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생각에 잠긴다.
물은 사라져 간다.
케이프타운의 제로데이가 한국에 상륙하는 시점은 생각보다 멀지 않은 것 같다.
멕시코에선 굳이 건조한 땅에서 사료를 생산하는 농장의 물을 거대 맥주 기업이 앗아간다.
햄버거 하나는 1540리터의 물을 쓴다.
이 세상은 내가 오래살 만한 가치가 있는가.
나는 무엇을 하기 위해 돈을 벌며 삶을 유지하는가.
나는 무엇을 만들고 싶은가.
나의 문제의식은 무엇이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이 다음 생에게 나는 무엇을 남기고 싶은가.
당최 유능함이란 무엇인가.
누군가에게 인기가 있고,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고, 돈이 있다는 것.
이를 통해서 자신의 삶을 영위할 때 자신은 무엇을 남기고 있는가.
결국 이 삶을 살고, 이 세상을 이해하고, 다음 생에게 세상을 넘겨줄 때에 가져야하는 원숙함은 무엇인가.
원숙하다. 원숙함이 필요한 일이다. 시간이 쌓여야만 생기는 무엇인가다. 그리고 그 쌓인 것이 언제가 유효하다.
인간의 삶에서 발전이라는 것이 적용되지 않는 어떠한 분야이다.
그 원숙함은 아마도 공동체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공동체를 유지하는 경험, 공동체 속에서 있었던 일을 조율하는 능력.
피폐해져 가는 삶은 각자가 찢어져 사는 개인으로서의 삶을 살기 때문이며,
그로 인해 개인이 혼자 가져야하는 것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모든 자산은 점차 중복되어 각자가 가져야 하는 것으로 변하고 있으며
그 중복되는 낭비는 인류를 망하는 곳으로 이끈다.
같이 살아남는다.
같이 살 수 있는 방안을 잘 알고, 잘 조율하는 원숙함을 꿈꾼다.
그 원숙함이 내가 이 홀로 살 수 없는 인간으로서 가질 수 있는 마지막 힘이며,
같이 사는 삶 속에 주는 최대한의 가치다.
모든 것이 너무 청년과 같다.
이리저리 부딪히며 제대로 살아남지 못한다.
이래서는 되지 않는다.
살아 남아야 한다.
상처를 안고 아물게 하며 남은 흉터를 쥐고 다음 단계로 움직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