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잡기] 이 이상의 여행기는 없다 <세상의 용도>

in promsteem •  6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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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 관한 책을 꽤 여럿 접했다.
그러나 함부로 단언하건데 이 이상의
여행기를 만나지는 못할 것이다.
어떻게 이런 여행기를 여태 몰랐을까 싶다.

1953년 6월 제네바에서 1954년 12월 아프가니스탄
카이바르 고개까지의 대장정. 대학에 학위 논문을
제출하고 결과도 보기 전 20대의 두 스위스 청년
니콜라 부비에Nicolas Bouver(1929-1998)와
티에리 베르네Thierry Vernet(1927-1993)는
작은 승용차 피아트 토폴리노에 올랐다. 그들의 여정은 제네바에서 유고슬라비아, 터키, 이란,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에 이른다.
말할 것도 없이 다양한 인종과 산맥과 숱한 고개들과 끝없는 사막을 만난다. 전쟁의 폐허에서 살아난 사람들, 자연과 하나간 된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이 그 길 위에서 다가 왔다가 멀어졌다.
지독한 추위와 기절할 만큼 뜨거운 태양 그리고 자주 고장을 일으키는 자동차. 이들의 여행 경비는 티에리가 그린 그림을 파는 것과 부비에의 강연이나 불어 수업으로 현지 조달이었다.

각설하고 이 놀라운 여행기는 직접 읽어 봐야 그 가치를 안다.
읽는 내내 고장난 자동차의 뒤를 같이 밀며 헉헉대는 느낌이었고 뜨거운 사막의 열기 또는 낙타나 양의 냄새가 코끝에 맴도는 것 같았다. 그 느낌을 담아 주옥 같은 구절을 옮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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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직 좋은 글을 쓰지 못하고 있는 것은, 행복이라는 것이 내 시간을 온통 빼앗아 가버렸기 때문이다. (베오그라드, P77)

우리는 일체의 사치를 거부하고 오직 느림이라는 가장 소중한 사치만을 누리기로 작정했다.(니슈, 84)

떠돌아다니며 살다 보면 계절에 민감해진다. 계절에 의지하고, 계절 그 자체가 된다. 그리고 계절이 바뀔 때마다, 살아가는 법을 배웠던 장소에서 자신을 억지로 떼어놓아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콘스탄티노플, 147)

오래된 습관은 비록 억압적일지라도 무척이나 부드럽게 느껴지는 법이다. 새로운 제도 보다는 하루가 끝나 지칠대로 지친 상태에서 새로운 것을 이해하려고 애쓰는 것보다는, 차라리 친밀하게 느껴지는 불행이 더 나은 것이다.(이스탄블, 182)

시간은 끓고 있는 차가 되어, 드문드문 이어지는 말이 되어, 담배가 되어 지나간다. 그러다 보면 동이 튼다. 점점 더 밝아지는 빛이 메추라기와 자고새의 깃털을 비춘다.... 그러면 나는 언젠가는 되찾으러 갈 기세로 이 경이로운 순간을 내 기억의 밑바닥에 서둘러 파묻는다. 기지개를 켜고 몇 걸음을 걸므연 '행복'이란 단어가 내게 일어난 일을 묘사하기에는 너무나 빈약하게 느껴진다.(이스탄블, 186)

터키 요리는 전세계에서 영양가가 가장 풍부하다. 이란 요리는 섬세하면서도 소박하다. 새콤달콤하게 양념하여 절인 아르메니아 요리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245)

이란에서는 불가능이란 게 없다. 영혼들은 최고에 관해서든, 최악에 관해서든 상당한 여유를 가지고 있으며, 당신은 완벽함에 대한 이 지속적이고 광신적인 열망을 참작해야만 한다. 가장 태평스런 사람조차도 이 열망을 이기지 못해 가장 극단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다.(315)

겨울은 으르렁거리고, 봄은 사람 마음을 흠뻑 적시고, 여름은 별똥별을 쏟아부으며, 가을은 마치 하프의 현처럼 일렬로 늘어선 포플러나무들 속에서 떨려 울린다.(342)

이란의 풍경은 마치 아주 고운 재를 훅 불어서 수천 킬로미터에 걸쳐 형체를 만들어낸 듯 눈에 확 띌 만큼 건조하고 장업하게 펼쳐진다. 오직 죽음과 태양뿐인 남동부 지역의 황량하고 광활한 공간의 지형도 더없이 아름답다.(402)

별다른 증오심이 없다면 나는 오래 살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나는 파리에게 증오심을 가지고 있다. 그놈들을 생각만 해도 눈에 눈물이 맺힐 정도다....... 죽은 것의 풍부함과 살아있는 것의 방종에 버릇이 없어진 아시아의 파리는 끔찍할 정도로 후안무치하다. (561)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은 어떤 결정을 내리기까지 오랜 시간 뜸을 들이지만, 일단 결정하면 그것을 끝까지 밀고 간다.(601)

그날 나는 내가 뭔가를 움켜쥐었으며, 그리하여 삶이 변화할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하지만 이런 종류의 것은 결코 완벽하게 획득되지 않는다. 세계는 마치 물처럼 잔물결을 일으키며 당신을 통과하고 당신은 잠시 물 색깔을 띠게 된다. 그러고 나서 그것은 당신이 당신 가슴 속에 담아가지고 다니는 그 텅 빈 공간 앞에, 영혼의 불충분함 앞에 다시 당신을 세워둔 채 물러난다.(6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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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현지인들 또는 세관과의 어색한 대면은 폭소를 자아내게 한다. 또한 그 먼 거리를 조그만 자동차로 여행할 수 있는 패기가 아름다웠고 인문학적 지식이 깊은 것도 인상적이었다. 티에리의 간결하면서도 독특한 삽화도 이 책의 한 축을 담당한다.
여행지에서 프랑스어가 한정적이나마 통용되는 것이 부러웠다. 배우려는 사람들 때문에 여행경비를 조달할 수 있었으니. 식민지 영향인지도.

니콜라 부비에는 이 여행 후 인도에서 머물렀고 그 후에는 일본에서 생활하기도 하면서 이 글을 고치고 또 고쳤다고 한다. 일본을 무척 좋아했던지 여러차례 다녀갔다니... 유럽 사람들은 확실히 일본을 동경하는 것 같다.
1990년대 드디어 부비에는 '감탄할 만한 여행자들'에서 대가로 인정받게 되었고 그의 방대한 작품, 사진, 시가 출간되었다고 한다.

바로 이 책이다. 혹시라도 이곳을 여행하게 된다면 다른 모든 여행기보다 이 책을 끼고 가겠다.

니콜라 부비에 글/ 티에리 베르네 그림/ 이재형 옮김/ 소동/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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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블루님도 편안한 주말 보내세요. ㅎㅎ

이젠 두분다 90이 넘으셨겠네요. 그 시대 세계여행이라.. 대단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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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감스럽게도 두 작가 모두 1990년대에 작고했습니다. 이런 여행기가 있었다니 놀랐어요.
럭키님 뵈니 갑자기 또 국수가 생각이 난다는.... ㅋㅋ

도서관에 가니 '세상의 용도'란 책이 없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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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도서관에 도서구입 신청하면 한두달 후에 구해줄 수도 있어요. ㅋㅋ

무언가 채념한듯하지만
확고히 그 안에는 얻어간것이 있다는 느낌이
드는 글이네요

인상깊어보이는 책 소개
잘 보고 가요

네.... 들러주셔서 감사합니다. 편안한 주말 이루시고요.

오오 잼있겠어요
리스팀우로 박제!!!

오오... 감사합니다. 한주 즐겁게 목표 이루시면서 보내세요.

돤심이 가네요
좋은 책 소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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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ㅎㅎ

매일 1포스팅 보팅남깁니다. 편안한 밤되세요~
오늘도 디클릭!

감사합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