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사와 박살 난 밴드의 멤버들은 피레네산맥을 넘고 있었다. 산 주위에는 여기저기 조각난 검들이 버려져 있었다. 혈투가 벌어졌던 것이다. 아주 오랜 옛날, 이 피레네 산맥에서 목숨을 건 혈투가 벌어졌다.
'내 검은 어디에 숨겨져 있을까? 부러진 검만도 수를 헤아릴 수 없으니.'
마법사는 조각난 검들을 바라보며 자신의 부러져 버린 검들을 생각했다. 명검이라는 수많은 검들을 휘둘러 보았으나 매번 결정적인 순간에 검은 부러져 나갔다. 검으로 바위를 쳐도 바위가 깨어져 나가고 검으로 물을 내리쳐도 물이 갈라졌는데, 검으로 내리친 강퍅한 마음은 어떤 검을 사용해도 부러지고 말았다. 닫힌 마음은 무엇으로도 열 수가 없다. 사람의 마음은 세상 무엇보다 단단하다.
'대왕은 이곳에서 기사를 잃었어. 기사는 혈혈단신으로 군단에 맞서고 있었지. 그에게는 부러지지 않는 검이 있었는데 적의 수중에 자신의 검을 넘겨줄 수가 없어 부러뜨려보려고 바위에 혼신을 다해 내리쳤지만, 역시나 부러지지 않았고 오히려 바위가 박살이 나고 심지어 주위의 땅마저 갈라져 버렸지. 하지만 부러지지 않는 검으로도 기사의 목숨을 살릴 수는 없었어.'
기사를 잃은 대왕은 이곳에서 절망했다. 그리고 다시 전쟁을 준비하라는 천사의 명에 '도대체 나는 전투로만 인생을 지새우는가'라며 탄식을 내뱉었다. 부러지지 않는 기사의 검은 수많은 전설 속으로 사라졌다.
마법사는 바로 그 검을 찾기 위해 순례를 떠난 것이다. 그 검이 어딘가, 어떤 포탈로 흘러 들어가 수많은 기사들의 손에서 손으로 전해지고 있는지 알려진 바가 없다. 그러나 마법사는 알고 있다. 사람의 마음을 여는 검은 부드러우면서도 부러지지 않는 마음과 유연하면서도 함부로 꺾지 않는 뜻과 지극하면서도 섣부르지 않은 정성으로 갈고 닦아진다는 것을. 그러니 마음과 뜻과 정성이 살아있는 공간과 사람들 사이에 검이 자리하고 있을 거라는 걸 마법사는 알고, 찾고 있었다.
그러나 닫힌 마음들 사이를 아무리 뒤지고 다녀봐야 검을 찾을 수는 없었다. 세상이 온통 닫힌 마음들뿐이니 다른 세상으로 통하는 포탈을 찾지 않고서는 마음과 뜻과 정성이 살아있는 공간과 사람들을 발견할 수 없는 것이다. 마법사는 나타나지 않는 포탈을 기다리며, 찾을 수 없다면 차라리 닫힌 마음들을 열어 포탈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 생각했다. 그러나 수많은 시도에도 마법사의 검은 매번 부러져 나갔다. 단단하게 닫힌 마음 그곳에는 포탈이 자리할 수 없는 것이다. 마음과 뜻과 정성은 적의 없이 열린 마음들 사이에서만 자라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마법사는 실패했다.
부러진 검의 조각들을 바라보며 마법사가 상념에 젖어 있을 때 박살 난 밴드의 멤버 잭이 무언가를 발견한 듯 크게 외쳤다.
"마법사님, 저기 좀 보세요! 유니콘이에요!!"
유니콘, 거대한 뿔이 달린 외각수 유니콘이 길 반대편에서 저벅저벅 마법사 일행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그 위풍당당함에 압도된 마법사와 일행은 숨죽인 채로 유니콘이 바로 코 앞까지 다가설 때까지 꼼짝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저벅저벅 걸어오던 유니콘은 마침내 마법사 앞에서 멈춰 섰다. 그리고 마법사와 눈을 마주쳤다. 마법사의 눈을 한참 동안 빤히 바라보던 유니콘은 갑자기 두 다리를 높이 치켜들고는 크게 울부짖었다. 유니콘의 가슴에 기사의 명검이 박혀있었던 것이다. 붉은 피를 뚝뚝 흘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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