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의 가을] 조명에 관하여

in stimcity •  3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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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소년에 온 사람들은 좀처럼 갈 생각을 안 한다. 많은 이들이 한 번 오면 영업시간이 끝날 때까지 갈 생각을 안 한다. 저녁 먹고 2차로 온 사람도, 낮에 온 사람도, 아침부터 온 사람도 좀처럼 일어날 생각을 안 한다. 그러다 아예 스탭이 된 이도 있다.



왜 그럴까? 여기가 좋은가 보다.



뭔가 마법이라고, 왜들 한 번 오면 갈 생각을 안 하는지 모르겠다고, 우리들끼리 이런저런 추측을 해보지만 딱 떠오르는 정답은 없다. 아마도 그것에는 매우 많은 요소와 작용들이 복합적으로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총체적 합이 최적화되어 있어 그럴 것이다.



생각해 보라. 하얗게 눈부신 형광등 불빛 아래에서 마시는 와인을, 고속도로 트롯 메들리 속에서 들이키는 칵테일을, 깔끔한 연미복 차림의 숙련된 웨이터가 끓여주는 짜파게티를. 뭔가 어색하고 어울리지 않고 불편한 자리라면 아무리 친하고 좋은 사이여도 그렇게나 오랜 시간을 머무를 수 없다. 그것은 장충동 20세기소년의 공간이 가진 매우 다양한 요소들의 어우러짐, 조화가 모두의 마음을 움켜쥐고 놓아주지 않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오늘은 그중에 조명에 관한 이야기다. 공간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있어 조명은 매우 중요한 요소다. 주로 밤 시간에 영업이 이루어지는 펍은 더더욱 그렇다. 사람은 조명에 어울리는 대화를 하게 되기 때문이다. 벌건 대낮에 내밀한 얘기를 꺼내기는 쉽지 않다. 사람은 빛에 어울리는 말을 꺼내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을 인위적으로 조절하기 역시 쉽지 않다. 그건 그냥 총체적인 무엇이다.



마법사는 이 공간에 진입하며 조명을 다루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색깔과 밝기 그리고 위치와 범위. 이미 이전에 그런대로 자리를 잘 잡아 놓은 탓에 혁신적으로 바꿀 무엇은 없었지만, 문제는 최적화다. 어떤 위치에 어떤 각도로 조명을 배치할 것인가. 수도 없이 사다리와 탁자를 오르내리며 각도를 조절하고 위치에 다양한 변화를 주었다. 그건 좀 고된 작업이다. 천정에 매달린 것을 오르내리며 쳐다보는 일은 목도 아프고 무릎에도 무리가 가는 일이다. 조명이 한둘이 아니니 전반적인 밸런스를 맞추는 일도 아마츄어가 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은 일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프로와 아마츄어의 문제가 아니다. 공간을 기획하고 경험하고 운영하는 당사자 자신으로부터 나온 밝기와 느낌이 아니면 아무리 전문가가 와서 최적의 위치를 찾아 준다 해도 고유한 느낌이 살지 않는다. 그래서 그건 몇 번이고 여러 번이고 수정되고 조정되어야 하는 일상의 과업이다.



소설가 이외수는 모름지기 작가의 작업공간은 공기 입자까지도 최적화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의 부인은 소설의 분위기를 위해 배를 사서 그 안에 작업실을 만들어 준 적도 있다고 한다. 공기 입자를 다루는 일은 조명으로부터 시작된다. 북향이라 자연광이 잘 들지 않는 20세기소년의 공간은 더더욱 조명의 역할이 크다. 빛이 어떤 각도로 들어오는 가는 마음의 어떤 부위를 다루는 가와 일맥상통한다. 같은 공간도 어떤 조명을 어떤 각도로 비추는 가에 따라 분위기가 180도로 바뀌듯, 마음 역시 개인의 삶 또한 같은 문제와 사안을 어떤 각도로 비추는 가에 따라 전혀 다른 우주와 세계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을 찾아내는 데 많은 노력이 들어야 했다.

물론 가장 많은 노력이 드는 것은 깐깐한 계속읽기☞






오늘은 지하 20세기 스튜디오에서 추석극장을 시작했다. 계속읽기☞



이웃집 푸사장님은 장충동에서 여기만 행복하다고 연신 감탄스러워한다. 그 말도 지겨운데 올 때마다 반복한다. 조명 탓이라고 말하진 않았다. 그건 비법이니까. 그러나 이제는 그 역시 최적화의 일부가 되어버렸다. 커뮤니티란 그런 거란다.

저녁나절 자주 오시는 지영님이 살사동호회 친구들과 함께 방문하셨다. 물론 이들 역시 "영업 마감 하셔야 되죠?" 아쉬워하며 집에도 가지 않고 밖에서 서성였다. 신나게 살사를 한판 출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 오늘은 영화상영 때문에 조금 신을 낮췄다. 그래서 아쉬웠나 보다. 아쉬운 이들의 간신히 누르고 있는 열정을 느끼며, 아, 여기다 계속읽기☞

그렇게 이 공간의 빛이 다채로워지고 있다. 며칠 전에는 붉은 와인 빛의 Nord 키보드가 우리의 마음을 행복하게 해 주었고, 오늘은 살사를 추는 이들의 펄럭이는 옷깃이 낮은 조명을 반사시켜 신비롭게 공간을 채워주었다. 푸사장님의 연신 들이키는 하이볼 속 얼음에 갇힌 걱정과 근심, 프랑스로 떠난 20세기소년을 여전히 응원하며 의리를 지키느라 킵해주고 있는 최고가 위스키병들의 군무, 그리고 검은 눈물로 빠져나가 하얗게 되어버린 안쓰러운 마법사의 머리카락과 지단을 닮아 꿈대로 프랑스에 가게 생긴 택슨님의 빛나는 헤어스타일이 추석 첫날, 20세기소년의 밤을 패셔너블 passionable하게 장식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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