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 든 • 손

in steemzzang •  4 days ago 

아버지는 언덕이고 큰 나무였다

동이 트기전
아버지 글 읽는 소리 마당을 건너오고
하루를 벼리는 낫을 가는 소리를 남기고
지게를 진 아버지의 등이
대문을 열고 나섰다

해거름에 돌아오신 아버지를 졸라
날름 업혀 *미루꾸 사러갈 때면
가장 아늑한 둥지였다

잠시라도 집을 떠났다 돌아오시면
상청에 향을 사르고 절을 하던 등은
가장 엄숙한 언덕이었다

종점까지 딸을 바래다주고
버스 꽁무니가 보이지 않을 때야 돌아서던
아버지의 등은
텅 빈 속을 끌어안은 고목이었다

*미루꾸- 밀크 캐러멜

image.png

등 / 이영광

등에는 눈이 없고,
코도 입도
가슴도 없는데

돌아서서 가는 사람의 등은
먹먹하고
둥그렇고
기웃하다

진짜 얼굴은 등에 있는 것 같다
얼굴이 두리번거리고
화들짝 놀라고
붉게 달아오를 때

등은, 숨겨주고
눕혀주고
붙잡아 일으켜세워준다

앞이란 언제나 휘둥그런
간판 같은 녀석
힘내어 큰소리치다간
풀죽는 녀석

입간판 들여놓고
셔터 내리고
울음을 내놓으려 하는 얼굴을,
자꾸 품속을 파고드는 앞을

부릉 부릉 부릉
헬멧에 점퍼로 단단히 여민
등이 안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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