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하는 느낌 없이 그저 웃는 시간

in traveling •  6 years ago 

8월 29일 몽골 도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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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 안에서 있었던 일이다.

"비행 중에 데이터 켜고 멜론 들으면 데이터 많이 나가?"

이처럼 순수한 질문을 던진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이지은(해외여행 처음인 애). 덕분에 벙쪘다. 더 부끄러운 건 다들 데이터 쓰고 있는데 나만 몰랐던 건 아닌지 싶었다는 것. 짧은 순간이었지만 멍했다. 정신 차리고 내 옆 자석에 앉은 외국인 핸드폰을 봤다. 비행기 모드. 다행이야. 근데 이걸 보고 다행이라고 생각하다니 당황스럽네. 지은이 뒤통수를 봤다. "쟤 뭐야?"

지은이는 옆에 앉은 사람이 음악을 너무 크게 듣고 있어서 자신도 들어도 되는지 알았다고 했다. 이렇게 웃픈 일들은 비행기 타기 전부터 있었다. 위탁 수화물로 짐을 보내면 돈 내는 줄 알고 기내로 들고 간 것부터가 시작. 여기서 나도 당황스러웠던 건 주영이가 한 말이다. "그럼 다혜가 위탁으로 보냈겠어?" 가슴 한쪽이 아프다.

다시 얘기를 이어가면. 지은이가 자동출입국 심사할 때 사람 많은 곳에 줄을 섰고 직원분이 '선생님, 선생님'을 계속 부르다가 '선생님, 사람 없는데 가시라고요'라는 말에 머쓱해했다. 선생님이란 말은 들렸지만 자기한테 하는 말인지 몰랐다는 것. 사람 없는 곳은 안 되는 줄 알았다고 한다. 짐을 검사하다 엄청 큰 가그린이 나왔다. 가그린을 뺏겼다. 직원분이 액체류를 물어봤다고 했는데 당당하게 없다고 했다가 가그린을 보고 한 번 더 머쓱했다고 했다. 있는 건 알았지만 문제 될 거란 생각은 못했다는데, 이게 왜 이렇게 웃긴 걸까? 작은 것도 아니고 엄청 큰 가그린을 집으로 보낼지 버릴지 여쭤보는데 너무 웃기다. 우리가 봐도 큰 저 가그린이 지은이에게는 몇 배로 더 크게 보였겠지? 그 사이에 많은 생각도 했을 거고. 이게 다가 아니다. 자동 출국심사에서 검지 지문을 찍어야 되는데 엄지를 찍으며 문이 열리지 않아 당황하는 모습, 원래 좁은 비행기 안이 지은이의 캐리어와 백팩으로 더 좁아진 상황까지. 창피하다는 지은이 말에 주영이랑 나는 하루 종일 웃었다. 나도 인도 여행했을 때 바셀린 빼기고 계속 어리둥절했었는데.

벌써부터 웃긴데 앞으론 얼마나 많은 에피소드가 생길까. 우린 개그맨보다 더 웃긴 친구와 함께 여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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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게 여행하는 기분이 아니다. 비행기 타는 순간까지도. 시간이 너무 빠르게 지나가서 그런가. 어제 인천지역에 재난 경보가 울린 만큼 비가 많이 왔다. 별보기 위해 가는 여행인데. 몽골에도 비가 온다니. 도착하기도 전부터 실망스럽다. 비싼 돈을 들여 어중간한 여행을 하고 올까 봐. 다 같이 시간 맞춰서 여행하기란 쉬운 일이 아닌데. 다행히 우리가 출발할 땐 비가 오진 않았다. 몽골에 도착하니 인천엔 엄청난 비가 쏟아졌다고 했다. 어쩌면 이번 여행에 운이 따라줄지도.

몽골은 소매치기도 많고 사기도 많다고 한다. 공항 앞에서 택시 탈거냐고 묻는 기사님들이 많은데 원래 비용보다 5배는 더 부른다. 처음에 가격을 흥정해도 도착하면 말을 달리 하는 사람도 많다 하니 조심해야 한다. 공항에서 택시를 예약하는 서비스도 있지만 우린 좀 더 안전하게 가기 위해 여행사에서 픽업 서비스를 요청했다. 짐을 찾고 밖으로 나가니 '송다혜' 판넬을 들고 있는 기사님이 보였다. 누가 봐도 우리 기사님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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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에 도착하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이상하게 우산 쓰는 사람은 없다. 비가 오든 말든 상관하지 않는 사람처럼 걷고 있었다. 기사님께 여쭤보니 몽골은 우산 쓰는 사람이 없다고 한다. 공기가 깨끗하기 때문. 더불어 눈이 좋아 안경 쓴 사람도 없다고 하셨는데 그 말이 끝나자마자 안경 쓰고 자전거 타는 몽골인이 보였다. 그걸 놓칠 일없는 지은이는 "저기 있어요"라고 했다. 기사님은 떨리는 목소리로 비가 와서 고글 쓴 거라고 했다. 우린 그 말에 웃었고 기사님은 아니라고 했다. 저 사람이 안경을 쓴 것인지 아닌지보다 몽골인은 안경 쓰지 않는다는 말이 끝나자마자 안경 쓴 사람을 발견한 지은가 웃겼다.

우린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조용히 밖을 구경하기도 했다. 조용해질 때마다 지은이가 어떤 말을 했고 조용했던 차 안은 더 조용해졌다. 지은이가 말하면 왜 정적이 되는 걸까. 반응 없는 우리의 무심함. 머리를 긁적거리는 지은이 뒤태가 너무 웃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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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 막혔다. 보통 30분이면 도착하는데 한 시간 반 정도 걸렸다. 숙소에 도착하니 벌써 저녁. 몽골은 택시도 별로 없고 비싸게 받는 사람이 많다. 기사님이 호텔에 짐을 내려놓고 국영백화점까지 태워다 주시기로 했다. 너무 감사하다. 우린 몽골에서 제일 유명한 칭기스칸 호텔을 예약했다. 엄청 크고 깨끗하고 화장실도 2개나 있다. 근데 당황스러웠던 건 바로 옆방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 픽업해준 기사님께 이 상황을 말해 프런트에 여쭤보니, 옆 방에 사람이 없으니 같이 쓰라고 하셨다. 대박이다. 호텔 방을 2개나 쓸 수 있다니. 하지만 우리가 그 방을 닫아서 자동으로 잠겼다. 침대 하나에 3명이 함께 자야 하는 상황이 왔다. 뭔가 받았는데 우리가 바보라서 뺏긴 기분 뭐지.

국영백화점 1층에서 환전을 하고 지은이와 주영이는 기사님이 가지고 있는 유심을 샀다. 많은 도움을 주신 기사님께 식사를 대접했다. 기사님이 알고 있는 곳으로 갔는데 고기가 너무 찔겼다. 밥 먹고 싶다.

그동안 했던 여행과 다르다. 숙소에 도착하면 짐을 대충 풀고 괜찮은 카페를 찾아 여행 일정을 그제야 적었는데. 여기선 다리가 아닌 차로 이동했다. 몽골은 땅도 넓고 이동수단이 필수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여행사를 예약했다. 다 짜인 스케줄이 기대도 되지만 동시에 아쉽기도 하다. 차로 거리를 보는 것도 좋지만 시내를 걷고 싶고, 걷다가 사기도 당하고 싶고, 몽골어도 듣고 싶고, 걷다가 발견한 예쁜 간판도 찍고 싶다. 그러지 못해서 아쉬웠지만 몽골 냄새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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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너편 마켓에서 맥주와 초콜릿을 구매했다. 나의 맥주!

이번 여행은 아쉬울 거라 생각했다. 이런 불안을 잊게 해 준 건 주영이랑 지은. 가그린 사건을 계속 얘기하며 웃고 있다. 오랜만에 고등학교 때처럼 하루 종일 웃을 수 있는 일로도 충분한 여행이 될지도 모른다. 사소한 일일지도 모르는데 계속 웃음이 나오는 걸 보니 잠시 어릴 때도 돌아간 기분이다.

좋다. 오랜만인 것 같은 이 기분이.

20대 초반엔 속마음을 조금이라도 표현했다. 표현하는 방법을 터득하려 하기도 했고. 답답한 일이 있으면 취할 때까지 술 마시며 놀곤 했는데. 나이 들면서 이런 일들이 점점 줄어들었다. 이러면 되고 안되고를 스스로 걸러내기 때문. 시간이 지날수록 속마음은 더 말하기 어려워지고 참는 것에 익숙해진다. 그래서 정확하게 말하긴 어렵지만 이 오랜만인 기분이 좋다. 나를 잘 알고 있는 친구들이랑 가서 그런가. 20대 초반 혹은 그 이전으로 돌아간 기분이다.

우린 잠을 설쳤다. 계속 "자?"를 물어보고 음악도 듣고 SNS를 보다가 서서히 잠들었다.
내일도 여행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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