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 년 간 수많은 청소년들과 함께 공공디자인 교육 첫시간에 여는과정을 진행해 왔습니다.
오늘은 지난 수업시간동안 청소년들이 들려준 공공 그리고 공공성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청소년들은 공공디자인 수업에서 가장먼저 여는과정(여는과정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https://steemit.com/public-design/@st-mitochondria/2xgmjh 를 참고하세요) 을 진행합니다.
함께 최호철 작가의 <와우산>그림을 보며 그림속에 나타난 공공 그리고 공공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리고 어김없이 다음 질문을 만나게 됩니다.
여러분 주변에서 찾을 수 있는 공공은 어떤 것들이 있나요?
수업시간에는 자신의 주변에서 공공 또는 공공성에 대한 경험을 제한없이 적도록 하고 충분한 시간을 줍니다. 단어, 구절, 문장 무엇이든 좋습니다. 유형의 것 무형의 것 상관 없고요. 심지어 감정도 괜찮습니다. 그 어떤 것도 제한하지 않고 맞는지 틀리는지 고민되는게 있다면 깊이 고민하지 말고 우선 쓰도록 유도합니다.
서로 다른 공간에서 서로다른 시간들을 살아온 청소년들의 답변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오랜 시간 답변들이 모이면 모일수록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건 바로 어딜가나 답이 비슷하다는 것입니다.
청소년들이 생각하는 공공
청소년들이 자신의 주변에서 찾은 공공은 크게 두가지로 나누어 집니다.
그룹1 : 노래방, 편의점, PC방, 마트... 그리고 우리반 OO의 집
그룹2 : 산, 강, 들, 나무, 공기, 하늘...
정리하면 여럿이 모여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장소 또는 공공재 정도의 답변이 나온다고 볼 수 있는데요. 심지어 그룹1과 관련한 답변이 그룹2와 관련한 답변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이 나옵니다.
현대를 사는 대한민국 청소년들이 상업공간들을 공공공간으로 인식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러한 질문에 대해 홍익대학교 유현준 교수는 의미있는 통찰을 제시합니다.
상업공간이 공공공간을 대체하게 된 이유
공공공간임을 인식하기 위해서는 누군가와 함께 공간에 존재하고 그 안에서 교류가 일어나야 합니다. 그런데, 유현준 교수는 현대 대한민국의 공공공간이 매우 부족하다는 것을 지적합니다. 도시는 고밀화되고 공공공간, 특히 공원이 매우 비효율적으로 배치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공원이 있다 하더라도 걸어서 접근할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렇게 부족한 공공공간을 채워주는 것이 청소년들에게는 편의점이고, 어른들에게는 카페라는 것이 핵심적인 주장이었습니다. 그곳에서는 라면 하나 또는 커피 하나 사 먹으면 자신들만의 공간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청소년들에게 최고의 공공공간
요즘 청소년들은 주머니에 천원~이천원 정도가 있으면 친구와 함께 편의점에 들릅니다. 둘이 마음을 합치면 2+1이라는 놀라운 할인혜택을 활용할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하나 먹을 돈으로 한개 반의 양을 먹을 수 있게되죠. 이보다 더 공동체성을 강하게 느낄 수 있는 사례가 또 있을까요? 만약에 용돈에 여유가 있다면 어디로 향할까요? 놀고싶을 땐 어김없이 PC방이나 코인 노래방으로 향합니다. 맛있는걸 먹고 싶을 땐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한 마트로 향하죠. 그들은 자신들이 친구들과 모여서 놀 수 있는 상업공간에서 공공성을 느낍니다. 공간의 주인이 얻는 사적인 이익과 무관하게 친구들과 함께 즐길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는 점을 더 강하게 인식합니다. 그렇게 현대의 상업공간들은 청소년들에게 최고의 공공공간으로 자리잡았습니다.
공식적인 공공공간으로의 역할
요즘 편의점 입구에 수많은 스티커들 중에 눈에 띄는 것들이 있습니다. 하나는 아동안전 지킴이집 스티커이고 또 다른 하나는 여성안심 지킴이집 스티커입니다.
편의점은 24시간 운영되고 우리 주변 가장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곳에 위치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특성은 편의점을 위협으로부터의 피난처로 활용기에 적합한 이유입니다. 그런 이유로 편의점은 이제 공공기관과 협력을 통해서 사실상 공식적으로 공공공간으로서의 지위를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청소년들에게 중요하게 인식되는 ‘현상' 이상으로 편의점은 공공공간으로서의 위치를 더욱 강화하고 있습니다.
제자리를 찾아야 할 공공공간 그리고 상업공간과의 연결
상업공간들이 부족한 공공공간의 보완재 역할을 하는 것은 바람직 하다고 봅니다. 하지만 공공공간의 심각한 부족과 부적절한 배치로 인해 상업공간이 학생들이 공공을 느낄 수 있는 첫번째 공간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청소년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고 찾을 수 있는 진정한 공공공간들을 만들어 낼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공공공간이 주변의 상업공간과 의미있는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도 더 깊이 고민하면 좋겠습니다.
공간에서 찾는 공공의 특성
공공디자인 수업의 여는과정중에 재미있었던 답변으로 오늘의 글을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청소년들의 공공에 대한 답변중에 "OO의 집"이 종종 등장합니다. 다들 경험이 있으실거에요. 반에 꼭 한두명씩 집이 자주 비는 친구가 있습니다. 그 집은 여지없이 아지트가 되죠. 부모님이 오실때 까지는 말입니다. 집이라는 매우 사적인 공간이 공공공간으로 인식되는 사례인데요. 공공을 교육하는데 있어서는 매우 의미있는 답변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사적인 공간도 특정한 조건에서는 여러사람들을 위한 공간이 되기도 합니다. 공공 그리고 공공성의 개념을 배울 때 가장 중요한 것도 바로 이 부분입니다. 공공에 대해서 사전에는 한 문장으로 정의되어 있지만, 현실에서의 공공이라는 개념은 한마디로 정리할 수 있는 간단한 것이 아닙니다. 공공에 대한 정의와 인식은 끊임없이 변해왔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변하고 있죠. 변화 속에서 지금의 공공에 대해 논의하는 과정 조차도 공공에 속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음 포스팅에서는 공공 그리고 공공성이라는 개념이 시대에 따라서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알아보는 과정을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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