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

in stimcity •  3 years ago 

릴에서 파리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라라 님이 내게 말했다.

"내가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다면, 나 역시 기댈만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 말의 여운은 꽤 오래 갔다. 그리고 계속 질문이 되어 가슴에 꽂혔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기댈만한 사람인가. 믿음직한가. 듬직한가.

질문은 금세 답을 찾았다. 나는 불안하다. 견고하지 못하다. 하여 믿음직스럽지 않다.

파리에서의 어느 저녁, 나는 확인하듯 라라 님에게 물었다.

"20세기의 여름에 제 모습은 보기에 어땠나요?"

그는 말했다.

"아슬아슬했죠."

정확히 맞는 말이다. 그때 나는 불안불안하게 운영되던 '20세기 소년'을 작가 커뮤니티로 거듭나게 할 새로운 모델을 찾았다는 안도감과 이런 커뮤니티가 지속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불안감 사이에서 시소를 타고 있었고, 내 몸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흡연과 음주를 했다. 라라 님의 관찰 그대로, 나는 아슬아슬했다. 그런 심상과 태도로 과연 저 자가, 위즈덤 러너에 호기롭게 지원한 저 이가, 과연 스팀시티의 프로젝트 가운데 무엇 하나라도 이룰 수 있을까. 의심이 들 수밖에 없는 모습이었다.

그래서 내가 20세기의 가을로 접어들무렵 불현듯 프랑스로 왔을 때, 프랑스에서 스팀시티의 새로운 집을 찾으라는 미션을 받아 안은 선발대가 아니라 유배된 것인지도 모른다는 자책에 시달렸던 것이다. 동지들의 믿음을 얻지 못한 죄로 유배형!

한국에 들어와 자가격리 중인 지금도 자주 나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배신하는 상태로 접어든다. 여전히 불안하다. 견고하지 못하다. 믿음직스럽지 않다. 그러나 이런 상태의 나를 더이상 참고 견디고 싶지도 않다.

오늘 한동안 잡풀처럼 무성하게 자란 수염을 정리했다. 가만히 있어도 왠지 구역질을 부르는 이 땅에 돌아와서 처음으로 밥 먹는 걸 뺀 의지적 행동을 했다. 그리고 프랑스 비자와 관련한 정보들을 취합하고 있다. 비자가 나오는대로 아직 덜 끝낸 프로젝트를 완수하러 다시 비행기를 탈 것이다.

마음만은 격리가 끝난 직후 달려가고 싶지만, 나는 라라 님과 합의한 대로 20세기 소년에는 가지 않을 것이다. 거기, 사랑하는 동지들이 있지만 20세기 소년에 가는 건 관성에 스스로 발목 잡히는 함정이 될 수 있거니와, 임무가 덜 끝난 상태이기 때문이다. 나는 믿음직한 사람이 되고 싶다.

한국 입국 직전 나는 라라 님에게 말했다.

"지금, 내가 찾아야할 것은 리더십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는 말했다.

"정말 기가 막히게 타이밍을 잘 맞추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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