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수년 만에 만난 그이는 당신이 내 주변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건 나도 동감이다. 나는 그이에게 동감을 표하며 이대로 나가다 교통사고를 당해 죽어도 더 이상 여한이 없을 것이다라고 답해주었다. 그건 사실이다.
할 만한 것을 다했으니까.
아직도 가지고 싶은 것, 해보고 싶은 것, 가보고 싶은 곳이 없지는 않다만. 그것을 하지 않고 죽는다 해도 '아 시바~ 우물쭈물대더니 이럴 줄 알았어' 욕이 튀어나오진 않을 것 같다. 버킷리스트는 바탕화면 휴지통 비우듯 정기적으로 정리해 온 인생이니.
그이는 자기 업계의 가속되는 고단함과 불합리가 견디기 힘들다고 했다. 그리고 이번 코로나를 거치며 실은 시간 거지로 살아온 자신의 삶을 반추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를 '시간 부자'라고 불렀다. 그러잖아도 시간 부자로 살아온 인생에 만족해하고 있던 참이다. 반백년에 이르니 '인생 정산'이란 것을 해보게 되는데. 가만 계산을 해보았다. 남의 손에 넘겨준 시간이 얼마였는지. 학창 시절과 군생활을 제외하곤 4년 정도더라. 나머지 시간은 오롯이 나의 손에 있었다. 덕분에 온갖 고난과 고초를 다 감당하기도 했던 것이다. 경험 없는 나의 손에 놓인 시간을 어쩔 줄 몰라 말이다. 그러나 적어도 누가 시키는 대로, 누구의 통제를 따라, 내 시간을 헌납하지는 않았다. 권태와 억압은 없었단 말이다.
덕분에 시간 사용의 노하우는 꽤나 터득한 것이다. 지루하게 주어진 시간을 어쩔 줄 몰라 마구 허비하긴 했어도, 타이트하고 촘촘하게 짜여진 타인의 요구로 시간을 강탈당하진 않았다. 그리고 이렇게 반백년즈음에 이르러서는 감히 '만족스러운 시간'이었다고 고백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게다가 인정까지.
그러니 나는 계속 살던 대로 살 거야.
잘 살아왔으니 말이다. 물론 그이가 자신의 시간을 헌납하여 획득한 부와 내 멋대로 살아오느라 축적할 새가 없던 나의 부는 비교가 불가할 정도로 격차를 보이지만, 그 간격이란 게 딱 '시간 부자'와 '시간 거지'의 그것이라 우리는 서로 셈셈인 셈이다. 그리고 각성한 그이는 이제 자신의 부를 축내어 시간을 사겠다 하나, 나는 나의 남은 시간을 축내어 그이의 부를 따라잡을 생각이 없으니, 우리는 이제야 시간의 성에서 서로 만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죽을 날이 더 가까워진 마당에, 죽어 들고 가지도 못할 것들을 사들이느라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낭비할 이유가 없기도 하고, 이제는 도가 튼 타임 서핑의 기술이 날로 빛이 나는데 굳이 내 시간을 내어주고 얻은 부로 다시 시간을 사는 어리석은 짓을 할 필요가 없기도 하다. 사람들은 '정규 코스'라고 부르는 그길로 돌아가기엔 너무 늦었다.
살던 대로 살아도 남은 인생을 잘 살 수 있다는 자신감을 반백년즈음에 고백할 수 있는 이가 몇이나 될까? 자랑하는 말이다. 물론 그 길에는 암과 결별, 파산과 가난, 배신과 절망이 에너지 드링크처럼 곳곳에 배치되어 있고, 한 캔씩 들이킬 때마다 수명이 반으로 주는 게 아니라 타임 서핑의 기술이 한 단계씩 렙업 된다는 건 마셔본 자만 아는 비의이니. 그것을 피하려고 '정규코스'에 시간을 헌납한 그이에게는 '애썼다'는 말 외엔 해줄 말이 없는 것이다. 다만 타임 서핑의 기술이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었다면 진시황은 왜 영생을 하지 못했는가 되묻고 싶은 것이다. 그게 그렇게 쉬운 거였다면. 돈으로 살 수 있는 거였다면.
아무쪼록 그건 그이의 인생이니까 남은 시간이나마 귀하게 여기길 바라고. 나는 나의 반백년의 인생을 만족스럽게 돌아보며 여전히 반복해 가야 할 나의 남은 시간에 알을 더 가득 채우려니 드는 생각이다. 내가 그 시간 동안 무얼 했는지, 어떻게 시간을 채워왔는지, 누구와 시간을 공유했는지. 그리고 이제는 리스트가 모두 'complete' 되어 더 이상 남지 않은 여한을 넘어 어떤 새로운 정념이 나의 시간을 요구해 올지.
_ 마법행전 프롤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