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을 다친 손흥민이 두려워하는 것은 누가 봐도 뻔하다. 그러니 수비수들은 약점을 제대로 쥔 것이다. 두려움은 사람을 지배한다. 의식적으로도 무의식적으로도 피하게 된다. 그러므로 사람을 이해하려면, 또는 적을 이기고 싶다면 사람과 상대의 두려움을 파악하면 된다. 그 방향에서 기회가 생겨날 테니까.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백승百戰百勝이란다. 그러니까 뭘 알면 되냐고 물으면, 두려움인 것이다. 나의 두려움. 너의 두려움. 그것을 알면 백전백승인 것이다. 너의 두려움은 무엇인가? 마법사의 두려움은 무엇인가? 지기知己 하고자 가만 생각해보면 그것은 '중단'인 듯하다. 마법사는 '중단'을 두려워한다.
마법사의 생에 많은 것들이 '중단'되었다. (두려움은 얼마나 에너지가 강력한가. 없던 것도 불러일으키게 되어 있다.) 사람들은 그걸 실패라고 읽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900년을 거슬러 온 마법사에게는 무엇이든 '중단' 일뿐이다. 어차피 다음 생에 계속될 텐데. 지난 생들에 시작된 것일텐데. 그러니 중단이고, '중단'은 곧 다음 생을 예고하는 것이니 짜증이 나는 것이다. 그래서 두렵다. 그 새끼들을 또봐야 되니까.
음.. 그러니까 손에 땀을 쥐고 보던 경기의 승부차기를 전기가 나가서 다음 생에나 볼 수 있게 된다면 어떤 마음이 들겠는가? 그건 짜증을 넘어 공포가 드는 것이다. 생각은 온통 '그래서 어떻게 되었을까?'에 사로잡혀 있고 그 무엇에도 집중할 수 없게 된다. 그리고 쩝쩝, 입맛을 다시며 복기하고 예측하나, 결과를 알 수 없는 상태로 림보에 갇혀 버리는 것이다. 마법사의 '중단'된 수많은 평행우주들이 림보에 갇혀 있다. 해방은 언제나 오려나.
그래서 마법사는 흑화되었다. 하얀 지혜는 '두려움'을 극복하라고 하겠지만, 그건 지 혼자 할 때 얘기고. 축구를 혼자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인생은 혼자 사는 게 아니고. 커뮤니티는 더더군다나. 어쩌다 커뮤니티의 마법사가 되었는지 모르겠다만, 덕분에 수많은 '중단'을 경험하고는 복수를 하기로 마음 먹었다. 아니 현명한 카르마 정산법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마법사는 두려움을 극복하는 게 아니라 역이용해야겠다 마음먹은 것이다. 마법사의 두려움인 '중단'을 디폴트 값,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매번 당할 수만은 없으니 선제적으로 '중단'해버림으로써 운명을 주도해야 겠다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건 해보니 재미있었다.
두려움을 가지고 노는 건 재미있다. 예를 들어 회사에서 짤리는 게 두렵다면, 그리고 그걸 지피知彼하여 상사가 나의 두려움을 조종하려 든다면, 그 두려움에 갇혀 매일매일을 공포로, 비굴로 굽실댈 게 아니라 '아 씨바 짤라, 짤라'하고 공포를 제거해버리는 것이다. 사표를 한 손에 쳐들고 고개를 빳빳이 드는 것이다. 정신 승리가 아니라 현실에서 승리하는 것이다. 물론 너는 짤리겠지. 하지만 두려움에 굴종하지는 않았다. 아니 두려움은 사라지고 도리어 무기가 되었다. 두려움은 품고 있는 자에게만 약점이니까.
사실 이게 참 어려워 보여도 막상 해보면 (두려워할 때는) 생각지 못한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때에는 정확히 알게 된다. 이 조직에서 나를 얼마나 필요로 하고 있었는지. '그래, 잘 가라. 만나서 더러웠다.' 한다면 조직의 잉여였겠지. 그러나 너가 한몫하고 있었다면 '저 새끼 또라이네.' 할지언정 함부로 자르지 못한다. 그러니까 이것은 실력으로 두려움을 제거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두려움은 상사의 권력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실력 없음, 자신 없음에 기인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게 지피지기知彼知己지.
어쨌거나 마법사는 이렇게 사고를 전환한 후로 참 많은 '중단' 카드를 선제적으로 날려 왔다. 그러니 그 시점 이후로의 '중단'은 억울할 게 없고, 아쉬울 게 없다. 다만 다음 생, 그 다음 생들로 수많은 관계와 운명이 유보되었을 뿐. 뭐 어쩌겠는가. 마법사는 어려서부터 숙제 먼저하고 노는 걸 선호해왔지만 팀 과제는 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인생의 개인 과제야 언제나 최선을 다해 최우선으로 해결하지만, 인생의 팀 과제는 나 혼자 이리 뛰고 저리 뛴다고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비록 '중단'의 카르마를 지게 되더라도, 안되는 (할 마음들이 없는) 인생의 팀 과제를 억지로 붙들고 '원망'과 '불신'의 카르마를 양산하는 것이 더 카르마 정산에 손해라는 걸 깨닫게 된 것이다.
그래서 '중단'된 것들이 우주에 하나 가득이다. 모두 정산과 마무리를 기다리고 있으니 마법사는 해탈은 글렀다. 그러나 그것들이 대부분 커뮤니티, 팀 과제이니 니들도 해탈은 글른 것이다. 마법사가 시작도 안 할 거니까. 마구 중단시켜 버릴 거니까. 그러니까 우리는 이 우주의 모두가 해탈할 때까지 '중단'된 채로 우주를 배회해 보자는 것이다. 중생이 모두 구원에 이르기까지 해탈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지장보살과 함께 우주의 마지막을 경험해보자는 말이다. 마법사는 꿈쩍도 안 해줄 거니까.
그러니 흥민아 쫄지 말고 전담마크맨 면상부터 갈기고 시작해라. 그 옛날 너의 선배 '을용타'를 본받아. (물론 요령껏 걸리지는 말고) 그래야 두려움을 두려움으로 받아칠 수 있지 않게니. 그 뒤론 '실력으로 정면승부'만 남지 않겠니. 그러니 운명이 억울한 이들은 복수를 하든, 반격을 하든, 태업을 하든, 당하고만 있지 말고 '중단'을 선언하게나. 그리고 남는 에너지로는 그럼에도 계속 '되는', 계속 '하게 되는' 소중한 너의 관심, 관계들에 쏟으면 되는 것이다. 그게 매일 석양을 찾아다니는 일이거나, 넷플릭스의 모든 시리즈를 완주하는 일이거나, 아무도 읽지 않는 글을 쓰는 일이어도, 두려움 따위에 조종당하지 않는 '현명한' 인생을 가꿔줄 테니. 너는 아쉽지 않은 생을 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두려움을 넘어 '중단'하지 않고, 계속 '하는' 이들을 만난다면 목숨을 바쳐야 할 것이다. 드디어 팀 과제를 완성할 기회가 찾아온 거니까. 이번 생에야말로 '결론'을 볼 수 있게 된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