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모여든다

in stimcity •  3 years ago  (edited)

2021년 11월 9일 화요일

1 전주에서 시간을 보내는 동안 피터(@peterchung)님에게서 연락이 왔다. 화요일에 방문할 예정인데 혹시 그때 20세기 소년에 있냐고 물으셨다. 시간이 되면 오이(@ioioioioi)님도 함께 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미 며칠 전 라라언니와 화요일에 보기로 약속을 했던지라 그날은 아주 반가운 날이 되겠구나 싶었다.

2 레슨을 마치고 바로 달려간 20세기 소년에서 라라언니에게서 내가 자리를 비운 일주일의 이야기를 듣게 됐다. 나의 지난 일주일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그리고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도 이야기 나눴다. 언니의 눈시울이 붉어져 나도 덩달아 따라 울었다. 행복해지려 그러는 거라고 우리는 말했지만, 왠지 슬픈 마음이 들었다.

3 피터님과 오이님이 도착했다. 정말 반가웠지만 반가움보다 쑥스러운 마음이 앞섰다. 우리가 2018년부터 서로의 글을 읽고 소통하고 했다는 사실이 새삼 신기했고, 3년을 지나 이곳에서 얼굴을 마주하게 된 일 역시도 얼떨떨할 정도로 신기하게 느껴졌다. 두 사람은 모두 내 예상과는 달랐지만 무척이나 편하고 반갑고 든든했다.

4 피터님과 오이님과 바질페스토 파니니를 나눠 먹고, 라라언니가 쏘는 푸줏간을 맛있게 먹었다. 이미 배가 좀 부른 상태였는데도 너무 맛있어서 왕창 먹었다. 라라언니가 구워주는 고기는 역시 정말 맛있어. 옆자리에 앉은 피터님이 하나하나 세심하게 챙겨주셔서 그 따뜻함으로 마음도 배부른(마음부른..?) 기분이었다.

5 돌아와서는 오이님과 피터님과 잠깐 지하에 내려갔다. 피터님이 내 유튜브 채널을 꾸준히 봐오고 있었다는 사실을 몇 달 전 우연히 알게 됐는데, 그것이 부끄러운 한편 무척이나 든든한 위로가 되었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피터님에게 노드의 소리를 들려드리고 싶었다. 노드를 연결하고 건반에 손을 올렸지만, 막상 기억나는 곡이 없었다.

6 신청곡을 받겠다며 호기를 부렸다가 오이님의 꿈의 피아노곡을 맞닥뜨리게 됐다. 생각보다 어려워 몹시 당황했지만 내 나름의 최선으로 연주를 들려드렸다. 또 피터님이 좋아하신다는 김광석의 사랑이라는 이유로를 짧게 연주했다. 그동안 피터님은 빈백에 기대 스팀잇에 글을 쓰고 있었고, 오이님은 해먹에 누워 연주를 듣고 계셨다. 나루존에 새로운 손님이 찾아왔다.

7 그렇게 노는 중에 택시를 타고 부랴부랴 달려온 소수점이 지하로 내려왔다. 모두가 내게는 그렇지만, 역시 소수점은 더욱 반가웠다. 선물이라며 와인병을 내게 건네주었는데, 그것이 무척 감동스러웠다. 소수점은 가끔은 내게 단호한 말로 정신을 번쩍 들게도 하고, 그 말로 잔뜩 쫄아있는 내게 스윗한 말과 행동으로 더 큰 위로를 주기도 한다. 나는 그런 소수점이 좋아.

8 오이님과 소수점이 1층으로 올라가고, 피터님과 둘이서 대화를 나눴다. 피터님은 오늘 나를 보러 왔다며, 생각보다 밝고 건강해 보여서 좋다는 말을 여러 번이나 하셨다. 내 글이 우울해서 걱정하셨다고. 피터님은 내 사주를 확인하며 계속 나에게 이런저런 조언을 해주셨다. 나의 생활, 몸 상태, 생각, 그간의 일들을 살뜰히 물으시며 오로지 내 걱정만을 하셨는데, 나는 그것이 좀 머쓱한 한편 그게 피터님이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내가 놓치고 있을 현실적인 이야기들을 하나둘 들으며, 앞으로 나아지는 모습을 보여야지! 다짐했다.


9 대화를 마치고 1층에 올라오니 사람들이 소수점이 가져온 와인을 나눠 먹고 있었다. 젠젠-피터-마법사-택슨-오이-라라-나루 많은 사람이 있어서인지 여러 술이 나왔다. 나는 소수점과 오이님 사이에 앉아 그 둘의 술도 아주 조금씩 맛보고, 내가 좋아하는 하이볼도 세 잔이나 마셨다. 그리고 인생 첫 소맥을 피터님-오이님과 함께 먹었다. 안 그래도 취기가 돌아 잠깐 해먹에 누워있을 정도였는데, 소맥을 마시니 혹여나 취하게 될까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10 어쩌다 피자 이야기가 나왔고, 잭슨 피자를 먹어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꺼냈는데, 정신 차려보니 오이님이 잭슨 피자를 쏘기로 정해져 있었다. 다들 고기를 왕창 먹고 온 후라 많이 시키지는 않고 작은 피자 세 판을 시켜 조금씩 나눠 맛을 보았다. 그것 말고도 소수점이 쏜 육포, 아론님의 감귤, 감자튀김 등등 먹을 것이 아주 풍성했다.

11 그러게... 그 뒤로는 역시 취했던 것인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대화의 내용은 흐릿하지만 많이 웃고 떠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왜인지 갑자기 마이크를 꺼내와 소수점과 젠젠언니, 라라언니가 간단히 노래를 불렀는데, 라라언니의 에브리띵을 듣다가 울어버렸다. 언니 때문이 아니에요- 라고는 말했지만, 역시 언니 때문에 눈물이 나는 것 같았다. 기쁘기만 할 수는 없고, 기쁨에도 작은 슬픔이 묻을 수밖에 없지. 술에 취해서였나 언니의 목소리를 듣는데 작은 슬픔이 눈에 들어왔다.

12 가게를 지킬 마법사님과 택슨 오빠를 뒤로하고 다섯 명이 역까지 걸어갔다. 그 길에 우산을 놓고 온 걸 알게 됐는데, 오이님이 나때문에 두 번이나 우산을 가지러 갔던 일. 그것이 무척이나 고맙고 따뜻하게 느껴졌다. 오이님은 우리가 교통 카드를 찍고 들어가자 집까지 걸어갈 생각이라며, 배웅하러 왔다는 스윗한(죄다 스윗한 사람들밖에 없어) 말을 하셨고, 우리는 반갑고 아쉬운 마음으로 다음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13 피터님과 소수점은 먼저 온 지하철을 타고 떠났고, 방향이 같은 라라언니와 젠젠언니, 나 셋이서 3호선을 타고 교대로 향했다. 늘 있던 일이지만 전주에 다녀온 후로 귀가길의 분위기가 달라진 것을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당연하게 느껴지는 것들이 전혀 당연한 게 아니라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하게 되었다. 즐겁기만 하던 시간이 영원할 줄 알았지. 하지만 그럴 순 없고, 모두에게는 잠깐 쉬어가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을 마주하고, 비우고, 채우고 다시 또 서로에게 내어줄 공간을 만드는 거겠지.

14 어제는 미묘하게 조금씩 엇갈려 다 모이지 못하는 상황과 너무나 그리운 이름들, 아직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여러 반가운 이름까지도 함께 떠올리며 모두 다 같이 모이는 상상을 했다. 젠젠언니의 말대로 그날은 아주아주 성대한 파티가 될 거야. 그날 우리는 즐겁기만 하다가, 너무나 즐거워서, 단지 그 이유로 와락 눈물을 쏟게 될 것이다.

15 나루님은 스팀 시티에 각별한 사람이잖아요라는 말을 나는 꽤 많은 이들에게 들었다. 그리고 그 뒤에는 스팀시티 응원가 이야기가 종종 나오곤 했다. 라라언니와 마법사님도 그것이 엄청난 위로가 되었다고 했지만, 제작 후 수치스러움에 한 번도 듣지 못했던 그 노래가 이곳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고작 그런 것이 왜...?

그런데 요즘은 그 가사가 계속 떠오른다. 그래서 글쓰기를 마친 지금 스팀시티 응원가를 처음으로 다시 들어봤다. 이거 넘 아름다운데?

지구는 둥그니까 자꾸 걸어 나가면 온 세상 스티미언 다 만나고 오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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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보는 그림과 노래..으히히~

우앗! 찹촙님도 이 곡을 기억하고 계셨어요?

그럼뇨, 나루님한데 소정의 상금도 털어가서 더욱 기억이.ㅋㅋ

나중에 놀러오세요! 라고 너무너무 말하고 싶지만 계신 곳과 멀겠죠?

어 이노래.... 그때 마켓 참가해서 저도 기억 나는데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