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의 일상으로
2011년 11월 29일
1
오늘은 다 같이, 아니 아버지 빼고, 토리노에 가 보기로 한다.
철도청 파업 때문에 차를 타고 갈 줄 알았는데, 기차를 타고 간다.
파업은 우리나라나 죽자살자 파업을 하지, 여기는 그렇지 않다.
이 동네에서 파업은 일하기 싫을 때 목요일이나 금요일 골라서 하루만 파업을 한단다.
토리노행 기차에 탔다.
레지오날레 급으로, 가장 낮은 등급의 기차다.
요금은 무궁화호지만,
기차 외관이나 안의 시설을 보면
마치 우리나라 비둘기호는 저렇지 않았을 까 하는 상상을 불러 일으킨다.
(물론, 비둘기호를 타 본 적은 없다. 아니면 내 기억속에서 사라졌든가)
기관차에는 여기저기 덕지덕지 그라비티를 해 놓았고, 객차 외관은 먼지가 두껍게 쌓여 있었다.
손가락으로 벽을 살짝 쓸어 보니 먼지가 쓸리는 자국이 남고,
손가락이 지나간 자리 단단하게 붙어 떨어지지 않는 먼지들이 있다.
의자는 딱 우리나라 시내버스 의자 급이다.
의자 하나에 2명이 앉을 수 있고, 마주보도록 고정되어 있다.
시설은 그렇다 쳐도, 가는 길에 서로 뻘쭘해서 어떡할까 생각이 든다.
우리 나라 KTX 동반석이 생각난다.
2시간 내내 모르는 사람과 마주볼 수 밖에 없는 운명.
하지만, 이 나라 사람들은 옆에 누가 앉든
스스럼없이 말을 걸고, 웃고, 떠들고, 공감하고,
자신들의 삶을 나누다가 목적지에 다다르면 쿨하게 헤어진다.
우리나라에서는 매년 명절에 시골 간이역을 달리는 완행열차를 다루는 다큐멘터리를 꼭 방영을 한다.
그 때, 5일장에 가시는 할머니들끼리 도란도란 이야기하고,
검표할 때에도 덕담을 주고받는 훈훈한 풍경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이 기차 안, 그것과 다를 바가 없다.
다만, 주인공이 할머니에서, 남녀노소 누구나로 바뀌었을 뿐.
2
토리노 역 근처
이틀만에 다시 토리노다.
똑같은 곳이지만, 철도청 파업 때문에 페닉이었던 그때와는 토리노를 바라보는 시선이 다르다.
오늘은 든든한 길잡이 사라와 어머니가 같이 있다.
오늘따라 토리노가 밝아보인다.
토리노 시내는 광장을 중심으로 큰 거리가 십(十)자로 나 있다.
아직도 아스팔트를 깔지 않고 돌바닥을 유지하고 있다.
그 돌바닥을 사이에 두고 명품샵과 중국 샵이 마주보고 있다.
아직 고2인 사라의 최대의 관심사는 옷과 악세사리들이다.
이걸 우리랑 같은 잣대로 쳐다보면 안 된다.
아, 우리의 잣대라 함은, 저 나이대의 여자의 관심사는 예뻐지고 싶은 욕구이다.
남자들은 응당 축구를 좋아하고, 여자들은 응당 꾸미는 걸 좋아한다 같은 ‘공통’ 차원이 아니다.
이 나라에서의 ‘꾸민다’는 취미로 프로그래밍, 피아노 연주, 락 콘서트에서 날뛰기 같은 매우 특화된 취미 중 하나이다.
젊은 여자라면 응당 어느 정도는 꾸며야지 라는 생각이 없다.
같이 돌아다니는 내내 중국 샵만 보이면 들어가서 옷을 찾아보는 사라다.
“여기에는 정말 중국 사람들이 많이 들어와 있어.
중국 사람들 다 나가면 경제가 흔들흔들 할 정도야.
보통 옷들을 수입해서 파는데,
다른데서 30~40유로 하는 것들 여기서는 비싸야 20유로면 다 살 수 있어.
이 가방 얼마짜리로 보여?”
“한 60?”
“60? 10유로야, 10유로! 이 가격에 이런 가방이 나와!”
“근데, 얼마 못 쓰잖아.”
“어. 한 1년 쓰면 버릴 때 되는데, 그럼 내 스타일도 바뀌어 있어. 그럼 그 때 또 사면 돼.”
보기에는 이것저것 꾸미느라 돈이 꽤 나갔을 것 같은데
그래도 나름 경제적으로 꾸미는 방법을 터득한 것 같다.
이 친구도 전형적인 가격대 성능비 스타일이다.
하지만 그놈의 가성비 때문에 눈에 보이는 중국샵은 모조리 들어가서 뒤져보고 나온다.
점점 지쳐간다.
어머니께서도 같은 생각이었는지, 잠시 자리를 옮기게 한다.
“사라야, 카페 좀 갈까?”
라틴족의 여유를 대변하듯 길가에는 중국 의류샵 만큼이나 카페가 즐비하게 늘어져있다.
그 카페들은 하나같이 화려하다.
안팎으로 금을 바른 것 마냥 번쩍인다.
오래된 건물들과 어울리지 않는 위화감이 느껴질 정도로 꾸민다.
그 중에서도 가장 번쩍번쩍 빛나는 카페로 들어갔다.
메뉴판이 들어왔다. 언제나 고민이다.
뭔지도 모르겠는 이름 앞에서 무엇을 먹어야 할지 난감한 것.
특히 카페를 가면 이름을 봐도
도통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맛이 어떻게 되는 지 알 도리가 없는
괴상하고 된장내가 풀풀 나는 이름들.
서울에 올라와서 처음 커피전문점에 갔던 기억이 난다.
이름을 봐도 뭔지 몰라 뭘 시켜야 할지 난감했던 기억.
저 수많은 메뉴 중 딱 하나 아는 글자 ‘카라멜’을 보고 카라멜 마끼아또를 시켰던 기억이 난다.
(그 이후, 그 달달한 맛에 한동안은 어느 커피집을 가도 그걸 시켜먹었었지.)
이름들을 보면 정말 암호같다.
아, 우리나라에서나 암호지, 여기서야 자기네들 말이니깐 봐 주자.
여기서야 명태 가지고 생태, 동태, 북어 부르듯 부르는 걸 테니깐.
그 암호중에서도 그나마 아는 걸 찾아보자.
먼저, 만만한 아메리카노는 당연히 없다.
몇몇 아는 이름들이 보인다. 에스프레소가 보인다.
난 쓰디쓰고 양 적은 건 싫으니 그냥 넘긴다.
맛 따위는 필요없다. 일단 양이 많고 봐야 한다.
그 아래에 보면 친숙한(친숙해진) 이름이 보인다.
라떼, 카푸치노, 마끼아또 등이 있다.
그런데 가장 큰 문제는, 우리나라면 카페 라떼 하고 그냥 끝날 것 들이
여기는 라뗴라고 해 놓고 뒤에 왜 이리 이상한 암호같은 말들이 길게 붙는건지...
라떼 마끼아또, 마로끼노, 카페 콘 판나... 으으으...
물어보면 알기야 하겠지만, 이 많은 걸 다 물어보기는 너무 미안하다.
그 가운데 마끼아또가 보인다. 옛날 카라멜 마끼아또의 기억 떄문에 이게 끌린다.
라떼, 카푸치노 등등의 가운데 유일하게 뒤에 주저리주저리 붙는 게 없던 것이었다.
하지만, 약간 불안한 것이, 카라멜이란 말이 없다.
고민이 닥쳐온다.
카라멜이란 말이 붙지 않은 것 때문에 완전 에스프레소같은 소태 고문을 선사할 것인지 말이다.
원래 마끼아또가 단 것이었으면 좋겠다.
무엇보다도, 양이 많을까?
한국 카페마냥 꽉꽉 눌러 담아줬으면 좋겠다.
이런 고민들이 머릿속에 계속 떠다닌다.
하지만 주문은 그냥 마끼아또다.
하지만 내 앞에 놓은 것은 ... 에스프레소 잔이었다.
“마끼아또 원래 잔이 이래?”
“여긴, 아니 이탈리아에서는 잔이 다 이런데?”
“양 많은 건 없어?”
“그러려면 네스카페 시켜야지.”
...이곳 카페에서의 모든 커피는 모두 에스프레소 기준양이다.
번쩍번쩍 빛나고 샤방한 카페
3
그 후, 시내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전망대도 올라가보고, 시장도 둘러보았다.
그리고 집에 갈 시간. 이참에 유레일 패스 개시하고 베네치아로 가는 기차를 예약한다.
“언제 갈거야?”
난 한 3일 정도 있을 생각이었다. 내일 모레면 떠나야지?
“내일 모레정도?”
“겨우 내일 모레?”
“왜?”
“겨우 3일로 여길 다 본다고? 그냥 여기 있을 만큼 있으면서 돈 아껴!”
“흠... 그럼 얼마정도?”
“일주일은 있어야지!”
“일주일? 좋다.”
이 말 몇 마디에 내가 이 집을 뜨는 날이 일주일 뒤가 되었다.
사라의 어머님
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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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1_3 + 1_4 Bryan Almighty + 자전거의 운명은?
CHAP1_1 + 1_2 인천 출발 + 히드로 도착
CHAP0 준비
CHAP0_번외 가져갔던 장비 일람
CHAP0_6 출국 그리고...
CHAP0_4 자전거 맞추기 + 5 쉥겐조약
CHAP0_3 항공권과 장비 마련하기
CHAP0_2 어디를 어떻게 가볼까?
CHAP0_1 다짐
혹여나 자전거 여행을 준비하시는 스티미언분들.. 도움이 되셨을련지요?
도움이 되었다면 UpVote + 리스팀 부탁드리겠습니다 -_-)/
후문을 선물해주신 @mimitravel 님 감사합니다!!
여행지 정보
● Savigliano, 쿠네오 이탈리아
● Torino, 토리노 이탈리아
trips.teem 으로 작성된 글 입니다.
짱짱맨 호출에 응답하여 보팅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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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상이라 그런가. 카페에서 주문한 커피잔이
그렇게 작아뵈진 않는데 양에 안차셨군요.
전 달다구리만 있으면 대만족!!
그리고 사라씨(?)와 어머니 꼭 닮았어요!!-모녀니까 당연한소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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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ㅋㅋ 전 이런면에서는 정말 안면인식장애인 것 같아요
닮은 거 찾아내는데 잼병인듯요 ㅜㅜ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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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 멋진 여행~
해외에서 만나 친구와 어머니까지 함께 하시다니 ㅎㅎ 정말 즐거운 시간이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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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또 이런 일 있으려나 싶어요
어리고 학생이었으니 해봄직했던 일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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