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들이 찾아온다

in stimcity •  3 years ago  (edited)

한 주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수요일엔 이사를 했고, 그 일을 계기로 앞으로 특별한 일이 아니라면 모든 사적인 약속을 20세기 소년에서 갖기로 정했다. 새 보금자리에 익숙해지는 것과 새로운 마음으로 20세기 소년을 가게 된 것, 그리고 길게는 한 달 전부터 정해져 있던 약속부터 짧게는 하루 전 갑작스럽게 생긴 약속까지... 새 숙소에 짐을 풀기도 전에 사람을 만나느라 정신이 없던 한 주였다.

이번 주는 공교롭게도 차례로 동료들이 다녀갔는데, 노래하는 J오빠, 천피와 대학 동기 H양, 유튜브 친구들(내 동생과 H군, J군)이 요 며칠 방문의 주된 사람들이었다.


1 보컬리스트 J

오빠와는 음악적으로 이미 몇 번이나 교감한 적이 있지만, 괜스레 내키지 않아 연락을 피하거나 약속을 미루곤 했다. 일정이 맞지 않아 미뤄진 약속이 거의 두 달에 가까웠는데, 최근 그의 적극적인 연락으로 결국 20세기 소년에서 보게 되었다. 만나기 전 그는 전화로 음악 작업과 관련된 부탁을 했는데, 거절할 생각이었지만 그래도 우선 만나서 이야기해보기로 했다.

20세기 소년에 온 그와 가볍게 그와 노래를 맞춰보았는데, 경계하던 마음이 무색할 정도로 그의 노래가 좋았고, 함께 합을 맞추는 과정이 행복해 덜컥 작업을 같이하기로 말을 뱉어버렸다. 바로 그다음 날 20세기 소년에서 작업하기로 했는데, 마침 그 때에 손님도 없어 지하에서 맘껏 노래하고 피아노를 쳤다. 오빠는 노래하는 동안 빔프로젝트에 비친 자신의 그림자를 보며 춤을 췄고, 나는 영화 속 한 장면을 보듯 오빠를 바라보았다.

바로 그다음 날 작업의 결과물이 나왔는데, 그 모든 과정이 아주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흘러 오랜만에 무척이나 기쁘고 행복한 마음을 느꼈다. 생각해보니, 그것이 20세기 소년에서 내가 처음으로 내놓은 음악 결과물이라는 사실에 묘한 기분이 들었다.


2 천재 피아니스트, 싱어송라이터 H양

천피와 H양이 앨범을 낸 일이 있는데, 그때 프로듀서를 내가 맡게 되면서 더욱 우리 셋의 사이가 각별해졌다. 대학 때는 천피와 나, 천피와 H양, 나와 H양 이런 식으로 따로 친하게 지냈는데, 그 작업 후로는 셋이서 일 년에 몇 번씩은 꼭 보게 되는 것 같다. 만나서 이런저런 수다를 한참 떨다가, H양에게도 20세기 소년에 온 일과 파리에 가려고 계획하는 일들에 대해 열심히 설명했다. 이미 많은 과정을 알고 있는 천피는 가만히 듣고 있었고, H양은 신기하다는 말을 여러 번 했다.

나는 대화 중에 계속 내가 이상해 보이겠지만이라는 말을 덧붙였는데, 진짜 이상한 건 그게 아니야. 넌 단지 개별성이 강할 뿐이야라고 말해주어 오랜 상처가 씻기는 기분이었다.

손님이 있어 H양과 노래하지 못한 것이 아쉬웠지만, 다음을 기약했다. 나는 내심 그다음은 뮤직 페스티벌이 되려나라고 생각했고, 천피는 그와 별개로 다음 주부터 금요일 낮에 20세기 소년에 방문해 내게 재즈 피아노를 가르쳐주기로 했다.


3 유튜브 친구들(친동생 J양, 사진작가 H군, 공부하는 J군)

유튜브는 잠정 중단 상태지만 친구들은 꾸준히 만나고 있다. 추석 전에 만났다가 이제서야 보게 되었는데, 이들을 20세기 소년에서 보는 일이 내게는 무척이나 뜻깊게 느껴졌다. 이미 한 명씩 따로 20세기 소년에 초대해 나의 앞으로의 날들에 대해 얘기했지만, 막상 넷이 모여 지하 안쪽 테이블에 앉아 있으니 기분이 묘했다. (이 자리에 처음 앉아보았다)

서로의 근황을 나누다 농담처럼 H에게 민증 재발급받을 증명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는데, 마침 차 안에 촬영 장비가 있다며 선뜻 찍어주겠다고 했다. 간단히 찍을 줄 알았는데, 차 안에서는 여러 장비가 나왔고, 셋팅을 하고 보니 진짜 사진관에 온 것 같아 마음이 뭉클했다.

J군, 나, 친동생, 위에서 일하던 마법사님까지 갑자기 증명사진을 찍게 됐다. 내가 사랑하는 공간에 사랑하는 사람들이 와서 자신이 사랑하는 일을 열어놓는 그 과정을 바라보는 일이 어찌나 아름답고 행복하던지. 함께 레드벨벳 노래를 들으며 사진을 찍던 그 순간을 아주 오래오래 간직하고 싶었다.


사람들을 데리고 올 때마다 겁이 났다. 그것은 내 이름을 중심으로 알게 된 사람들이 나를 이해하지 못할까봐, 또 나루라는 이름을 중심으로 알게 된 사람들에게 피해가 될까 봐 하는 이유였다. 그런데, 전혀 달라 보였던 두 세계의 사람들이 서로 거리낌 없이 친구가 되고, 가까워지고, 그러면서 이곳이 서로에게 소중한 공간이 되어가는 그 과정을 바라보는 일은 정말이지...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더 많은 일들, 더 많은 아름답고 소중한 기억을 6월까지 함께 쌓아가고 싶다. 정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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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공간을 지켜야 할 이유가 생겼네요.^^마법사님이 잘 지키시고, 라라님이 파리에 새 둥지를 여시겠지만 저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저 혼자만 나루님의 연주를 듣지 못하고 떠나와서 안타까워요. 하지만 아껴두겠습니다.

저희 모두 힘껏 각자의 자리를 지키다 반갑게 뵈어요! 더욱 반가울 수 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