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의 3.1절 기념사를 들으며

in speech •  7 years ago  (edited)

이번 기념사를 두고 이미 저보다 나은 분들이 분석과 평가를 잘해주셨기에 그냥 감상, 짧은 생각만 적어보려고 합니다.


1. 노무현의 연설 과 문재인의 연설

비교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누가 더 낫냐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고 다른 시대 정신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개인적으로 고 노무현 전대통령님의 연설에는 '생명력'이 보이는데, 문재인 현 대통령의 연설에서는 그것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이는 특히 육성으로 들어보면 확- 차이가 다가옵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연설은 글로도 거의 비슷한 감동을 얻을 수 있습니다. 반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연설은 반드시 그 분의 육성으로 귀로 들어야 하고, 그 분의 표정을 봐야 합니다. 글로는 그 감동이 많이 반감됩니다.


2. 거친 사포와 매끄러운 돌

대통령의 연설은 이미 본인의 저작물이 아닙니다. 후보시절부터 전문가들이 초안을 작성합니다. 또한 사전에 여러 차례 퇴고의 과정을 거칩니다. 그러나 희안하게도 고 노무현 전 대통령님의 연설에는 거칠음이 느껴집니다. 그게 장점이기도 하고 단점이기도 합니다. 음악으로 치면 라이브 음악을 듣는 것 같습니다. 반면 문재인 대통령의 연설은 잘 만들어진 CD트랙을 듣는 것 같습니다. 완성도만 높고보면 훨씬 뛰어납니다. 또한 이를 소화하는 퍼포머로서도 문재인 대통령은 완벽합니다. 그는 원문의 내용을 이해하는 수준을 넘어, 그것이 낭독되는 장소에 대한 고려는 물론이고, 이것이 대중들에게 어떻게 전달될 것이며, 심지어 향후에 어떻게 남을 것인지 까지 이미 고려하고 계신 것처럼 보입니다. 흠 잡을 데가 없습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저는 그래서 별로 매력을 못느끼겠습니다.


3. 3.1절 기념사의 옥의 티

지금의 시대정신은 무엇일까?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21세기초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공통된 가치의 변화. 그 중에 반드시 포함되는 키워드 중의 하나는 '여성'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시대정신이 이번 기념사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3.1운동 내용에는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모두 알고 있는 유관순 열사를 포함하여 수많은 여성분들이 만세운동을 조직하여 전국 곳곳에서 항일투쟁을 벌인 부분이 중요한 축으로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런 자랑스러운 역사, 그리고 시대정신에도 부합하는 일화가 내용에  들어가 있지 않습니다. 대신 삯바느질과 막일을 해가며 자식과 남편의 옥바라지를 한 어머니의 서사가 한 줄을 차지합니다. 

앞서 말했듯이 대통령의 연설문은 개인의 작품이 아닙니다. 연설문 초안을 작성한 글쓰기 전문가는 물론, 여러 관계자가 사전에 꼼꼼하게 검토하고 퇴고한 결과물입니다. 어느 단어를 넣고 뺄 것인지, 어떤 내용을 한 문장 넣을 것인지, 두 문장 넣을 것인지. 기본 몇 시간, 많게는 2-3일 토의를 해서 만듭니다. 연설문은 현 청와대 관료들, 즉 이 정권이 시대정신을 어떻게 인지하고 있는지 드러내는 결과물입니다.

너무나 뻔히 보이는 중요한 시대 변화를, 놓치고 있는 것. 이 엇박자는 앞으로 계속 충돌과 균열을 낼 것이라고 봅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김어준의 경고와 여권 중진들의 우려 목소리는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은 "격차와 차별에서 해방된 나라를 만들자"라는 원론적인 얘기를 말하는 때가 아닙니다.


가부장제가 실질적으로도 무너지고 있고 대안 사상과 가치가 빠르게 국내에서도 확산되고 있는 시대입니다.

이에 따라 그에 대한 반감과 저항도 같이 커지고 있고 이것이 이미 사회갈등 요소로 자리잡은 시대입니다.

그 속에서 국가 지도자가 어떠한 이정표를 제시하지 못하면 그 혼란은 계속될 것이며, 이는 사회 전 영역에서 비용으로 가산될 것입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처럼 다듬어지지 않은 생각을 던지는 것도 리스크가 있지만

완전히 다듬어질 때까지 의견을 제시하지 않는 것도 리스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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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떠한 '게으름' 이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