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벳 여행기 (1)

in tibet •  6 years ago  (edited)

중국 티벳 자치구의 평균 고도는 4800M이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에베레스트 산이 있는 히말라야 산맥을 품은 티벳에서 마주치는 풍경은 여타 여행지와는 다를 수 밖에 없다. 참고로 서울의 평균 고도는 38M. 티벳의 수도인 라싸 공항에 착륙하기 10분 전 비행기 창문에 비친 풍경은 공항 주변의 흔한 논밭이나 고속도로가 아닌 끝없이 펼쳐지는 산맥과 물줄기, 그리고 구름이었다. 비행기가 이륙하면 당연히 구름 위를 지나가는데, 티벳은 착륙을 할 때에도 아직 구름 위에 올라와 있는 느낌이었다. 구름은 이 도시 아래에 있었다. 

(라싸 공항에 도착하기 전 비행기에서 찍은 사진) 

공항 출입문 밖에서 나를 맞이한 얼굴은 여행 가이드가 아니라 중국 역대 수령의 얼굴이 인쇄된 거대한 간판이었다. 여기저기 꽂힌 빨간 인민기, 공항 건물에서 가장 눈에 잘 띄는 POLICE 간판은 내가 상해나 북경에 놀러온 게 아니란 걸 일깨워주었다. 상해나 북경은 공항에서 내리는 사람들의 눈에 가장 잘 띄는 자리에 광고가 보였을 것이다. 중국 수령의 사진, 인민기와 POLICE 간판은 중국 당국이 티벳 사람들과 관광객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던지는 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공항에서 내리자마자 보이는 중국 지도자들의 사진) 

가이드를 만나 함께 여행 온 친구들과 라싸 공항 앞에서 인증샷을 찍고 관광버스에 탔는데 손끝이 미묘하게 찌릿했다.  손저림에서 시작한 고산증은 티벳을 여행하는 내내 나의 몸이나 마음에 영향을 미쳤다. 기분 좋은 여행의 필수 요소는 음식도, 잠자리도 아니었다. 산소가 부족하다면 나머지는 모두 부차적이었다. 미세먼지 때문에 숨을 못 쉰다는 말은 비유지만, 산소가 부족하면 정말 내 몸이 이상한 신호를 보내기 시작한다. 손 마디 끝이 두툼하게 부풀어 오르면서 저린다. 몸은 다음날 몸살이 날 것처럼 무겁고 하품이 끝없이 나온다. 그 와중에 피가 점점 빠르게 돌기 시작하면서 화장실을 다녀온 이후에도 계속 요의가 느껴져서 신경쓰인다. 나는 그래도 비교적 약한 증세를 보였지만, 동행한 분 중엔 편두통이 심해 달리는 차 안에서 산소를 흡입하기도 했었다. 

(관광버스 안에 놓인 2개의 산소통) 

더욱 심각한 건 고산 지대에 몸이 적응하기 전에 머리를 감으면 급격하게 체온이 낮아져 폐수종에서 심하면 뇌사가 올 수도 있다며 우리의 가이드는 처음 3일 간 씻지 말 것을 당부했다. 말은 당부였지만 사실상 씻는 걸 금지했기 때문에 나는 티벳 행 기간 동안 툭하면 손이 저리고, 끝없이 오줌이 마려운 몸살난 거지 꼴을 면치 못했다. 그나마 한랭 건조한 기후 덕에 땀이라도 많이 안 나 냄새라도 안 난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그러던 와중에 Lonely Planet 티벳 가이드 북을 넘겨보다 티벳 현지인들에 대한 재밌는 정보를 발견했다. 티벳인이 고산 지대에 살기 시작한 건 3천년 전부터인데, 현지인들은 고산 지대에 살기 적합하게끔  DNA가 진화했다는 내용이었다. 이러한 티벳인의 케이스는 인간의 DNA가 가장 빨리 진화한 경우라고도 덧붙였다. 매우 흥미로웠지만 나는 티벳인의 우월한 유전자가 없어 우울하고, 지저분한 다른 나라에서 건너온 호모 사피엔스일 뿐이였다. 우리나라도 지금처럼 쭉 앞으로 3천년간 미세 먼지가 한반도를 뒤덮는다면 티벳인들보다 더 빠르게 우리의 후손들에게 진화한 DNA를 물려줄지도 모른다. 

(Lonely Planet Tibet 'Good Genes')

티벳의 특수한 고산지대에 맞게 진화한 건 사람뿐만이 아니었다. 오리지널 블랙 야크는 한국 아울렛 매장에 있는 게 아니라 티벳에 있었다. 야생에 사는 순종 야크는 소의 2배 정도로 크고, 소보다 폐가 한 개 더 붙어있다고 했다. 그러니까 야크는 고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그들이 살기에 더 적합한 환경이 되어 몸집이 커졌다. 티벳의 들판에서 쉽게 보이는 흰색 털이 섞인 야크는 개량 품종이라고 했다. 블랙 야크는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에서 서식하기 때문에 찻길이 놓인 곳에선 거의 볼 수 없었다. 여행을 하면서 딱 한번 블랙 야크를 본 것 같은 확신이 들었는데 검은 사자가 시야에서 스쳐지나갔다. 들판은 새파랗고, 샛노란 알 수 없는 야생화들이 점점이 피어있었다. 이끼처럼 자라난 들풀과 고사리과 식물들의 천국이었다. 야크, 소, 양떼와 염소 무리를 보며 신기해하는 나는 이 엄청나고도 낯선 생태계 앞에서 몹쓸 정도로 무지했다. 비실비실한 몸 상태, 압도적인 대자연 앞에서 드러난 무지는 자연스럽게 무력함과 두려움을 낳았다. 

(길에서 쉽게 마주치는 개량 품종한 야크 무리)

(이렇게 치장한 야크를 사진 찍으려면 돈을 내야 한다.) 

(찻길 위를 함께 달리는 말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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