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심

in stimcity •  3 years ago  (edited)

다같이 식사 메뉴를 고를 때 내가 좀처럼 타협하지 못하는 음식이 있다. 못 먹는, 아니 안 먹는 음식이다. 나는 치즈와 햄버거를 안 먹는다. 약간 젊은 세대에겐 익숙한 음식이지만 나로선 안 먹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미군부대에서 2년 3개월 간 복무한 나는 약 800일 가량 거의 매일 치즈와 햄버거를 먹어야 했다. 정확히 말해 치즈 들어간 햄버거. 게다가 크기도 어마무시하게 커서 어쨌든 위장을 채워야 한다는 강박에 내 얼굴만한 햄버거를 꾸역꾸역 입속으로 밀어넣었으니, 군 시절이 아름다웠다고 추억하지 않는 이상, 치즈와 햄버거는 내 미각적 기억에는 그저 군대 짬밥으로 새겨져 있었던 것이다.

군대시절 'ARMY'라고 새겨진 체육복을 입고 매일 아침 구보를 했다. 제대하고 나니 그 옷이 무슨 유행이 되어 젊은이들이 입고 다니는 걸 보고 실소를 머금은 적이 있었다. 하기사 깔깔이도 패션이 될 수있는 것이니 뭔들 이해하는 게 힘들겠는가.

요즘은 치즈를 라면에 넣고 떡볶기에도 넣고, 심지어 볶음밥에도 넣어 먹는다. 사람들의 미식 취향이야 감놔라 배놔라 할 게 못되고, 다만 내 눈에 그런 음식은 제대 이후에도 깔깔이를 입는 느낌이 든다. 별 거 가지고도 다 자존심이 상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존심은 늘 기억과 연관되어 있는 감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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