시안이 그렇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없을 것이다. 특히나 조합원이나 후원회원이라면, 그 이유를 구체적으로 설명하지는 못하더라도 '프레시안이 필요하다' 또는 '프레시안이 소중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을 것이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프레시안을 주변에 알려야겠다 라고 생각이 든 순간부터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우선 내 스스로가 납득할 수 있는 논리가 필요했다. 나 조차 설득 못시켜면서 어떻게 주변 사람을 설득시킬 수 있겠는가? 왜 프레시안은 존재해야 하는가? 왜 우리는 프레시안을 살리기 위해 돈과 시간을 써야 하는가? 인터넷 방송의 전 제작 과정은 이 고민의 연장선에 있다.
이미 수 많은 언론사가 있다. 프레시안은 그러한 다른 언론사와 무엇이 다른가? 프레시안의 첫 번째 정체성은 '언론'이었기 때문에 이 부분에서 답을 찾아야 했다. 그러나 나에게 있어 가장 공부가 덜 된 부분이 '언론이란 무엇인가?'였다. 그러다보니 이 부분에서의 답을 가장 늦게 찾게 되었다. 본 글의 뒷 부분에서 서술하겠지만 나는 이 답을 허환주 기자 편을 하면서 비로소 찾게 된다.
내가 프레시안의 조합원이 된 이유고 지금까지도 가장 중요시하게 생각하는 프레시안의 정체성은 '협동조합'이라는 점이다. 협동조합 형태의 언론. 그리고 소비자 조합원과 직원 조합원이 하나의 조직 안에서 공존하고 있는 협동조합. (누군가는 가장 혁명적인 실험이라고 이를 표현한 바 있다.) 이 점이 현재까지도 프레시안의 가장 독특한 점이다. 이 두 그룹 중에 직원 조합원은 흔히 아는 것처럼 언론사의 직원들이다. 이들에 대해서는 익히 알려져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한 걸음 들어가서 보면,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언론사의 조직, 구성원들에 대한 이해는 빈약하다. 기레기라고 부르며 욕하지만 대부분이 제대로된 비판이 아닌 비난 수준에서 머무르는 것도 이러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비자 조합원들의 존재를 외부에 알리는게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에 따라 소비자 조합원들로만 구성된 패널을 만들기로 했고 감사하게도 여기에 응해주신 분들이 시즌1의 패널분들이다. 다시금 이 자리를 빌어 그 분들께 감사를! 모두 프레시안 조합원으로서 자신의 시간 뿐만 아니라 돈까지 냈다. 프시케 방송은 이러한 소비자 조합원분들의 자발적인 노동력 제공과 자본 투자로 매 회가 만들어졌다.
패널들의 수다가 방송의 생명을 이어가는 줄기라면, 프시케 People은 앞서 말한 개인적인 고민을 해소해가는 과정에서 피어나는 꽃이었다. 프시케 People은 섭외에서 녹음, 제작, 편집까지 전 과정을 모두 나 혼자 했다. 이러한 수고스러움을 기꺼이 감내할 수 있었던 것은 그 과정 자체가 즐거웠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매 회차를 거듭하면서 깨닫는 것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처음 프시케 People을 기획하면서 떠오른 인물은 이대희 초대 협동조합 팀장이었다. 프시케 People 기획은 이 분을 머릿 속에 떠올리면서 나온 기획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대희 팀장은 프레시안이 협동조합으로 조직의 형태를 바꾸기로 결정한 이후, 실무를 총괄했던 사람이다. 소비자 조합원이라는 지금까지 프레시안 조직에 존재하지 않았던 이질적인 존재들을 받아들인 후, 그들이 쏟아내는 에너지를 온몸으로 맞닥뜨리며 직원 조합원들 사이에서 접점을 찾아내기 위해 고민하며 엄청난 감정노동을 겪어냈다. 그 과정에서 많은 힘든 일들이 있었다. 이를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나로서는 그를 다시 소환하여 이를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는게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협동조합으로서 프레시안이 왜 소중하고, 무엇이 다른가를 얘기하려면 이는 필수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그 과정을 같이 겪어낸 사람으로서, 그 때부터 활동하여 현재까지 활동하는 소비자 조합원으로서 이제는 웃으며 말할 수 있는 지난 날의 회포를 같이 풀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이대희 기자와의 1회 녹음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나니, 자연스럽게 프레시안 조합 구성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소비자 조합원의 역할로 시선이 돌아갔다. 그러나 아쉽게도 프레시안의 소비자 조합원 활동은 여전히 미비하다. 그렇다면 열심히 활동하는 소비자 조합원은 뭐가 다른가? 그 답을 알고 싶었다. 그래서 소환된 것이 이원재 소비자 조합원이었다. 농담으로 권력의지를 방송에서 얘기했지만 차라리 소비자 조합원들이 정말로 권력의지라도 가졌으면 좋겠다라는 마음을 가진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아무튼 방송은 역시나 즐거웠다. 덤으로 방송 중에 새로이 눈을 뜬 게 청년 문제였다. 이 때 가지게 된 문제 의식은 이후 쟈소님과 함께 매 회차를 녹음하면서 심화된다.
생각해보면 우리나라 언론에 빠진 것이 2030의 주체적 시선이다. (물론 고함20 같은 매체가 있기는 하지만 역시 그러한 매체는 소수다.) 속칭 메이저 담론 속에서 2030은 시혜 대상으로 바라보게 되거나 미숙한 존재로만 여겨진다.
프레시안은 최근에 '단일팀 반대했던 2030 목소리, 새겨야 하는 이유'와 같은 글을 내보낸 적 있다. 프레시안도 기본적으로는 다른 일간지와 마찬가지로 4050남성이 메인 독자층이고 그들의 시선에 맞춰 있지만, 사이사이 이러한 톤의 글이 올라갈 수 있는 건. 프레시안 직원 조합원의 대다수가 아직 젊고, 2030 조합원 모임이 자체적으로 돌아갈 정도로 내부에 젊은 독자층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대략 이 때쯤이었던 것 같다. '언론으로서 프레시안은 무엇이 다른가?' 그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다. 어찌보면 이것이 핵심이었다. 소비자 조합원은 결국 프레시안이 만드는 콘텐츠. 이를 지켜내기 위한 조직이지 않은가? 그런데 우리는 무슨 콘텐츠 때문에 그러는 거지? 도대체 프레시안이 다른 언론사와 어떠한 차별화된 콘텐츠를 만들고 있지?
이에 대한 답은 여전히 한 가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글을 보는 다른 독자들은 다른 답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에 대한 첫 번째 답을 '삼성'이라는 키워드에서 발견했다. 프레시안에 대해 다른 이들이 쓴 글들(프레시안에 대한 애정이라고는 전혀 없는, 그냥 무미 건조하게 매체 자체를 소개하는 글들)에서 발견하는 공통의 키워드는 '삼성'이었다. 삼성과 지긋지긋하게 싸웠다는 것. 그 싸움에 대한 평가는 각자 다를지라도. 어쨌든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불리는 삼성을 향하여 현재까지도 멈추지 않고 삼성의 잘못을 밝혀내고 세상에 드러내는 기사를 꾸준히 내고 있는 신문.
지금와서 밝히는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나는 그 내용을 잘 알지 못했다. 성현석 기자의 존재감을 알게 된 것은 위와 같은 사실을 발견해낸 이후였다. (그 전까지 나에게 성현석 기자의 이미지는 덕후였다. 물론 지금도 여전히 상당히 수준 높은 덕력을 가지고 있는 덕후이기도 하다.) 사람들에게 물었다. 직원 조합원들에게도 물어봤고 외부에도 물어봤다. 모두가 '삼성하면 성현석이지'라고 말했다. 프레시안 조합원으로 몇 년을 생활했으면서 그 사실을 몰랐다는게 참 부끄러웠다. 그래서 더 열심히 공부했던 것 같다. 그 다음부터 관련 자료를 찾아봤다. 성현석 기자가 그동안 쓴 기사는 물론 관련 자료들을 살펴보고 열심히 공부했다. 그렇게 준비를 한 후, '추석특집 프시케 People 성현석 기자' 편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한동안은 방송 자체를 매 회 만들어나가는 재미에 빠졌던 것 같다. 점점 더 능숙해져가는 패널분들을 보면서 방송 제작도 더욱 신이 났다.
이런저런 변화도 있었고 개인적으로 힘든 일도 있었지만 프시케는 잘 진행되었다.
그러다가 서서히 연말을 맞이하게 되었다.
"크리스마스에는 뭐하지?"
라는 고민이 11월초부터 떠올랐다. 처음에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하차한 피터팬님을 소환하여 네버랜드 특집을 만들어볼까 하는 생각을 했다. 새로이 합류한 팅커벨님과 잠시 하차한 피터팬님을 한 자리에 모으고 웬디 역할을 할 분을 불러서 수다를 떨어볼까. 생각을 했다.
그러나 야근야근 열매를 매일 강제로 먹고 계신 피터팬님이 일단 사정이 안되었다. 그러면서 그냥 크리스마스 한 주 쉴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그러던 차에 김봉규 팀장이 무심코 던진 한 마디가 내 생각을 바꾸어놓았다.
프레시안 조합원분들을 위한 네이버 밴드를 만들었지만 활성화가 안되서 고민이 많았다. 특히 제안자였던 이주행 조합원님이 고민이 제일 많았고 나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던 차에 단비 처럼 올려주시는 내용이 구자숙 소비자 조합원의 사드반대 촛불시위 기록이었다. 하지만 다른 글이 안올라오는 상황에서 구자숙 조합원만 매일 글을 올려주시다보니 마치 그 글이 도배처럼 여겨졌다. 구자숙 조합원 본인도 그러한 부담을 느끼시는 듯 했다. 나 역시 내색은 안했지만 그런 점이 불편했다. 그런데 김봉규 팀장은 관점이 달랐다. "와- 이거 정말 좋은 콘텐츠네. 완전 살아있는 내용이고."
그 말을 듣고 나서 보니, 그랬다. '아, 나는 왜 저런 관점으로 바라보지 못했지' 하는 반성을 했다.
구자숙 소비자 조합원을 방송에 모셔야 겠다고 생각했다.
모시기로 결정은 했지만 섭외 자체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지금까지의 프시케 People 섭외는 나와 안면이 있거나 안면이 있는 다른 분이 연결을 시켜준 거였지만, 구자숙 조합원님은 그러한 접점이 전혀 없었다. 더군다나 지방에 계시는 분이다보니, 녹음을 하려면 서울로 올라오시라는 말을 드려야 하는데. 그 자체가 부담이라. 어떻게 섭외를 해야 하나 막막했다.
고민을 계속 해도 딱히 답이 없었기에 밴드에 열견된 개인톡으로 하드콜을 날렸다. 응답을 한다는 보장은 없었다. 무례하다는 비난을 받을 각오도 했다. 또 지금까지 많은 소비자 조합원들이 그래왔듯이, 바쁘다고 딱- 잘라 말하거나. 차갑게 대할 가능성도 있었다. 그래도 지난 몇 년간 거절을 많이 당한 덕분인지. 전보다는 좀 더 두꺼운 철판을 깔고 말을 걸었다.
감사하게도 구자숙 조합원님은 싫은 내색 없이 흔쾌히 응해주셨다. 언제 서울로 올라오실 수 있는지를 여쭈어보고 그 일정에 맞춰서 녹음실을 잡았다. 크리스마스 특집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마침 날짜도 쟈소님이 해외 출국하기 전이라, 쟈소님도 함께 할 수 있었다.
협동조합으로서, 언론으로서 프레시안이 가지는 또 하나의 차별점은 지역 이슈와의 연대였다. 그 점에서 각 지역에 살고 계신 조합원은 매우 중요한 키(key)였다. 그들의 얘기를 들어보는 것. 그들은 왜 프레시안 조합원이 되었고 계속 활동해가고 있는가. 이 또한 프레시안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거쳐야할 한 과정이었다.
그리고 방송 녹음을 마치고 나는 또 하나의 새로운 사실을 깨닫게 된다. 국제 문제에 대한 접근, 특히 미국과 관련한 이슈에서 프레시안이 애기하는 관점으로 말하는 언론사가 없었다. 구자숙 조합원님 방송에 앞서 박인규 이사장의 전쟁국가 미국 강연이 때마침 있었기에 이 둘은 절묘한 조화를 이루었다. 박인규 이사장이 이론적으로 그 맥을 짚었다면, 구자숙 조합원은 실제 삶의 현장에서 그것이 어떻게 적용되고 시민들에게 어떠한 형태로 나타나는가를 잘 보여주었다.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 마지막 프시케 People은 허환주 기자였다. 허환주 기자는 오래전부터 인터뷰하고 싶었던 기자였다. 언젠가는 만나서 그의 개인적인 얘기를 듣고 싶었고 기사를 잘 봐왔던 독자로서 각 기사의 뒷 얘기를 듣고 싶었다. 그래서 새해가 밝자마자, 허환주 기자에게 부탁을 했다.
처음 시작은 사심 방송이었기 때문에, 특별한 의도나 기획은 없었다. '허환주 기자하면 떠오르는-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주요 탐사 취재 내용을 다루고 그 뒷얘기들을 들어보자'가 전부였다. 그런데 녹음을 함께 해나가면서 그동안 찾고자 했던 마지막 답을 발견하게 되었다. 왜 프레시안이 존재해야 하는가. 허환주 기자가 전하는 얘기 안에 있었다.
우리나라는 많은 것을 짧은 시간에 이룩했다. 그러나 노동 문제는 70년대에서 별로 나아진 것이 없다. 노동운동 관련 기사들을 모아보면, 1970년과 2017년 사이에서 차이가 없는 것을 볼 수 있다. 비단 노동 뿐만이 아니다. 우리 사회의 속칭 사회적 약자들. 상대적으로 적게 소유한 저소득층 및 빈곤층. 이들의 삶은 여전히 어렵다. 아니, 평균 국민소득이 증가하고 대한민국의 국가 위상이 매우 높아짐에 따라 이들의 현실은 더 열악하게 보인다. 솔직히 이들의 얘기를 듣고 있다보면 현실감이 안느껴진다. 그냥 영화나 드라마와 갈은 가상 공간의 이야기 같다. 그것이 실제로 존재할 것 같지 않다. 그러나 그들 당사자에게는 우리가 매일 출근을 하고 회사에서 일을 하고 집에 와서 가족들과 실랑이를 벌이는 것과 마찬가지의 현실이다. 우리는 한 공간, 한 시대를 같이 살아가고 있지만, 마치 다른 우주에 속해 있는 것처럼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간다. 허환주 기자는 직업적으로 그들을 만나고, 그들의 얘기를 듣고, 이를 기사로 옮긴다. 그리고 프레시안은 허환주 기자 같은 분들이 쓰는 내용을 꾸준하게 기록으로 남기고, 또 심층 취재 하고, 장기 연재를 한다. 물론 프레시안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보도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속칭 메이저 언론사는 이제 단신으로 처리하거나 아예 안내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마이너 언론사들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이러한 기사는 돈이 안되기 때문이다. 기사의 대상이 돈 없고 힘 없는 사람들이니까. 정치인들을 다룬 기사, 재벌들을 다룬 기사는 돈이 된다. 그들은 적극적으로 자신의 이미지를 관리해야 하는 이들이기 때문에. 중산층을 대상으로한 여러 정보, 이슈를 다룬 기사도 돈이 된다. 적당한 소비력과 시간을 갖춘 이들이 그러한 콘텐츠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그러나 우리 사회 최하층, 약자들에 대한 기사는 시혜성으로 바라보고 다루는 것 외에는-시혜적인 시각은 중산층들이 일부 갖고 있으니까- 없다. 그들의 입장에서, 그것이 삶인 이들의 입장에서 그들의 얘기를 전하는 기사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이러한 기사들은 앞으로도 수익성을 생각하지 않는 매체에서만 다루어지고 보도될 것이다. 프레시안에서 이것이 가능했던 지점도 여기에 있다. 프레시안은 협동조합이니까. 돈보다 사람이 먼저인 조직이니까.
이제 남은 과제는, 이러한 정체성이 세대를 달리하면서도 이어져갈 수 있느냐 일 것이다.
마침 프레시안은 신입 기자를 두 명이나 뽑았다.
그래서 프시케 People의 마지막 편은 신입기자 편이다.
신입기자들의 이야기. 그리고 프시케 패널들이 전하는 지방선거 얘기를 끝으로 프시케 시즌1은 끝이 난다.
시즌2를 다시 시작하게 되기까지.
시즌1을 하는 과정에서 깨달은 내용들을 조합 안밖에서 잘 유지하고 더욱 키워나가 시즌2에서는 더 재밌는 다양한 얘기꺼리를 전할 수 있으면 좋겠다.
재밌게 잘 듣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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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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