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 든 • 손

in steemzzang •  3 months ago 

유명한 죽집에서
죽 두 그릇 포장해 왔다
물김치도 권말부록처럼 따라왔다

저녁상에 죽 싫다고 간장 한 방울 떨군 밥에
김 한 장 붙여 입에 물고
물김치를 한 술 뜨다 입덧처럼 왈칵
맹물도 왈칵
눈물까지 왈칵

활엽처럼 무성했던 젊은 날
가을 보다 성급하게 잎을 떨군다
이미 초록을 잃은 이파리들은
나무를 올라가는 법을 모른다

해가 뜨고 저물 때마다
나이도 왈칵 쏟아냈을 것이다
삭정이 같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 나이도
돌아오는 길을 모르고 있을 터

덕장에 걸린 황태처럼 입을 벌리고 잠든 얼굴에
아흔 살은 돌아오지 않고
두 살만 누워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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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지나가는 중/ 권대웅

모든 것이 지나가고 있는 것들이다
비가 내리는 것 아니라 지나간다
불이 켜지는 것이 아니라 지나간다
마음도 바뀌는 것 아니라 지나간다
우선멈춤 서 있는 전봇대
어둠 속에서 껴안고 있는
너의 알몸도 지나가는 것이다
지하철이 지나갈 때마다
건너편 서 있던 당신이 사라진 것처럼
어디론가 지나간 것이다
우리가 언제 어디서 만났을까 아뜩하다
한때 내 몸을 흠뻑 적셨던 소나기들
눈이 너무 부셔
눈물마저도 은빛 지느러미처럼
아름다웠던 날들 속으로
눈먼 사랑이, 모닥불이 지나간다
공중에서 일가를 이루던
나뭇잎들이여 먼지들이여
세월의 녹색 철문이 쿵! 하고 닫히는 순간
어느새 훌쩍 자란 침엽수처럼
보이지 않는다 잡히지 않는다
온 곳으로 돌아가는 길
이 세상에 지나가는 것들은 모두
그곳으로 가는 길
태양이 담벼락에 널려 있던
저의 햇빛을 데려간 자리
여름의 목쉰 매미들이 돌아간 자리
그곳으로 가기 위해 태어나고 사랑한다
모두가 온 곳으로 돌아가기 위해
지금 모두 지나가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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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흔은 돌아오지 않고 두살만 누워있다…..
시인님 상황이 너무나 잘 그려집니다.
힘 내세요.

감사합니다.
명절 즐거우셨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