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2000년대 초 어느 여름방학.
어느 초등학생 저학년 남아.
소위 말하는 보통의 가정에서 자라는 보통의 아이,
보통의 옷을 입히고 보통의 것을 먹이고 보통의 생각을 하는 이 작은 어린아이에게 이 세상은 그저 보통일 뿐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 아이에게는 보통의 아이에겐 없을, 선천적으로 가지고 있는 '내성'이 있었다.
그것이 내성인지 뭔지,
내성으로서 발현되기 전까지는 몰랐겠지만 말이다.
이 작은 아이가 품은 내성은 그 작은 머리로 생각한 말을 입 밖으로 내뱉을 때의 자기 확신, 그 말의 확신을 누군가가 깨부수는 것에 대한 내성이었다.
하지만 이 능력을 그 인간 고유의 내성으로 발현하는 데에는 고통이 따랐다.
보통의 인간은 그 사람이 내뱉은 말의 확신을 타인에게 공격당하게 되면 자아가 파괴되고 자존감을 강제로 박탈당하며 의기소침해져 일상이 점점 힘들어진다.
이 과정들을 거치며 그 내성이 조금씩 생기는 것이다.
여름 방학이었다.
어느 보통의 가정과 같이 가족 여행을 갔다.
엄마, 아빠, 그리고 형.
해남의 땅끝마을과, 차를 실은 배, 보길도.
이 어린아이가 성인이 되어서도 다시는 없을 이때의 감정, 가족의 냄새, 가족의 따뜻함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던
정말 소중하고 행복한 시간들이었다.
"저는 이번 여름 방학중 가장 재미있었던 일은 자동차를 타고 해남에 있는 땅끝마을로 놀러 간 것과 거기서 가까운 완도에 가서 자동차를 실은 큰 배를 타고 보길도로 가족여행을 갔다 온 것입니다."
이 짧은 한 문장을 발표하기 위해 공책에 두 번 세 번 적으며 연습했다.
이 짧은 한 문장에 그 아이는 두 번 공격당했다.
"차도 아니고 자동차래 푸하하"
"해남 아니고 남해 아니야? 왜 반대로 말해? 바보 아니야?"
이 작은 아이는 자신이 직접 경험한 내용과 배운 단어 하나하나에 확신을 담아 말로 내뱉었지만,
다른 아이들의, 그들만의 확신이 담긴 공격을 견디지 못했다.
준비 열심히 했는데,
내가 탄 거 자동차 맞는데...
내가 간 곳 해남 맞는데...
억장이 무너졌다.
그래도 선생님이 잘 말씀해주셨다.
"얘들아, 우리나라 남해에 전라남도 해남이라는 곳이 있단다. 거기에 우리나라의 끝인 땅끝마을도 있어."
이 작은 아이의 말이 맞았다.
차도 맞다.
자동차도 맞다.
남해도 맞다.
해남도 맞다.
틀리지 않았다.
그 아이들도 틀린 말이 아닌 맞는 말을 했다.
하지만 그 아이들은 잘못했다.
자신들과는 다른 말을 하는 한 아이를 틀렸다고 놀렸다.
그 어린 자아가 공격당해 무너지고 자존감을 박탈당하는 고통 속에서 이 아이의 첫 내성과 능력이 생겼다.
틀리지 않았다.
그러므로 공격이 통하지 않는다.
고통받을 필요도 없다.
이때부터 아프지 않았다.
틀렸다고 말하는 타인의 잘못된 말들.
거기서 틀림이 아닌 다름을 찾아내는 능력,
그 특별한 능력을 일찍이 꽃 피우고 있었다.
특별함은 다른 곳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재능도 아니다.
깨달음이다.
틀린 것은 바로잡아 마땅하지만,
다른 것을 틀렸다고 하는 것이 가장 잘못된 것임은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