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분 소설)왜 미래에서 오는 사람은 없는가?steemCreated with Sketch.

in short-story •  7 years ago  (edited)

1987년, 인류 인구는 50억 명을 돌파했다. 12년 뒤인 1999년 10월 12일, 60억 명을 돌파했고,  2009년에는 인류 인구가 70억 명이 되었다. 2019년에는 80억 명을 넘어섰고, 2028년에는 90억 명을 넘어섰다. 대대적인 산아제한도 한계가 있었다. 인류 인구는 얼마 지나지 않아 100억 명을 넘어섰다. 드디어 2037년 9월, 인류 인구는 지구 수용 한계라는 100억 명을 돌파했다. 

“아득한 우주에서 인류가 살 수 있는 공간은 아직까지 지구가 유일합니다. 그렇지만 이제 인류가 이 지구에서 살기에는 지구가 너무 좁습니다. 세계 각국 대표는 이 문제에 대한 대책회의에 참석해주기 바랍니다. 2036년 10월 17일 표준시 오전 10시에 개최됩니다.”

유엔 사무총장 알다이드의 메시지는 세계 각국의 행정부에 전달되었다. 그리고 각국 대표들은 책상 앞에서 자신의 단말기와 컴퓨터를 연결했다. 미국 대통령의 모두 연설이 시작되자 정만희 대통령은 번역기를 작동시켰다. 



“인류가 선택할 길은 오직 하나입니다. 밖으로 나가는 거죠. 지금까지의 기술이라면 화성을 식민 행성으로 삼기에 충분합니다. 이미 화성으로의 이주는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라도 인류를 화성으로 실어 나른다면, 화성은 20억 명 이상을 수용하는 지구의 식민 행성으로 탈바꿈할 수 있습니다. 달만 하더라도 1억 명 가까이 수용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태양계 내에 인류가 살 수 있는 터전은 아직까지는 널려 있습니다. 수성, 금성, 목성의 위성인 가니메데, 유로파, 타이탄, 명왕성까지 말입니다. 각 행성들마다 1억 명에서 5억 명 정도의 인류를 이주시킨다면, 인류는 계속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각국의 지도자들과 모든 인류가 현재 기술과 장비를 태양계로 옮기는 데 온 힘을 합친다면, 여기에 소요되는 시간은 많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희망적인 소식을 하나 알려 드리죠. 우리는 사람을 인공적으로 배양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우린 이 기술을 특허로 묶어두지 않을 겁니다. 빠른 시간 내에 인류는 종래의 체내수정 없이도 생겨날 수 있습니다. 혁명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기술이 지금의 인구 문제를 해결하려면 다른 무엇보다도 선결되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체내수정 금지입니다. 이것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인공 배양 기술은 공개할 수 없음을 밝힙니다.”

회의에 참여하고 있는 많은 지도자들이 술렁거리고 있음을 정만희는 느낄 수 있었다. 사무총장 알다이드는 여태 그래 왔던 것처럼 이 안건에 대해 표결을 붙였다. 정만희는 단말기에 달려 있는 ‘예’ ‘아니오’ 버튼 중 ‘아니오’를 선택했다. 표결 결과가 2분도 지나지 않아 발표되었다. 

“찬성 119, 반대 21입니다.”

2031년 이후 유엔은 ‘인류의 생존’과 직결되는 환경 문제나 자원 문제들이 부각되자 이런 표결 시스템을 도입했고, 독립적인 어떤 나라라도 그 결과에 승복해야만 했다. 다시 10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생체배양기를 통해 자손 번식이 이뤄지고 있음에도 구뿐만 아니라 태양계 곳곳에서도 인류는 넘쳐났다. 지구만 하더라도 200억 명을 넘는 사람들로 바글대고 있었다. 에너지 기술이나 환경 유지 기술의 발전도 한계에 부딪혔다. 다시 ‘UN 세계 지도자회의’가 열렸다. 

유엔 사무총장 이광호가 말문을 열었다.“지구는 더 이상 어떤 후손도 받을 수 없습니다. 이제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김영수 대통령이 뒤따랐다.“대한민국의 분자생물 연구소는 3년 전 세포 크기를 줄이는 획기적인 시도를 성공리에 마쳤습니다. 이는 단세포 생물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다세포 생물에게도 해당됨이 실험 결과 밝혀졌습니다. 넘쳐나는 인류! 우린 이 문제 해결을 위해 그 기술을 응용할 수 있는지 진지하게 조사했고, 결과는 매우 만족스럽습니다. 지금 현재 기술로 인류는 15%만큼 작아질 수 있습니다. 작아진 인류는 지구가 더 넓다고 생각할 겁니다. 우린 이 기술을 특별히 공개하고자 합니다. 인류가 작아지는 걸 선택하겠습니까?”

표결 결과는 금세 발표되었다. 찬성 97, 반대 35였다. 그동안 꽤 많은 나라들끼리의 합병 덕분에 100년 전보다 표결에 참여한 국가가 줄어들었다. 인류 축소 작업은 전 지구적으로 동시에 벌어졌고 실제로 인류는 15% 작아졌다. 먹는 것도 그만큼 줄어들었고, 싸고 버리는 것도 그만큼 줄어들었다. 인류는 겨우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그리고 30년이 흘렀다. 그 사이에도 인구는 줄지 않고 계속 늘어났다. 사실 지난 130년 동안 체내수정이 엄격하게 금지되었음에도 근본적으로 막을 수는 없었다. 체내수정 금지를 처음 시행했을 때는 어느 정도의 효과가 있었지만 10년도 지나지 않아 체내수정은 다시 시작되었고, 어떤 나라도 그걸 막을 수는 없었다. 유엔은 다시 인류 크기를 15% 줄이자는 안건을 상정시켰고, 표결 결과는 찬성 101, 반대 31이었다. 다시 인류는 15% 줄어들었다. 처음보다 22.5% 줄어든 셈이었다. 키가 180센티미터인 사람은 140센티미터가 되었으니, 이전 인류는 이때 인류를 난쟁이나 진배없이 볼 정도가 되었다. 인류는 다음에 있을 '작아지기'에 대비해야만 했다. 23세기가 오기 전에 또 한 번의 '더 작아지기'를 거치지 말라는 보장이 없었으니 모든 것이 바뀌어야만 했다. 집이나 자동차는 물론 가전제품들도 조그만 것이 인기를 끌었던 2166년. 인류는 주위의 동물이나 식물, 심지어는 꽃도 너무 크다고 여겼다. 인류는 이듬해 지구에 사는 모든 생물들이 작아지기 과정을 걷게 만들었다. 그들도 인류만큼 작아진 것이다. 다시 30년이 흘렀다. 인류는 이제 작아지는 것에 대해 충분히 대비하고 있었고, 또 한 번 작아지는 것을 선택했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15%가 아니었다. 그간의 기술은 20%까지 작아질 수 있을 정도로 발전되었다. 집을 위한 땅만 아니라, 먹을 수 있는 것들이 자랄 수 있는 땅도 더 넓어진 셈이 되었다. 그리고 20년이 지난 2217년 인류는 20% 작아지는 것을 또 선택했다. 사람들 키는 처음보다 거의 절반으로 줄어들었으니, 몸무게는 거의 8분의 1밖에 되지 않았다. 80킬로그램의 사람은 10킬로그램이 된 셈이었다. 

‘작아지기’ 역사는 계속되었다. 2317년의 인류, 놀라지 마시라. 사람들 키는 50센티미터를 넘지 않았다. 또다시 100년이 지났을 때 사람들 키는 12센티미터를 넘지 않았다. ‘작아지기’ 과정 동안 인구 억제는 전혀 이뤄지지 않아 지구에서 사는 인류만 해도 2조 명을 넘었다. 그리고 700년이 지났다. ‘작아지기’ 과정은 여전히 계속되었다. 인구는 여전히 늘어났고, 마침내 100조 명을 돌파했다. 3117년의 인류. 키는 1.7센티미터를 넘지 않았다. 다른 생물들 크기를 그냥 뒀더라면 개미에게도 위협을 느낄 정도가 되었다. 몸무게는 7~8mg. 

지구는 인류가 살기에 진정으로 넓은 곳이었다. 어딜 가더라도 여유가 있었다. 길을 걷다 서로 어깨를 부딪치는 일도 없었고, 널찍한 정원이 있는 집에 모두 수영장을 둘 수 있었다. 그럼 아무 문제도 없었냐고? 당연히 있었다. 비, 우박 눈은 인류 활동을 완전히 정지시킬 정도로 큰 위협이었다. 바람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튼튼하게 만들어졌다고는 하나 비행정이나 자동차를 날려버리고도 남았다. 2150년 이후 인류 역사는 곳곳에 관개 시설을 제대로 갖춘 돔을 건설하는데 집중되었다. 반지름 길이 1킬로미터짜리 돔은 최소 7천만 명을 위한 보금자리가 되고도 남았다. 그리고 3338년, 인류는 상상 속에서나 그렸던 타임머신을 만들 수 있었다. 그들의 모습은 21세기의 인류에게 조그만 벌레보다도 못한 존재였다. 타임머신을 만든 34세기 인류는 대부분, 온갖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과거로의 여행을 선택하지 않았다. 그들은 소인국을 방문한 걸리버를 원했지, 거인국을 방문한 걸리버를 선택하기에는 겁이 많았다. 

사람들은 지나가는 얘기처럼 말한다. 왜 미래에서 오는 사람들은 없냐고. 그럼 나는 대답한다. 자세히 볼지어다. 개미만한 인간들 모습이 보이지 않냐고. 언제라도 용감한 사람들은 있게 마련이니 미래에서 과거로 오는 이들도 언제나 있으렷다. 그러니 이제부터라도 행여 조그만 벌레라도 죽여선 안 되리라. 어쩌면 용감한 우리 후손을 죽일 수도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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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 years ago (edited)

신선하네요^^ 잘 봤습니다~ 보팅하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잼있네요. 팔로우 보팅하고가요~~

고맙습니다. 페이스북 그룹에 게시물을 올리고 나니 아무래도 다녀가는 사람이 좀 많아져서 재미가 아주 조금 생기려 하네요. 편히 쉬시길 바랍니다.

  ·  7 years ago (edited)

오~ 재미있네요. 저도 이런 SF 단편을 습작처럼 써보고 있습니다. 보팅하고 갑니다~ ^^

그런가요? 쓰시는 대로 올려보세요. 기대하겠습니다.

옛날에 쓴 것들은 블로그나 스팀잇에도 올려봤었는데.. 역시나 별 반응이 없으니 쓸 맛이 안나더군요.. ㅎㅎ

그렇군요.

  • 다운사이징이란 영화가 있더군요. 제가 쓴 이 소설에서도 영화에서 다운사이징을 선택한 이유 비슷한 걸 찾을 수 있습니다. 제가 이 짧은 소설을 쓴 건 사실 꽤 오래 전입니다. 인류 인구가 60억 명을 돌파했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썼습니다. 스마트폰이 등장하지 않을 무렵에 쓴 거라는 점 감안하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