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단보도 위에 그린 행복
출처 : 노자규의 .. |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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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단보도에 그려진 행복
푸른 하늘에 괜스레
게으른 구름 한 점이
한가로이 떠다니고 있을 때
도로가에서는
겨울바람에 쫓겨가는 가을처럼
차들은 다들 바쁜 몸짓으로
뛰어가고 있었습니다
횡단보도 앞에는
많은 사람들이 신호가 바뀌어
멈춰 선 차들 사이로
저마다 가야 할 이유를 표지판 삼아
건너가고 있었습니다
어느덧
파란 횡단보도 신호가
점점 빨간불로 바뀌어갈 무렵
횡단보도 중간쯤에서
할머니 보행기가
실은 폐지에다
늘어나는 한숨과 주름까지 매달아서 인지
한쪽 바퀴가 튕겨져 나와서는
동그라미 원을 그리다가
저 멀리 까지 굴러가서는
인도로 발을 올리려는 한 아이의
발뒤꿈치에서 멈쳐서고 말았습니다
낮에 떠는 달처럼 당황한 할머니는
바퀴가
빠져버린 보행기를 움직여 보려 하지만
실은 폐지만 넘어지려 할 뿐
보행기는 꿈쩍도 하질 않습니다
성질 급한 차량들은 라이트를 깜빡거리며
경적을 울려되기 시작하였고요
사람들은 멀뚱 거리며 머뭇거리기만 할 뿐
자기 일이
바쁘다는 이유만으로 외면하고 있을 때
아이는 그 바퀴를 주어 들더니
할머니가 있는 곳으로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얘야 위험해” 라는
말들과 걱정들만 허공에 맴돌 뿐
누구 하나
나서는 이는 없었답니다
할머니 앞에 멈춰 선 아이는
유모차에 빠진 바퀴를 끼워넣어려구
애를 쓰고 있었지만
쉽게 들어가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니들이 도로 전세 냈냐”며
지나는 차들마다
찌푸린 인상들이 보태어져가고 있을 때
구경만 하는 사람들이 몰려와
아이와 할머니를
둘러싼 인간띠가 형성되었습니다
어느새
나타난 경찰관 아저씨도
지나는 차량들을 통제하고 있었고요
이때
당황해하는 아이를 보며
한 청년이
보행기를 살짝 들어주면서 말을 건넵니다
“괜찮으니까
천천히 다시 해보렴... “
이마에 흐른 땀을 닦고 있던 아이는
그 말에 힘을 얻어서인지
보행기 바퀴를
제자리에 끼어넣고 있었습니다
작은 못들이 박힌
딱딱한 나무의자가 되어
눈물만 방울방울 세고 계시던 할머니는
아이가 끼워준 보행기를 매만지더니
마저 흘린 눈물로 아이의 손을
꼭 잡아주었습니다
사람들은
수고했다는 감사의 말을
서로에게 건네며
멀어져 갔고 있을 때
아이는
할머니가 골목 어귀에 들어설 때까지
뒤에서 밀어주고 있었습니다
날숨 하나 내쉬며 들숨으로 버티며
간신히 건너온 할머니는
보행기를 멈춰
고맙다는 인사를 하려 했지만
아이는 벌써 횡단보도
건너편에서 할머니에게
해맑게 웃어 보이며
“할머니 건강하세요”라며
손을 흔들고 있었습니다
당신이
오늘 베푼 선행이
내일이면
사람들에게 잊혀질 수 있지만
이 세상은
잊혀진 친절과 사랑의 행동들로
대부분 채워져 있다고
버스 지붕 위에 얹혀가는 노을은
말하고 있었습니다
펴냄/노자규의 골목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