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서울시] 주민자치회는 자원봉사를 넘어설 수 있을까
서울시는 16일 보도자료를 통해서 <우리동네 생활의제 '주민자치회'가 직접 해결한다>라는, 소위 서울형 주민자치회의 주민총회 일정을 공지했다. 서울시는 서울형 주민자치회가 "정책과 예산에 실질적인 결정권한을 갖는 동 단위 생활 민주주의 플랫폼"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말이 복잡해서 그렇지, 서울시의 설명자료를 보면 그렇게 복잡한 틀은 아니다. 기존의 주민자치위원회를 주민자치회로 바꾸는 과정이라고 보면 된다.
그런데 이게 주민자치위원회와 주민자치회의 법적 근거가 다르다. 그래서 그런지 애초 만들어진 배경과 운영방식도 다르다. 만약 서울시가 주민자치회를 기존 주민자치위원회의 전환으로 생각한다면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지'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1) 법적 근거의 측면
주민자치위원회는 익숙하지만 가장 모호한 조직이다. 왜냐하면 법령 어디에도 주민자치위원회라는 조직을 찾을 수 없어서다. 당장 유일한 근거는 기초정부의 조례 정도다. 어느 동네 조례나 마찬가지이니 <영등포구 자치센터 설치 및 운영 조례>(http://www.law.go.kr/자치법규/서울특별시영등포구자치회관설치및운영조례/(1100,20160701))를 보자. 제1조의 법적 근거는 <지방자치법>제8조와 시행령 제8조다. 별 내용없다.
제8조(사무처리의 기본원칙) ① 지방자치단체는 그 사무를 처리할 때 주민의 편의와 복리증진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② 지방자치단체는 조직과 운영을 합리적으로 하고 그 규모를 적정하게 유지하여야 한다.
③ 지방자치단체는 법령이나 상급 지방자치단체의 조례를 위반하여 그 사무를 처리할 수 없다.
시행령도 중앙정부/광역정부/기초정부간의 사무분장에 대한 별표1에 대한 이야기 뿐이다. 여기엔 기초정부로 하여금 복지시설에 대한 설립 및 운영에 대한 의무가 명시되어있다. 맞다, 주민자치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주민복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 있다.
왜 그럴까. 그건 애초 주민자치위원회가 시설운영을 위한 기구로 설립되었기 때문이고, 현재의 주민자치센터는 원래 주민복지센터였기 때문이다. 국민의 정부 시설 주민복지센터를 설립하고 주민복지센터위원회를 만들었던 것이 주민자치위원회의 원형이고, 이것이 2002년 개정되면서 현재의 주민자치위원회가 되었다. 그러면 주민자치위원회의 권한은 뭔가.
제16조(기능) ① 위원회는 다음 각 호의 사항에 대하여 심의한다.
- 자치회관의 시설 등 설치 및 운영에 관한 사항
- 주민의 문화·복지·편익증진에 관한 사항
- 주민의 복지활동 강화에 관한 사항
- 지역공동체 형성에 관한 사항
- 그 밖의 자치회관의 운영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
이 정도다. 첫번째가 자치회관 설치 및 운영에 대한 사항이고, 이들의 가장 중요한 권한은 자치센터 주민강좌사업을 개최하고 이의 수익금을 관리하는 업무다. 이 주민자치위원회가 흥미로운 것은 구성 방법 때문인데, 기본적으로 동장이 위촉하는 자로 1) 추천을 통하거나 2) 공모를 통하거나 하는 위원으로 구성한다. 각 영역별 제한은 있으나 공모가 전체의 과반이어야 한달지 하는 규정은 없다. 사실상 공모 위원은 기존의 관변단체 추천 인사들의 들러리에 가깝다(최근 들었던 가장 신박한 경우는 추천 인사가 연임규정에 걸리자, 동네의 바르게 살기 몫으로 들어왔다 새마을 몫으로 들어왔다 하면서 추천 단체를 바꿔가며 직을 유지하더란 이야기다).
그런데 주민자치회는 아예 규정이 다르다. 기존에 <지방분권촉진법>과 <지방행정체계개편특별법>을 통합하여 만든 <지방분권 및 지방행정체제 개편에 관한 특별법>(http://www.law.go.kr/법령/지방분권및지방행정체제개편에관한특별법>) 제27조에 명시되어있다. 27조에는 설치와 관련된 사항이 28조에는 기능에 대한 사항이 29조에는 구성에 관한 사항이 정해져 있다. 제28조에 명시된 기능을 보면 다음과 같다.
제28조(주민자치회의 기능) ① 제27조에 따라 주민자치회가 설치되는 경우 관계 법령, 조례 또는 규칙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지방자치단체 사무의 일부를 주민자치회에 위임 또는 위탁할 수 있다.
② 주민자치회는 다음 각 호의 업무를 수행한다.
- 주민자치회 구역 내의 주민화합 및 발전을 위한 사항
- 지방자치단체가 위임 또는 위탁하는 사무의 처리에 관한 사항
- 그 밖에 관계 법령, 조례 또는 규칙으로 위임 또는 위탁한 사항
맞다. 앞서 주민자치위원회가 법 상 수행하는 기능과 거의 겹치지 않는다. 오히려 다르다. 주민자치회와 관련된 조문은 법 체계상 '제3장 지방행정체제 개편'이라는 항목에서 '제1절 지방행정체제 개편의 기준과 과제'에 속해 있다. 이에 따르면 주민자치회는 지방행정체제 개편의 한 수단 혹은 방법이다. 그래서 주민자치회의 기능으로 "관계 법령, 조례 또는 규칙으로 위임 또는 위탁한 사항"을 할 수 있도록 해놓았다. 적어도 동단위 행정을 '위임'할 수 있게 한 것이다. 그런데 서울형 주민자치회는 기본적으로 법적 근거가 다른 주민자치위원회를 주민자치회로 '혁신'한다고 한다. 현실적인 선택이다. 기존의 주민자치위원회로 구성된 지역 기득권 구조와 갈등을 빚기 보다는 서서히 전환시키겠다는 것이다.
(2) 주민자치회? 변형된 자원봉사그룹?
사실 이번에 서울시가 내놓은 보도자료를 보고, 그리고 예시로 내놓은 소위 마을총회에서 결정하겠다는 주민자치회 사업의 목록을 보고 놀랐다. 이걸? 주민자치회라는 이름으로? 왜?
이육사문화의거리 조성, 주민센터유치, 공용주차장 건설, 골목 갤러리, 동네음악회... 익숙하다. 맞다, 기존에는 소위 주민민원이라는 방식으로, 많은 경우엔 시민참여예산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했던 그 사업들이다. 똑같이 주민자치회라는 이름으로 등장했다. 더우기 주민자치회가 주최인 사업은 학교운동장 '안전지킴이' 사업인데 비예산이란다. 자원봉사다. 반면 '이육사기념관 주민자치운영'이라는 사업은 실행방법이 해당부서다. '아, 해당부서에서 주민참여를 고려해 운영하겠다'는 내용이다.
다른 지역은 괜찮은가? 주민봉사단, 마을청소, 사진관 운영 그리고 문화의 거리 축제 운영. 대부분이 주민자치회가 자원봉사를 한다는 내용이다. 어디에 법에서 정한 <위임>과 <위탁>의 사항이 있나?
사실 이름만 '서울형'이라고 해놓았지, 동차원에서 운영하는 행정재산 하나도 주민자치회에 내놓지 않은 자치회라니, 서울시 자원봉사센터 이름만 바꾼 것이 자치회라는 건지 모르겠다. 물론 사업의 내용을 차치하고서라도 동네의 주민들이 모이고 토론하고 무언가를 함께 결정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리고 괜찮은 경험이 된다. 하지만 그 주민들이 모여서 결정하는 내용을 보건데, 권한과 책임보다는 봉사와 희생이 앞선다. 하나의 제도가 이런 식으로 경로의존성을 형성하면 나중에 바꾸기 어렵다.
(3) 자치의 범위와 새로운 구축
현행 생활권 단위 계획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내용이나 형식이라기 보다는 '누가 참여하는가'라는 참여의 다각화 문제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이전의 마을공동체 사업에서도 반복된 현상인데, 통상 2.5년 정도를 한 동네에서 살 뿐인 임차인의 경우에는 동네의 특수성이 아니라 서울 전체의 보편성이 더 중요하다. 그러니까 특정한 동네가 정말 각별하더라도, 이를테면 성미산 마을같이, 그곳을 떠나 서울시내 다른 곳에 정착하는 경우 '격차가 크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자율적인 활동을 뭐라 하는 것이 아니라 구태여 공공의 정책으로 시행한다면 어떤 경험을 우선할 것인가는 중요한 문제다.
그런 점에서 현재 주민자치회의 활동이나 사업은 누가 참여하고 있을까. 어느 정도로 오래 살았던 사람들이 주도하고 있을까. 구태여 자치회 활동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자치회의 '자원'을 공유하고 같이 활용할 수 있도록 개방되어 있을까(나는 우리 동네 마을예술창작소가 있음에도 2년 동안 한번도 가지 못했다. 왜냐면, 갈 때마다 문이 닫혀 있고 입구엔 개방시간에 대한 표시도 없고 홈페이지엔 프로그램 신청 시간이 늘 끝나 있어서다. 물론 인맥을 통하면 연결을 할 수 있겠으나 자연스럽게 그 앞을 오며 가며 들려봤다. 언제 쯤 거기 공방에서 작업을 할 수 있게 될까). 이런 부분이 궁금하다.
무엇보다 서울시의 정책이 지나치게 '근린성'에 주목한 정책을 펼치는 것에 위화감을 가지고 있다. 마치 보수 정권이 사적인 학연, 혈연에 매달리듯이 박원순 시장 역시 지나치게 서울의 생활권이라는 지역성에 매달리는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가 그러면 그럴 수록 서울을 부유하는 50% 정도의 사람들은 소외되고 배제된다.
만약 주민자치회의 실험이 지방행정체제의 개편과 관련이 있다면, 오히려 기존 행정체제를 대체하면서 더 많은 시민들이 행정자원을 활용하고 접근할 수 있도록하는데 초점을 두었으면 좋겠다. 이를테면 동네 도서관 운영시간을 늘리는데 주민자치조직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때때로 24시간 도서관으로 할 수는 없을까 생각한다.
아무튼 8월까지 소위 서울형 주민자치회가 동별 주민총회를 한다고 한다. 어떤 과정을 거쳤다 하더라도 형식이 내용을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주민들에게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권한의 범위를 분명하게 예시할 수 있는 기획이 필요했다. 그냥 '주민이 원하는 것'이라고 내버려 두니 온통 자원봉사 내용이다. 결국 그 일들은 지역 내 유한계층만 가능할 것이다.
마을공동체하고도 다르고 주민자치위원회하고도 다른 주민자치회는 불가능하려나 싶다. [끝]
이사를 계속하고 또 계획하면서, 또 일하는 곳은 사는 곳과 다른 자치단체에 속하면서 주민 위주의 지방자치제에 대한 회의감이 자꾸 생깁니다.
사람이 없다는 핑계로 연임을 계속 돌릴텐데.. 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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