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작품은 개봉전부터 기다리는 마음을 설레게한다. 그의 처녀작 '미행'부터 '덩케르크'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작품을 찾아서 보았는데 작품마다 다른 이들은 상상도 하지 못한 놀란 감독만의 세계가 있어서 필자도 놀란의 광팬이 되고 말았다. 놀란의 작품은 여러 장르에 걸쳐 다양하다. 전쟁영화, SF물, 히어로물... 장르를 가리지 않고 작품을 만들지만 어느 작품이나 놀란만의 색깔이 있다. 심지어 DC 코믹스 영화(배트맨 시리즈)도 다른 상투적인 히어로물과는 달리 그만의 독특한 세계관이 투영되어 있어서 매우 흥미로웠다.
이와 같은 놀란 감독에 대한 평가는 영화 TENET이 개봉되기 전부터 영화계를 뜨겁게 달구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개봉 일자가 연기되면서 더욱더 많은 기대가 일었던 것 같다. 코로나가 재확산되는 와중에서도 이 놀란의 신작에 대한 기대는 결국 필자를 영화관으로 이끌었다. 필자를 포함한 총 6명의 관객들은 각기 다른 감상을 했을 터인데...
TENET은 타임슬립 영화다. 현재와 미래 또 과거가 서로 영향을 주면서 갈등이 일어나는 전형적인 타임슬립 구조다. 엔트로피를 줄여 시간을 되돌린다는 발상은 언뜻 신선해보일지 모르지만 약간의 물리학적인 상식만이라도 가지고 있는 영화팬들이 본다면 글쎄...할만한 억지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TENET은 타임슬립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소위 '할아버지의 역설'을 전혀 벗어나지 못한채 다른 타임슬립 영화와 마찬가지로 뺑뺑 돌기만 하다가 끝나버린다. 영화 '인터스텔라'에서도 쿠퍼가 지구를 떠나기 전 발견하는 이상한 신호가 사실 미래의 쿠퍼가 보낸 것이라는 데에 타임슬립의 플롯을 약간 따르기는 하지만 전체적인 흐름이 되지는 않기 때문에 크게 거슬리지는 않는데 TENET은 영화 전체의 시작과 끝이 타임슬립이기 때문에 상영시간내내 눈알이 뱅뱅 돌 정도로 헛갈리게 만든다.
타임슬립 영화의 한계로 인한 논리적 모순이 영화 곳곳에서 발견되지만 그보다도 필자를 더 불편하게 만든 것은 ... 그래서 뭐?... 라는 의문이다. 캐스팅도 배우들의 연기도 좀 아쉽다. 세이토역의 케네스 브래나만이 베테랑 배우의 몸값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주연인 존 데이비드 워싱턴은 주연으로서 감당해야하는 무게감에 짓눌린 느낌이다. 아버지만한 아들은 없는 건가... 덴젤 워싱턴 정도는 아니라도 놀란 감독이 주연으로 캐스팅했을 정도면 뭔가 있을 법한데 말이다. 주연은 작위적이지 않은 카리스마가 필요한데 해리포터 1편 '마법사의 돌'에서의 어린 다니엘 래드클리프보다 무게감이 적었다. 캐스팅의 실패인지 연출의 실패인지는 존 데이비드 워싱턴의 다른 작품을 보아야 가능한 평가이기는 하지만...
놀란 감독이 뭔가 대단한 걸 보여주려고 하다가 도저히 감당을 못하고 빅 스케일의 액션씬으로만 화면을 채우고 만듯한... 다수의 명작을 만든 거장이 아니라 초보 감독의 처녀작을 보는 듯하여 매우 실망스럽다. TENET은 놀란의 watermark는 찾아볼 수 없는 그저 그런 영화로 기억될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TENET을 놀란 감독의 영화로 인정하고 싶지 않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