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어렵다. 모두가 원하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20세기소년의 친구 중에는 그런 친구가 있다. 그는 듣기로 10년째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고 한다. 집? 아니다 그가 어디를 자신의 집으로 생각하는지 나는 모르니 고향이라고 해야겠다. 그의 고향은 이탈리아다. 그는 자신의 고국이 싫다고 한다. 그래서 가능하면 돌아가지 않으려 한다. 그런데 그는 한국 여자를 좋아한다. 매번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또 당했다고 한다지만, 그래도 한국 여자가 좋은 걸 어떡하겠느냐며 줄줄이 연애를 이어왔다고 한다.
20세기소년에 자주 들르는 그와 나는 대화를 해본 적이 없다. 일단 영어가 서툴기도 하지만 그의 삶의 맥락이 그다지 궁금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양인들 중엔 어쨌든 인종적 어드밴티지, 살색의 어드밴티지, 언어의 어드밴티지를 자본 삼아 아시아를 전전하는 이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도 그런 부류 중 한 명이라는 생각에 그다지 관심이 가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그가 고국으로 돌아가게 생겼다는 게 아닌가. 잘 버티더니 왜?
그는 버티고 또 버티는 중이었다. 여행 비자로, 코로나를 핑계 대며 이런저런 이유로 이민국과 계속 쇼부를 쳐왔다고 한다. 대한민국의 이민국은 관대한가? 아니면 그의 실력이 뛰어난가? 아무튼 그는 코로나 발발 이후로 계속 비자를 연장해왔는데 더이상은 어쩔 수 없었나 보다. 근 10여 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었단다. 그리고 지금은 한국 땅으로부터 벗어나 졌다. 나는 20세기소년에게서 그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생각하다 갑자기 숭고해졌다. 그의 버텨내기가.
누구나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방식으로 사는 걸 꿈꾼다. 물론 그것에는 언제나, 최대치의 자본과 시간적 여유를 알맹이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잔뜩 양념을 쳐대며 그리고는 그 잔뜩 덮인 양념을 핑계로 난 할 수 없을 거라 생각하고 지레 포기하는 것이 일반이다. 그리고는 원하지 않는 곳에서 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버텨낸다. 버티고 또 버티다 암에 걸려 죽는다. 스트레스를 받아. 그게 21세기의 일반이고 보편인데, 생각해보니 그의 삶은 그것과 정반대 방향으로 버텨내고 있었던 게 아닌가.
원하는 한국에서 원하는 한국 여성과 계속읽기☞
<20세기의 여름>을 끝마치며 우리 각자는 이곳을 우리가 원하는 바로 그곳으로 만들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되새겨 보아야 한다. 일반적인 사람들의 일반적인 방식, 원하지 않는 곳에서 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운영되는 공간이 아닌, 우리는 얼마나 우리가 원하는 곳에서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지난 두 달을 살아내었을까? 이 질문에 각자가 대답하고는 다음의 선택을 이어가야 한다.
나는 언젠가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방식으로
원하는 사람들과
원하는 만큼
원도 한도 없이
살다 죽는 것만큼
아름다운 일이 없고
행복한 일이 없다고
기록했다.
그리고 이 2021년의 장충동 20세기소년,
그리고 <20세기의 여름>에서
그 시작을 보았다.
그러니 이제 남은 일은
이것을 지켜내는 일,
이것을 확장하는 일,
이것을 멈추지 않는 일,
이것을 빼앗기지 않는 일,
이것을 허튼 것과 바꿔먹지 않는 일
뿐이다.
묻고 싶다.
너도 그런가?
몇달동안 하루도 쉬지않고 일하다가 겨우 오늘 쓰러져 읽은 글이 너무 깊숙하게 들어오네요. 생각이 많아지는 글입니다. 잘읽고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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