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어느 분이 메일을 보내온 적이 있었다. 그분은 자신의 딸이 교통사고로 숨지고 아내도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그래서 하나님이 너무 원망스럽고 실망스러워서 교회를 떠났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그런 하나님을 다시는 믿지 않는다고 힘주어 말했다. 하나님을 원망하고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 왜 필자에게 그런 메일을 보냈는지 이유는 모르겠다. 그래서 필자는 이렇게 말해주었다. 하나님은 형제가 교회에 다닐 때에도 자녀라고 인정하지 않으셨으며, 지금도 세상에 살고 있는 지조차 모른다고 말이다. 그러자 그는 불같이 화를 내면서, 칼을 들고 필자를 죽이러 온다고 각오를 단단히 하고 있으라고 길길이 뛰었다. 아마 그 분은 필자에게 위로나 격려를 얻으려고 연락했겠지만, 거꾸로 돌멩이를 맞으니까 불같이 화를 내어 필자를 죽이고 싶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형제의 사건을 살펴보자.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자신의 자녀에게 닥치는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불행한 삶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연단을 통해 믿음을 성장케 하시는 목적이거나, 때가 되면 더 큰 축복으로 갚아주실 거라고 위로나 격려를 해주어야 하는가? 물론 대다수의 교인이나 목회자들은 이런 위로나 격려의 말로, 불행에 빠진 교인들을 토닥토닥하고 있다. 그래서 그들의 말이 현실이 되었는가? 하나님께서 연단을 통해 견고한 믿음의 통로로 불행에 빠지게 하셨으며, 나중에 더 큰 축복으로 갚아주셨는가? 엊그제도 카페의 게시판에 상담 글이 올라왔다. 그래서 여기에 옮겨 드리겠다.
‘답답한 마음에 글을 씁니다. 저는 농어촌 미자립 교회에서 20년 넘게 사역해오신 전도사님의 딸입니다. 저의 아버지는 늦게 신학을 하신데다 형편이 안돼서 신대원에 진학을 못하셨습니다. 하지만, 그 어느 사역자들보다 영혼을 사랑함으로 교회를 섬기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 1월 23일 새벽에 원인모를 불이 나서 교회와 사택 모두가 전소 되었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당시 양쪽 무릎 관절수술을 하셔서 1달 넘게 병원에 입원에 계신 상태였고 화재가 난 그 날이 바로 퇴원일이었습니다. 처음에 부임하셨을 당시의 교회는 비가 샐 정도로 상태가 아주 안 좋아 동네에 있던 무당까지, 뭘 먹고 사는지 불쌍하다며 다른 사람을 통해 쌀과 야채들을 보내올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불이 나기 전까지 교회의 보수와 정비를 위해 손수 교회 지붕에 올라가서 때마다 애쓰셨고, 교회와 사택의 난방을 위해 아버지께서 직접 산에서 나무를 해오셨습니다. 동네에 무슨 궂은 일이 있어도, 아픈 사람이 있어도 가장 먼저 뛰어가셔서 그들을 도와주셨습니다. 그런데 화재로 인해 모든 것을 잃으신 저희 부모님은 무엇보다도 교회를 지키지 못한 죄책감에 가장 많이 가슴아파하셨습니다. 처음에 노회에서는 모든 것을 책임질 듯이 이야기했습니다. 그래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기다렸습니다만 노회에서 여러 큰 소리가 나고 차마 말로 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결과는 전기제품 몇 개 사준 것으로 끝났고 아버지는 은퇴하셔야만 하셨습니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말입니다. 동네의 빈 집에 잠시 거쳐하는 동안 동네 사람들이 하나같이 된장이며, 고추장이며, 쌀이며 식기 등 자기 일처럼 안타까워하며 정을 보여 주었습니다. 하지만 몇 안 되는 도시의 후원 교회에서는 모두들 여력이 안 된다면서 아무런 손도 내밀어 주지 않았습니다. 물론 노회의 사정도 있을 것입니다. 여러모로 도움을 주신 믿음의 분들도 계십니다. 하지만 이런 큰일을 겪으면서 가장 가슴 아팠던 것은 그토록 친하게 지냈던 주위 사람들의 냉담한 반응이었습니다. 지금 저희 부모님께서는 가까이 지내시던 어느 목사님의 소개로 다른 지방의 빈 집에 기거하고 계십니다. 앞으로의 생활이 많이 걱정됩니다. 딸인 저도 주님께 부름 받은바 되어 모든 것을 정리하고 남편과 함께 선교를 준비하고 있어 생활적으로 여력이 없는 상황이라 마음만 쓰입니다. 주님의 온전하신 뜻을 원합니다. 기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필자는 이 상담 글을 읽으며 마음이 아팠다. 필자를 찾아온 수많은 사람들이 위의 부모님의 처지와 다를 바 없이, 눈물로 쓴 인생극장을 사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기가 막히게도, 이들이 교회의 5%내에 들 정도로 헌신적이고 열정적인 교인들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불행에 빠져서 고통스럽게 살아야 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사실, 필자도 과거에 이들 못지않은 불행한 과거사를 가지고 있다. 사는 게 너무도 고통스럽고 힘들어서 자살하는 사람들이 부러워했고, 잠자리에 들 때면 아침에 깨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수도 없이 하면서 잠자리에 들곤 했다. 그러나 지금은 왜 필자를 비롯해서 하나님을 희생적이고 열정적으로 믿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이런 기가 막히게 불행스럽고 고통스러운 삶을 영위해야 하는지 잘 알게 되었다.
욥기를 읽으면 기이한 장면이 연출되고 있다. 동방의 의인이라고 자랑하고 있는 하나님 앞에 사탄이 등장해서, 욥의 믿음은 하나님의 축복에 있다고 하면서, 이 축복을 거두어가면 하나님을 향한 믿음도 버릴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자 하나님은 사탄의 시험을 허락하신다. 그 시험은 입이 떡 벌어지는 불행한 사건이었다. 거부였던 재산이 하루아침에 날아가고, 열 명의 자녀들이 한꺼번에 죽음을 당하고, 자신도 몹쓸 병에 걸려 고통스러워하며 눈물로 하루를 지내고 있었다. 아내는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는 저주를 퍼붓고 떠나버렸다. 게다가 3명의 친구들을 그를 찾아와서 자신의 불행의 원인이 하나님께 대한 죄악 때문이므로 이를 인정하라고 비수를 꽂아댔다. 그러나 그는 이 말을 인정하지 못하겠노라고 고집을 피우고 있다. 그래서 나만큼 하나님을 경외하고 예배하는 삶을 사는 사람이 있으면 나와 보라고 큰소리를 떵떵 치고 있다.
그 때에 여호와께서 폭풍우 가운데에서 욥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무지한 말로 생각을 어둡게 하는 자가 누구냐 너는 대장부처럼 허리를 묶고 내가 네게 묻는 것을 대답할지니라(요38:1~3)
욥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주께서는 못 하실 일이 없사오며 무슨 계획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니이까 나는 깨닫지도 못한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도 없고 헤아리기도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내가 말하겠사오니 주는 들으시고 내가 주께 묻겠사오니 주여 내게 알게 하옵소서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욥42:1~6)
위의 구절은 하나님의 말씀의 시작과 욥의 대답이다. 욥은 자신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예배하는 삶을 살았노라고 자신 있게 말했지만 하나님은 생각은 달랐다. 그는 자기 의에 빠지는 교만한 죄를 지었다고 질책하고 있다. 그래서 욥이 철저하게 회개한 후에야 비로소 갑절의 축복을 얻게 되어 욥의 인생이 해피엔딩으로 끝나고 있다. 하나님께서 동방의 의인이라고 칭찬한 욥조차도 가증스런 죄인에 불과했다. 하물며 우리는 말할 것도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불행에 빠지는 원인은 하나님께서 자녀로 여기시며 돌보시지 않기 때문이다. 가장 큰 죄가 무엇인지 아는가? 하나님을 쉬지 않고 찾아오지 않는 죄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피조물들이 쉬지 않고 전심으로 찾아오기만을 학수고대하고 있다. 예수님도 라오디게아 교인들에게, 문밖에서 자녀들이 문을 열어주기를 기다리며 두드리고 있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그러나 대다수의 우리네 교인들은 자신들의 희생적인 신앙행위를 드러내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녀라고 착각하고 있다. 기가 막힌 일이다. 그러나 이를 증명하지 않으면 아무도 필자의 말을 믿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부르는 기도를 시작하여 적지 않은 시간이 경과한 영성학교 공동체 식구들과 필자가, 과연 불행하고 고통스러운 삶이 끝나고 형통하고 행복한 삶이 시작되었는지 날카롭게 확인해보시기 바란다.
크리스천 영성학교, 쉰목사
Good 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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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ry n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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