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
II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 황동규, '즐거운 편지'
빤한 듯한데 빤하지 않은, 연애시로서 이 시의 매력은 어디에 있을까? 다시 잘 보면, 비밀은 '해가 자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이라는데 있다.
내 사랑은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하다는 것. 그러나 그것은 얼마나 위대한 선언인가. 매일같이 변함없이 일어나서 사소해 보일 뿐,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굉장한 일이 또 있을까?
(......)
자칫 통속으로 흐를 수 있는 시의 표정을 바꾸어 놓은 것이 바로 2연의 존재다. (......)
이 시의 화자는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정도를 넘어 그 사랑을 아예 기다림으로 바꾸었기 때문이라고. 다시 말해 사랑과 기다림을 맞바꾸었노라고. 당신을 너무 사랑해서 사랑 대신 기다림을 택했노라고. 내가 만일 사랑을 택했다면 그 사랑이 이루어지지 못할 경우 더 이상 기다리지 않을 텐데 나는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렸으니 영원히 사랑할 수밖에 없노라고.
- 정재찬, <시를 잊은 그대에게> 중
이런 의미가 담겨있구나 싶으면서, 시를 이렇게 배웠더라면 좋았을텐데라는 생각이 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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