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남자의 이야기를 해보려는 이유가 뭘까 자문해본다.
어둠이 두텁게 깔린 동네 골목 허름한 술집의 풍경이 떠오른다.
싸구려 술에 취해 무거운 짐을 진 듯 웅크리고 앉아
민들레 홀씨 같은 말들을 허공에 뿌려대는 그림자는
바로 나이거나 당신들이거나. 혹은.
이 남자이거나..
평범한 미장센의 촛점 흐린 배경에 불과했을 그 풍경. 전혀 위력적이지 않은 실루엣.
그럼에도,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을 말들을 쏟아내던 그 순간 만큼은,
나나 당신들이나,
그는,
주인공이었을 것이다.
흑백의 실루엣이 아니라 채색이었을 것이다.
그런 식의 쓸쓸함..
그런 느낌이 이 남자의 이야기를 해보자고 마음 먹게 한 것 같다.
그 정도로 해두자.
—
그는 그 때 고등학교 2학년이었다고 했다.
조잡한 얼룩무늬가 프린트 된 교련복을 입고 학교로 가던 아침이었다.
무르익은 가을의 아침은 쌀쌀했고 잠에 대한 미련도 떨치지 못한 터라
무의식적으로 운동화를 질질 끌며 버스 정류장을 향해 가고 있었다고 했다.
종잇장 하나가 목덜미를 건드리고 땅에 떨어졌다.
뭐냐?
짜증난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들었을 때 그의 눈에 희안한 광경이 펼쳐졌다.
허공에서 종잇장들이 너풀거리며 떨어지고 있었고,
사람들이 모두 멈춰 서서 종잇장 하나씩을 들여다 보고 있었다. 그제서야
"호외요!"
종잇장 뭉치를 허공에 뿌리며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신문배달부가 눈에 들어왔다.
까까머리를 하고 검정 교복을 입은 중학생놈이었다.
"호외요! 가카가 죽었대요!"
그도 종잇장을 집어들었다.
까만바탕에 하얀글씨로 <朴正熙대통령被擊逝去> 라고 박혀있었다.
아니 박혀 있었을 것이다. 당시의 그는 그 한자를 다 읽지 못했다고 했으니까..
(아마도 이거?)
아무튼 그는 그 날의 기억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러니까 그 날은 1979년 10월 27일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