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순례길 15일차.

in santiago •  7 years ago 

순례길 15일차 (2017.06.22)
보아디야 - 까리온(Carrión) 27km.

전체 일정의 반에 해당하는 15일차 아침도 역시 일찍 일어나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출발합니다.

84E2A8F0-116B-4B35-ACA8-FB71DF7237F6.jpeg

며칠새 날이 푹푹 찌는데다 가도가도 끝없는 평지에 나무한그루 없어 그늘조차 없는 이 메세타 구간에서 살아남을 방법은 아침일찍 조금이라도 덜 더울때 출발해 정오가 되기 전 알베르게에 도착하는 방법이 최고지요.

아침에 눈을뜨고 침대 밑으로 발을 내딛을 때 뼈가 으스러지는듯한 느낌이 들면서 그 순간 만큼은 모든걸 포기하고 싶더라구요. 그래도 오늘의 갈 길은 가야하기에 일어나 씻고 짐정리를 하다보면 어느새 발바닥도 언제 그랬냐는듯 다시 적응을 하고 출발할 준비를 마치게 됩니다.
오늘도 간단하게 빵과 과일 쥬스를 마시고 출발을 하다가 적당한 곳에서 또띠야(오믈렛) 한조각과 까페콘레체 한잔으로 두번째 아침식사를 합니다. 이 고원지대를 걷다보니 모든것들이 귀찮아지고 까먹게 되는게 사진이 정말 없네요 ㅠㅠ

두번째 아침식사를 하고 다시 길을 걸으려는데, 동생이 어제부터 살짝 쓸리던 새끼발까락에 물집이 작게 잡힌것 같다고 하네요. 순례길을 걷다보면 많은 사람들이 발에 불집을 잡히고 알베르게에서 베드버그에 물려 고통받는 상황들이 발생해요. 이번엔 동생에게 물집이라는 고통이 찾아왔고, 어떻게 버스나 택시라도 타고 다음마을로 먼저 가겠냐니까 그정돈 아니라고 일단 걸어보자고 하네요.

  • 팁! 순례길 여정 중에 종종 다음 마을로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순례자들도 있습니다. 처음엔 저도 순례자가 두 발로 걷지않고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면 이 길을 걷는다는게 무슨 의미가 있겠냐 싶었지만 이후에 다시금 느낀것이 그 또한 하나의 방법이다 싶기도 하더라구요. 이 이야기에 대해선 다음에 다루도록 할께요 ㅎㅎ

식사를 한 마을 어귀를 나가려는데, 야곱을 기리는 동상 하나가 있네요.
A5E2C7CE-F6ED-4EF8-8C8D-5C804DE5C708.jpeg

이런 동상들 하나하나를 보다보면 이런 작은 동네에도 산티아고 순례길을 의미하는 동상이나 기념비 또는 성당이 있는게 스페인 사람들은 이 길을 정말 자랑스럽게 여긴다 싶어요.

7DE47818-3934-43DB-A154-915E01AFBC12.jpeg

저도 옆에서 같은 포즈로 한장 찍는데, 옆에 지나가시던 할머니 한분께서 기분좋게 웃으시며 ‘Buen Camino‘ 라고 인사를 건네주시네요 ㅎㅎ 이 길위에서 만난 모든 스페인분들은 하나같이 친절하신게 어딜가나 ‘정’을 느낄 수 있었어요.

다시 힘을 내서 출발해서 한참을 걷는데 동생이 조금씩 쩔뚝거리기 시작해서 물어보니까 통증이 좀 있다고 합니다. 근처 Bar 에 들어가 맥주한잔 하며 상태를 지켜보는데, 다른 순례자 두명이 택시 한대를 부르더니 짐을 넣고선 떠나버리네요. 역시 이때쯤 부터가 고비라고들 하던데 부상자들이 속출하기 시작합니다. 동생에게 택시타고 먼저 가 있으라니까 얼마 안남았다며 절어서라도 두시간만 가면 된다고 끝까지 가겠다는군요.

그렇게 그 마을을 떠나려는데.....
B6716A6C-37D2-4CC3-8A88-1FBD289754EA.jpeg

한 자판기 벽면에 써진 이정표... 산티아고까지 419키로 남았다는... 전체일정 800키로에서 거의 절반이 남았고 일정도 예상일정 31일의 절반 정도인 15일차이니까 아직은 별 탈없이 잘 가고 있다 생각이 들면서도 아직 저만큼이나 남았나 싶어 동생과 저는 헛웃음이 나옵니다 ㅎㅎ

그 허탈감도 잠시 오늘의 도착지까지 절뚝거리는 동생을 이끌어가며 걷다보니 문득 든 생각이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고 무언가를 함에 있어서 신체가 건강하단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지 새삼 깨닫게 되더군요. 정상적이란 것이 지극히 일반적이라 쉽게 생각할 수 있지만 장애를 가진분들은 이런 일반적인 사람들을 얼마나 부러워할지 생각하다보니 몸이 성한것에 더욱 감사하고 열심히 살겠노라 다짐했던 하루인것 같아요.

어떻게 저떻게 오늘의 일정도 마무리 하고 동생이 발이 아픈 관계로 장을 보고 요리까지 다 제가 직접 해주고선 푹 쉬라고 했어요. 이 산티아고 길이란것. 저의 길은 제가 직접 가는 것이지만, 이 길은 동생과 함께 걷는 길이니 서로 힘들땐 의지하고 도우며 나아가야겠지요.

많은 사람들이 산티아고길을 걷다보면 인생을 조금씩 배운다 라고 하던데 드디어 이 길 위에서 바로 그 인생을 배우기 시작하는것 같습니다.

부족하나마 저의 글이 여러분께 재미를 드리고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오늘 하루도 즐겁고 활기차게 보내세요!! Buen Camino~!

  • 오늘의 가계부
    아침 - 3.6유로
    맥주 - 1.5유로
    알베르게 - 5유로
    장 - 7.5유로

총합 - 17.6유로

Authors get paid when people like you upvote their post.
If you enjoyed what you read here, create your account today and start earning FREE STEEM!
Sort Order:  

15일 만에 콩알만한 물집이라... 그 정도면 행운이십니다.
우리는 처음 일주일 동안 그놈의 물집 때문에 고생 엄청 했거든요.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