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이잉. 지이잉.
휴대폰의 진동이 울리기 시작한다.
그 진동소리가 어딘가로 새지 않게, 공기의 미세한 떨림도 용납하지 못하도록 휴대폰을 재빨리 움켜쥔다.
그리고는 나 혼자 독차지해버린 안방으로 들어온다.
이것이 남편에 대한 나름대로의 배려다.
마약을 받아내기 위해 순결을 이리저리 흩뿌리고 다니는 여자.
그런 부인을 둔 남자는 상상하는 것 그 이상으로 고통스러울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이 자살하지 않고, 살아 숨쉬기 위한 나만의 방법이다.
아이를 잃고나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아이의 얼굴이 내 머릿속에서 맴돌고 있을때, 나는 죽음이라는 것이 인간에게 주어진 얼마나 큰 안식이자 선물인지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의지대로 되지도 않고, 휴식조차 갖지 않는 이 의식의 흐름을 멈출수만 있다면, 그리하여 아이를 머릿속에서 지울수만 있다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을것 같았다.
'그 아이는 처음부터 없는 아이였다'
라고 나 자신에게 최면을 걸어보아도, 허전한 배와 한결 가벼운 다리는 나의 몸에 분명히 무언가가 자리잡고 있었다는 것을 일깨워 주었다.
그리고, 그 깨우침을 통해 의식은 다시 원래의 방향을 향해갔다. 머릿속을 게워내기 위해 혼자 집 밖을 나와 정처없이 떠돌아 다녔고, 손도 대본적 없던 온갖 쾌락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로 안락해보이는 술집이 보이면 문을 두드리고, 그 곳에 들어가 앉아, 잔이 비기 무섭게 술을 퍼 마셨다. 그렇게 미친년처럼 몇날몇일을.
그러던 도중 누군가 나에게 칵테일 한잔을 건넸다. 마흔 살 쯤 되어보이는 술집사장이었다.
그 남자는 칵테일을 받아들자마자 들이켜버린 나에게 왜 계속 혼자서 오고 있는 것인지, 그 독한 술들을 어째서 그토록 마시고 있는건지 물어왔다. 초췌한 20대의 주부가 매일 술을 마시러 오는 것에 의문을 품은 듯 했다.
하지만 그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나는 묵묵히 술 잔에 술을 채웠다.
그 남자는 대답없는 나를 한참 지켜보더니 같은 종류의 칵테일을 한잔 더 건넸다. 그 때도 나는 그것을 받아들자마자 입 속으로 털어넣었다.
그러자 갑자기 내가 그토록 찾던 느낌이 나를 엄습해왔다. 공허함.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 무(無)의 상태.
의식이 끊기고, 이 후 내가 가지고 있던 몇 가지 기억은
중력조차 느껴지지 않던 몸의 무감각.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푹신한 침대. 그리고 내 가슴위에서 들리는 어떤 남자의 숨소리. 그리고 오랜만에 맛보는 의식의 편안함이었다.
그 때 만큼은 아기에 대한 생각이 어딘가로 자취를 감추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