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게임 공략을 읽고 있는데 묘화기능이라는 것을 소개했다. 게임속도를 빠르게 하는 기능인데 노가다를 할 때만 사용하고 평상시엔 반드시 꺼두라는 조언을 더했다. 그렇지 않으면 게임이 재미없어진다고 말했다. 그리고 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바쁘게 살아온 삶이다. 누군가에겐 우습게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나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많은 것들이 나를 압박해왔다. 그래서 나는 빨리감기 버튼을 누를 수 밖에 없었다.
'모든 것을 최고의 효율로. 비효율적인 것은 싫어.'
공부엔 재능이 있었지만 예술에 흥미가 있었다. 예술에 흥미가 있었지만 창작의 고통은 외면하고 싶었다. 덕분에 이뤄놓은 것은 없었고 내가 가진 경제력은 오직 젊은 남성의 몸뚱이 뿐이었다. 그런 사람에게 시간은 곧 돈이다. 그리고 돈은 곧 시간이다. 하고싶은 것은 너무나 많았다. 세상이 발달했고 소통은 간단해졌다. 그래서 하고 싶은 일은 점점 더 늘어났다. 그러나 시간은 부족하다. 돈도 부족하다. 심지어 난 좋았던 일은 반복해서 하는 편이다.
그래서 난, 남들보다 바쁘게, 빠르게, 효율적으로 사는데 집중했다. 그러면 부족하게나마 하고 싶은 일과 해야하는 일들을 해나갈 수 있어. 돈을 벌 때는 숙식이 가능해서 최고의 효율로 돈을 벌 수 있는 일자리를 찾아다녔다. 공장, 조선소, 모텔 같은 곳.
놀 때는 게임을 하면서 드라마를 보면서 인터넷을 보면서 주식투자를 했다. 동시에 두가지일이 기본, 보통 세네가지의 일을 했다. 음악을 듣는 일은 이동간에만 했고 친구들은 가능하면 한 번에 몰아서 다같이 만났다.
그렇게 몇년이나 살아왔을까. 오늘까지. 읽어야 할 책을 쌓아놓고, 봐야할 애니, 드라마, 영화를 잔뜩 다운 받아두고, 써야할 글들을 간추려서 노트에 담아두고, 하고 싶은 일들을 스케줄러에 적어두었다. 그리고 점 점 지쳐갔다. 점 점 한가지 것을 제대로 즐길 수없는 사람이 되어갔다. 나는 지금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이 확실했지만 방향성을 잃어버렸다. 나는 너무 빨리 걸어가고 있다. 이 길은 내가 원하던 길은 분명하지만 이런 식으로 걷고 싶지 않았다. 이렇게 스쳐지나가버리고 싶지 않았다.
많은 아름다운 것들이, 아무도 듣지 않는 6번 트랙처럼 날 스쳐지나갔다. 난 그것들이 그렇게 무상하게 지나감을 어렴풋이 느끼면서도 빨리감기를 해제할 용기를 낼 수 없었다. 그러나 나는 오늘 지금 이 시간부로 선언한다. 나는 더 이상 내 인생을 빨리감지 않겠다. 하고 싶은 일을 다 할 수는 없다. 나는 신이 아니니까. 선별의 시간을 거치고, 더 높은 가치의 것들을 선택하며 살아가겠다. 그래서 나도 남들처럼, 보통의 속도로 내 인생을 재생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