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백산 연화봉에 호텔(?) 이라니요?
얼마 전, 고향 후배 몇몇과 한양도성길 걸으며 의기투합했다. 여름 다 가기 전, 고향 소백산 너른 품에 안겨보자고. 그것도 당일치기가 아닌 나고자란 고향마을이 내려다 보이는 소백산 연화봉에서 1박 하기로 말이다.
이리하여 지난 금요일 정오, 탈서울을 결행, 오후 느지막한 시각에 소백산 도솔봉과 연화봉을 잇는 안부(鞍部), 죽령에 애마를 멈춰 세웠다. 죽령은 경북 풍기읍과 충북 단양군을 가르는 고도 689m의 고갯마루다.
중앙고속도로가 관통하는 죽령 터널이 뚫리기 전, 이 고갯마루는 장터 분위기였다. 엔진음을 가쁘게 토하며 올라선 차량들로 분주했었다. 삶은 옥수수와 감자전, 메밀전 내음에 이끌려 죽령 주막은 언제나 문전성시였는데...
지금은 옛추억에 이끌려 드라이브에 나선 이들, 소백능선과 죽령 옛길을 걷는 트레커들이 간간이 찾을뿐 대체로 한산한 느낌이다.
한때는 소백산 동편 산자락 아래 고향집이 있어 시시때때로 넘나들었다. 때로는 그리움으로, 때로는 심란한 마음으로, 죽령은 내게 감성의 고개였다.
죽령 고갯마루에 차를 두고 배낭을 둘러멨다. 탐방지원센터 직원이 다가왔다.
"동절기 입산통제시간은 15시, 하절기엔 16시까집니다. 대피소 예약자는 일몰 2시간 전까지는 입산할 수 있습니다."
다행이다. 16시를 넘었지만 일몰기준으로는 입산 가능한 시간이다. 탐방지원센터를 통과했다. 제2연화봉대피소까지는 시멘트 포도다. 땡볕 길을 상상했는데, 그게 아니다. 길가 나무들이 우거져 그늘길이다.
길 가장자리를 따라 야자 매트를 깔아놓아 보행감도 굿이다. 평일이어서인지, 아니면 여름 소백의 고약한 땡볕능선을 기억해서인지, 산꾼들의 발길은 뜸했다.
길 끝 저만치에 원주형 건물이 괴물처럼 다가섰다. 제2연화봉(1,357m) 강우레이더관측소다. 연화봉대피소는 관측소와 맞닿아 있었다.
뉘엿뉘엿 해넘이가 시작될 즈음, 소백산 제2연화봉대피소에 닿았다. 침상을 배정받고 매트와 모포를 대여했다. 지리산이나 설악산 대피소에 비해 이곳은 호텔(?) 수준이다. 익히 입소문 들어 감은 잡았지만 생각 이상이다. 침상은 1미터 정도 높이의 칸막이로 구분되어 있으며 배낭을 올려놓을 수 있는 선반도 있다. 특히 화장실은 대박이다. 해발 1,357미터 대피소에 좌변기라니...그것도 거품식이 아닌 수세식이다. 취사장 내에 수도꼭지가 달린 싱크대도 있다.(비소 검출로 인해 수도꼭지를 빼놓은 상태라 이용은 못했지만)
간편복으로 갈아입고서 바깥으로 나왔다. 작열하던 태양이 임무를 마무리 지으며 서편 하늘을 붉게 물들이고 있다. 어떤 이는 달뜬 표정으로 실시간 해넘이 영상을 전하고, 또 어떤 이는 누군가에게 소백의 여름을 문자로 열送하느라 바쁘다.
취사장에는 울산에서 왔다는 젊은 부부와 우리 셋이 전부다. 그지없이 널널해 그야말로 황제(?) 취사다. 버너에 불을 당기고 얼려온 삼겹살을 꺼냈는데... 아뿔싸! 프라이팬을 깜빡했다. 지리산이었다면 옆사람에게 빌릴 수 있었겠으나 난감 그 자체다. 결국 코펠이 프라이팬을 대신했으니... 야전에서 이 정도 불편은 애교다.
별빛 총총한 바깥은 바람소리가 세차다. 바람막이 재킷을 걸쳤지만 목덜미가 서늘했다. 동편 산아래로 불빛이 반짝인다. 풍기읍 밤풍경이다. 그 옛날 내가 살던 집도 저기 어딘가일텐데...지금은 집터에 잡초만 무성할 것이다.
내일은 연화봉, 비로봉, 국망봉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길을 걸어 초암사로 하산 예정이다.
<계속>
이 글은 스팀 기반 여행정보 서비스
trips.teem 으로 작성된 글 입니다.
일몰이 예술이네요. 식사거리는 가방에 챙겨서 가는거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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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정에서 1박을 하려면 먹을거리가 필요하죠.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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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집터에 잡초만 무성할뿐이다.'라는 말씀이 애잔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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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습니다. 폐가를 보면요.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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